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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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빌레(너럭바위)에서 솟구치는 산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제주섬의 산물] 1. 프롤로그

제주 섬의 생명수, 용출수 그 가치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힘, 풍요함, 생산성, 역동성, 자비로움, 영원함, 그리고 강인함과 존엄성의 표상이다. 거미줄에 맺힌 아침 이슬 한 방울의 작은 물에서부터, 천둥소리와 함께 쏟아져 내리는 폭우, 우리가 흘리는 눈물, 한여름의 무더위를 떨쳐버리기에 충분한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그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예찬한다. 물에는 삶을 살아가는 철학과 지혜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자신을 스며들게 해 만물을 길러 주고 키워주지만 절대로 자신의 공(功)을 자랑하지 않고 만물을 이롭게 한다. 제주 섬의 ‘산물(샘)’도 마찬가지다. 예부터 제주 산물이 당 신앙, 제사의식과 관계되고 신성시된 이유는 물에는 생명의 원천이자 낡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는 재생력과 정화력, 성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 섬의 산물은 수심(水心), 암심(岩心), 지심(地心)을 품고 있으며 만지면 산도록(시원)하고 마시면 오도록(차가움)한 청심청수(淸心淸水)이다.

제주 섬의 산물, 그 의미와 가치는 재화적 가치인 돈으로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1000여개 이상의 산물이 존재하는 섬은 전 세계적으로 제주 섬 뿐으로 곧 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산물이 있기에 섬 곳곳에 습지가 형성돼 람사르습지처럼 국제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곶자왈이란 제주만이 갖는 천연 숲으로 세계자연유산으로 각광받고 있다. 섬 문명의 시작인 설촌의 역사와 함께 물허벅 문화는 자랑할 만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 이처럼 제주 섬에서 생명의 원천인 물은 지신물(지샛물), 촘받은 물, 곱가른 물, 하늘의 물인 봉천수 등 많은 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생명과 삶의 첫 시작은 땅속에서 강인하게 용솟는 산물에서 부터다.

옛 어른들은 “놋 싯을때 물 하영 쓰면 저승강 다 먹어사 헌다(낮[얼굴] 씻을 때 물 많이 쓰면 저승가서 다 먹어야 한다)”라 말한 것처럼 한 방울의 물도 귀하게 아껴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먹는 물에 돌 대끼면 저승가서 눈썹으로 다 건져사 헌다(먹는 물에 돌 던지면 저승가면 눈썹으로 다 건져야 한다)”라고도 했다. 이 말을 통해 옛 어른들은 물의 가치를 맑고 깨끗함에 두고, 물을 함부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물 중시 사상을 최우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물은 제주 섬의 삶에서 매우 흔하고 일상적인 요소인 동시에 또한 한없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물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물의 성스러움과 연결돼 있는 섬 안의 고리를 재발견할 때 우리는 제주의 산물에 대한 감사와 경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제주 산물을 보호하고자 하는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한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용출수 글을 연재하게 된 동기도 산물의 존엄성과 그 가치를 보전하고 도시화로 잊혀져가거나 사라져가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데 있다. 용출수를 연재함에 있어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기준으로 해 용출수를 선정하였음을 밝혀둔다.

산물의 명칭을 보면 해안지역에는 일반적으로 물이란 명칭을, 산간지역에서는 ‘새미’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물+물’이란 형태로 물을 중시하고 그 가치를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 새미물=새미[샘]+물, 대수물=수[水]+물)

지역별 산물은 가급적 대표성을 갖는 산물을 선정하도록 노력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멸실되더라도 발굴 보전 가치가 있는 산물이나 인공 우물을 포함해 기록상으로 남겨 둘 필요가 있는 용출수 등 역사, 문화, 자연적 용출상태 등 독특한 특성을 고려했다.

용출수 선정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탐방할 수 있는 곳을 위주로 했으며, 오름과 한라산 그리고 일부 접근하기 어려운 산간지역과 개인소유가 돼 버린 산물은 생략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용출되는 산물을 위주로 사라진 용출수 중 자료적 가치가 있는 산물은 포함했으며, 용출수 터가 만들어져 있어도 현장조사 결과, 하천의 소나 굴헝(웅덩이), 못 같은 봉천수는 제외했다. 산물명을 전부 쓸 수가 없을 경우 지역이나 마을의 특성을 나타내는 지명을 붙여서 소개했음을 밝혀둔다.

연재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면 문헌조사와 주민을 상대로 한 현장조사에 있어서 서로 엇갈리는 부분에 대한 고증할 자료가 없는 점이다. 또한 산물을 식수로 사용했던 연령층이 고령화와 기억이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어떤 마을지인 경우 이름과 위치와 사진이 서로 뒤 바뀌는 경우도 있었으며, 또한 같은 연령대에서도 서로 주장이 틀린 경우도 있고 발음도 구전돼 온 이름들이라서 제각기 들어온 대로, 나오는 대로 발음하기도 해 용출수 명칭을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더더욱 어려운 점은 마을 어른들이 고령으로 생존의 문제로 고증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년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용출수현장을 탐방할 때마다 산물이 사라져 버리거나 고증도 없이 개수 또는 개조해 버려 아쉬움이 가득하고, 특히 마을주민들마저 동네에 어떤 산물이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와 이야기·역사를 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손쉽게 쓸 수 있는 수돗물이 보급되면서 집 곁에 산물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점점 산물에 대한 기억과 관심이 사라자고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집필하게 됐다. 섬의 생명수인 산물을 주제로 도민들뿐만 아니라 제주라는 섬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주의 삶과 생명, 그리고 섬의 가치를 공유하고, 섬의 살아 있는 물인 용출수를 찾아가 볼 수 있는 안내서가 되길 바라는 바람에 연재를 결심했다.

연재 방식은 본인이 집필한 《섬의 산물》에서 소개한 용출수 439곳을 소개한다. 이 책은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의 각별한 관심과 출판 지원 등이 있었기에 빛을 볼 수 있었다는 걸 밝힌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의문이 생길 때, 각종 문헌에서 자료를 찾고 유추하고, 현장을 반복적으로 찾아가 위치를 확인하며 마을 어른들을 뵙고 재차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또한 시간을 두고 다시 가보면 개수·개량돼 사진을 전체를 바꿔야 되는 어려움도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도 실행착오와 조사의 미비로 잘못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고쳐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앞으로 연재할 용출수

제주특별자치도가 2년간(2013~2014년)에 걸쳐 산물분포를 재조사한 결과, 제주 섬의 산물은 총 1023곳이다. 이중 443곳은 사라지고 남아 있는 산물은 580곳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된 산물들을 모두 439곳으로 해안을 위주로 역사와 문화적 관점, 그리고 공학과 환경생태적 관점에서 가치가 있거나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접근성이 양호한 산물을 위주로 선정했다. 제주 산간에 해당 되는 마을의 용출수도 일부 포함됐으며,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우물 형태의 지하수도 포함됐다. 가급적 마을 위주로 마을을 대표하는 용출수를 중심으로 조사·수록했다. 아쉽게도 이중 제주시 가락쿳물을 포함해 23곳은 멸실됐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포함시켰다.

연재할 산물들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아래의 표와 같으며 객관성을 갖기 위해 문헌조사에 의한 현장조사를 실시한 산물만 제시했다. 사유지에 있는 산물은 탐방하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제외시켰다는 것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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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선인들의 용천수 사용에 대한 지혜

용출수가 솟는 곳은 자연 그대로 놔두고 사용할 공간을 조성해 일정한 공간(칸)을 나눠서 이용한다. 용출수 주위는 현무암의 돌담을 두르고 용출구에 가까운 곳은 음료수, 조금 떨어진 하류에서는 빨래, 목욕, 그리고 그 밑에는 더러운 것을 씻거나 우마용으로 사용하는 등 물 사용의 위계(계급)에 의해 사용수칙을 철저히 지킨다.

용출수 사용수칙을 어겼을 때는 마을 별로 정해진 벌칙에 의해 벌을 받거나 심할 경우는 마을에서 퇴촌 당하기도 한다. 취락 발달의 핵심이 산물에 있으며, 향약(鄕約)에 의해 수리·청소 등에 대한 명령·독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주민은 물에 대해서는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마을에 따라 전통이나 환경(물)에 대한 보호와 보전을 하면서도 타 지역 사람들이 사용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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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곳에서 용출돼 식수통이 하나일 경우.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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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곳 여러 지점에서 용출될 경우.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용천수 관련 용어 및 사용 관련

▲ 용천수는 섬의 생명수로 마을을 만들고 존재하게 해준 설촌의 원동력임.
▲ 우리말인 샘을 제주어로 산물(生의 의미)이라 하며, 살아 있는 물을 뜻함.
▲ 이외에도 산(한라산)에서 내린 물이라는 뜻과 바닷물과 비교해 짜지 않다는 의미에서 단물이라고도 지칭함.
▲ 학술적으로는 용천(湧泉) 또는 용출수(湧出水)라 하며, 영문으로 Spring이라 표기함.
▲ 섬에서는 샘의 변형어로 세미, 새미, 샘미, 샘이, 섬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연재를 위해 용출수로 통일하여 사용함.

옛 성인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물은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서 은혜를 베푼다. 물은 깨끗함도 더러움도 모두 받아 들어 스스로를 정화시킨다. 이처럼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섬의 물, 제주 용출수 속에 담겨 있는 영원함과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지켜나간다면 섬의 물은 끊임없이 생명력을 잉태하고 지속가능한 생명수가 솟아날 것이다. 그래서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이번 연재를 계기로 제주의 산물이 역사, 문화, 생태, 관광, 자원의 관점에서 새롭게 거듭나길 바란다. 섬의 가치를 지킨 생명수이자 마을 역사 겸 유물로서 제주 산물로 인한 제주민의 삶이 다음 세대까지 지속됐으면 한다.

2018년 1월 제주국제대학교 삼의벌 담천(湛泉) 서실에서 
공학박사 고병련

※ 연재할 용출수(산물, 세미)는 제주섬의 해안가를 중심으로 제주전역에 산재해 있는 용출수 중 올레길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439곳이다. 제주연구원 제주학총서 24로 발간된 《섬의 산물》을  발췌해 재편집한 것이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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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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