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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통역 문제로 재판 흐름 방해...검사, 피해자 심문 앞두고 이례적 통역인 교체 요구 

친족 관계의 성폭행과 이주여성의 인권 문제 등으로 이목이 집중된 제주 필리핀 처제 성폭행 사건에서 검찰이 통역인 교체를 요구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이재권 수석부장판사)는 16일 오전 10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A(39)씨의 항소심 공판을 진행했다.

당초 이날은 피해여성 B(20)씨를 포함해 피해자 언니의 필리핀 출신 친구 C씨, 여성폭력 상담 전문가, 심리치료 전문가 등 4명에 대한 검찰측 증인 심문이 예정돼 있었다.

문제는 세 번째 증인 심문 과정에서 발생했다. C씨에 대한 통역이 이뤄지던 중 방청석에 있던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피해자측 변호인이 느닷없이 손을 들었다. 발언권을 얻은 변호인은 통역과정에 증인의 발언 내용이 일부 잘못되거나 빠졌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당황한 재판부는 통역인에 정확한 통역을 요구하고 재판을 이어갔지만 또다시 통역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찰과 변호인측이 답변 확인을 위해 질문을 반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검찰은 4번째 증인인 필리핀 처제의 심문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재판 중단과 함께 법정 통역인 교체를 재판부에 공식 요청했다. 

공판검사는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과정에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며 “현재 통역인이 수고를 해주었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 교체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제주에서는 외국인 범죄와 다문화가정 관련 소송이 늘면서 법정 통역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법원은 통역인 명부를 작성하고 필요에 따라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주지법은 중국어 6명, 일어 5명, 영어 통역인 4명, 수화통역인 3명 등 총 18명의 통역인 겸 번역인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일반 대화와 달리 재판에서는 법률적 용어가 많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증인이나 피해자가 여러 얘기를 했지만 정작 통역인이 짧게 답하는 일도 다반사다.

법원은 24일 공판을 다시 열어 필리핀 처제에 대한 증인 심문을 이어가기로 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공판은 비공개로 진행하고 피고인석에는 차벽을 설치하기로 했다.

검찰은 피해자 진술을 통해 당시 상황과 친족 간 성폭행의 특수성을 설명할 계획이다. 변호인은 이에 맞서 성관계가 강압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된 사건은 2017년 2월15일 새벽 도내 한 주택에서 발생했다. A씨는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자신의 집에 온 처제를 성추행하고 안방으로 데려가 성관계를 가졌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0월19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절박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은 점을 내세웠다. 범행 후 피해자가 형부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는 등 사건 당일 행동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다.

무죄 소식이 전해지자 도내외 38개 여성단체는 '이주여성 친족 성폭력 사건에 따른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자에 대한 법률자문 등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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