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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교육청이 정보화기기 구매 사업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해당 의혹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지시했다. ⓒ제주의소리
정보화기기 납품 사업 '수상한 정황들'...업계 관계자들 "단순 실수 아닌 오랜 관행"

<제주의소리>가 단독 보도한 [믿고 따랐더니 '부정당 업체' 낙인...제주교육청의 '수상한 입찰'] 기사와 관련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이 실시한 학교 정보화기기 입찰 과정에서 석연찮은 정황들이 포착됐고, 교육청 차원의 자체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이석문 교육감도 직접 "철저한 감사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추가적인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상황이다.

논란이 된 사업은 지난해 10월 12일 총 9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크롬북 180대를 3개 학교에 보급하는 '학교 정보화기기 구매' 사업이다. 경쟁입찰에는 도내 5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1순위 업체가 도교육청 권유에 따라 '입찰 취소'를 진행했다가 '부정당 업체'로 낙인 찍혀 2개월간 공공기관 공개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고, 향후 2년간 공공기관 공개입찰에서 감점을 받는 패널티가 부과됐다. 사실상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 셈이다.

교육청이 왜 1순위 업체에 입찰 취소를 권유했는지 일련의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제주도교육청 담당자의 '단순 실수'로 판단될 수도 있다. 실제로 당사자들은 교육청 내부 감사 과정에서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는 취지로 일관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속을 파헤쳐보면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수상한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 설계 단계부터 '잡음'...특정 업체 염두에 뒀나

이 사업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논란을 예고했다. 애초에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로 볼때 통상적인 정보화기기 납품 경쟁입찰의 경우 투찰률 85% 안팎에서 마진이 좌우된다. 또 85% 안팎을 기준으로 ±3% 범위 내에서 투찰이 진행되고 낙찰 여부가 결정되곤 했다. 실제로 1순위 H사는 84.678%, 2순위 S사는 88.279%로 투찰했다.

하지만, 이번 크롬북 입찰건의 경우 입찰소요액 산출시 예정가격의 97% 선을 맞춰야만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였다. 제품 특성상 특정 제조사만 납품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제주의 경우 크롬북은 T사가 사실상 판매를 독점하고 있다. 실제 T사는 이번 입찰에서 97.566%에 투찰했으나 3순위로 밀렸다.

교육청과 크롬북 공급업체 간 맺은 '기술지원협약서'의 세부내용도 입찰 업체의 혼란을 부추겼다. 보통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를 판매할 경우 본체 외에도 마우스, USB 어댑터, 랜카드 등 주변기기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사업에 대한 기술지원협약서에는 달랑 본체만 포함돼 있어 마진율이 상당히 줄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업 내용으로 인해 예상됐던 피해자가 발생한 셈이다. 

입찰에 뛰어든 업체들은 평소에도 관급기관과의 납품 계약을 통해 수익을 낸 업체들이다. 사업 내용을 사전에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H사와 S사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시스템에 대해서는 꿰고 있는 이들이다. 나름 잔뼈가 굵은 업체들의 눈 까지 현혹시킬 정도로 이번 사업은 이상했다.

교육청 사업 담당자도 입찰공고를 띄우기 전부터 이같은 문제를 어느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 담당자는 "공고 전부터 낙찰 취소 가능 여부를 검토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고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문제가 예상되는 사업을 밀어붙인데 대해서는 앞으로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원론적으로 이 사업은 T사 외에는 입찰이 어려운 구조라는게 중론이다.

실제로 T사 관계자는 입찰 전에 H사 대표에게 연락을 취해 "크롬북 사업건에 대해 입찰에 뛰어들지 말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순위 업체인 S사도 육지부의 크롬북 공급업체와 연락했을 당시 "제주에 있는 T사를 통해 견적을 뽑아보라"는 말을 들었고, 이를 거부해 수백만원의 피해를 감수해서야 크롬북 납품을 겨우 완료할 수 있었다.

◇ 베테랑 직원의 단순 실수? 크롬북 선택 근거는?

이 같은 구조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육청이 애초에 T사를 염두에 두고 입찰공고를 냈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굳이 연락을 취해 1순위 업체의 낙찰 포기를 종용한 것도 일감을 특정 업체에 몰아주려했던 의도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H사에 낙찰 포기를 권유한 교육청 사업부서 담당자는 정보통신 사업 부서에만 2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다. 이전에도 사업설계의 실수로 낙찰 업체가 피해를 본 사례도 있었는데, 유독 이번 건에 대해서만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H사에 입찰 취소 방법을 설명한 시기도 논란거리다. 관련 서류 양식까지 첨부하면서 입찰 취소를 권유했던 시기는 낙찰 결과도 발표되기 이전이었다. 발표 이전에 교육청 내부적으로 낙찰 정보를 공유하고, 또 이를 근거로 업체에 사사로이 연락을 취한 것이다.

이유를 떠나 낙찰 결과 발표 전에 관련 정보를 사업 당사자에게 제공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크롬북이 꼭 필요했다 해도 왜 육지부 특정업체를 고집했는지도 의문이다. 크롬북이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장비이기는 하지만 독점적으로 판매되는 품목은 아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비롯해 여러 중소기업에서도 크롬북의 생산·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교육청이 기술지원 협약 과정에서 굳이 T사가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해당 제품을 사들였어야 했는지도 감사 과정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판단된다.

<제주의소리>는 도교육청에 크롬북 사업건 비교분석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현재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 논란 직후 '크롬북 구입' 수의계약...왜 하필?

공교롭게도 이번 논란이 불거진 직후 도교육청은 별도로 T사와 수의계약을 통해 1075만원 어치의 크롬북을 또 사들였다.

앞선 크롬북 계약이 논란이 됐던 시기는 개찰이 이뤄진 지난해 10월 20일 전후였다. H사가 적격 심사 포기각서를 제출하고 '부정당 제재'를 당하면서 한창 교육청 안팎으로 시끌시끌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불과 10여일이 지난 11월3일 도교육청은 '몰도바 공화국'에 전산기기를 지원해준다는 내용으로 T사와 크롬북 판매 수의계약을 체결한다. 관련법 상 2000만원 이하의 소규모 사업은 수의계약으로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돼있어 법적인 문제는 없다. 

다만, 계약 시기는 물론 사업 내용도 석연치 않다.

동부 유럽에 위치한 몰도바는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1991년 독립한 나라로 명목기준 GDP는 세계 140위다. 교육 지원이 필요한 국가임에는 분명하다. 도교육청은 몰도바와의 교류를 이어가면서 몰도바 교원 정보화 연수를 돕고 있다. 이미 지난해 6월 1억원 상당의 예산을 들여 150대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지원했다.

그러나, 데스크톱 컴퓨터 지원과는 별개로 아직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도 제대로 보급되지 못하고 있는 크롬북을 굳이 지원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교육부는 크롬북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크롬북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는 기기 속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하물며 전산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몰도바에 최신식 기술장비를 들인다 하더라도 활용폭은 상대적으로 좁을 수 밖에 없다.

◇ 업계 관계자들 "단순 실수 아냐...오랜 관행 곪아 터진 것"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제주지역 정보통신 업계 관계자들도 이번 건을 '단순한 행정 실수'로 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 곪다가 터진 사례라는 주장이다.

모 정보통신 업체 관계자는 "이미 도교육청이 수행하는 여러 사업들이 특정 업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업계에 알려진 사실"이라며 "사업 담당자도 사람이기에 사적인 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나, 도교육청의 사업들은 사적인 영역을 넘어섰다는 것이 대부분 업체들의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불만이 있더라도 따질 수가 없는 구조다. 컴플레인을 걸거나 하게되면 도교육청 외의 공공기관에도 소위 '블랙리스트'로 찍히기 때문에 알면서도 입을 닫을 수 밖에 없다"며 "이번 사례도 업체 하나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면 그냥 '좋은게 좋은것'이라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2~3군데의 특정 업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단순 물품계약 뿐만이 아니라 통신·전기설비 등을 관리하는 사업에 있어서도 특정 업체가 사업을 독식한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업계 관계자들은 직접적인 증언은 꺼렸지만, 의심되는 점이 많다는 반응을 보였다. 

◇ "청렴도에 영향을 미칠 사안" 교육감 엄포...후속 조치는 과연?

도교육청은 한마디로 비상이다. 이와관련, 이석문 교육감의 발언이 주목된다.

이 교육감은 지난 15일 기획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해당 논란에 대해 "정보화기기 보급 입찰 문제는 도교육청 청렴도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육감은 "오해와 의혹이 쌓이면 제주교육의 정책과 행정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의혹이 없도록 감사관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한 감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모든 직원들은 맡은 업무에 대해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이끌리지 말고,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육감은 '업무에 철저를 기해야 할 사안'이 아닌 '청렴도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발언의 수위로 미뤄 사업부서 당사자가 주장하는 '단순 실수' 보다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도교육청 내부적으로도 감사 과정에서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르면 다음주, 늦어도 이달 안에 해당 사안에 대한 감사가 마무리 될 예정이어서 감사 결과에 이목이 쏠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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