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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화촉

제주백성의 아픔을 씻어준 세정수

고병련 news@jejusori.net 2018년 02월 14일 수요일 09:13   0면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 삼도1동 목관아지 우물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우물 유적은 중국 절강성 하모도(河姆渡) 유적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2000년 전 탐라시대 때의 우물군 유적이 제주시 외도동에서 집단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우물이라고 말하는 전형적인 우물 유적은 제주목 관아지에 있다.

사적 제380호로 지정된 제주목 관아지는 고대(탐라)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 옛 관청이다. 여기에 연못(蓮池)과 우물(井)이 있다. 이 우물과 연못은 1991년~1998년까지 4차례에 걸쳐 목 관아지를 발굴 시 복원한 것이다. 

제주 목관아지는 지금은 삼도동에 속하지만 예전에는 칠성골이었다. 칠성골은 샛물골인 옛 제일극장에서 목관아지가 있는 관덕정까지를 말한다. 오랜 이야기에 따르면 칠성골은 일곱 개 별을 배치하는데 첫 번째 별과 칠성단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칠성통이라 부른다.

목 관아지에서의 식수는 이수동 제주목사가 팠다고 추정되는 귤림당 뒤 우물이다. 우물은 원형의 형태로 궁궐이나 육지부의 관청에서 주로 인공적으로 만들었던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우물은 직경은 외경 3.0m, 내경 1.9m, 깊이 2.6m의 크기로 복원시켜 놨다. 바닥에는 고운 자갈을 깔아 물을 정화 시키는 형식이다. 

▲ 귤림당 옆 목관아지 우물. 사진=고병련.
▲ 목관아지 우물 내부. 사진=고병련.

우물의 물은 측벽과 바닥에서 솟는 충적층에서 만들어진 얕은 우물이다. 우물의 깊이는 육지부의 우물보다 비교적 깊지만, 암반이 나오기 직전까지 판 육지부 우물의 축조형태를 따랐다는 걸 알 수 있다. 물은 두레박으로 길러 사용했는데, 우기 때에는 물이 우물 밖으로 넘쳤고 평상시에는 1~2m 정도의 수심을 유지했다고 한다. 복원된 우물의 특징은 우물 한가운데 상징적인 돌그릇을 받쳐 놓아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한다. 이는 청정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목 관아지 물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남사록》(1601)에서는 “연못은 성안에 우물이 없으면 적이 침입하여 성을 포위하거나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수급하기 어렵다”며 못을 팠다고 기록한다. 이수동 제주목사는 못에 물을 가두어 연꽃을 심은 뒤, 그 위에 정자를 세워 ‘우련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양대수 목사는 개구리 소리가 듣기 싫다 하여 못을 메우고 평지로 만들어버렸다. 그 후 김정 목사는 개구리 소리가 시끄럽다고 못을 메워서는 되겠는가 하여 다시 연못을 팠다고 한다. 이 연못은 화재 시 불을 끄는 방화수인 ‘드므’다. 드므는 궁궐 정전과 같이 중요한 건물 네 모서리에 두는 그승이다. 화재에 대비해 방화수를 담아 놓는다. 험상궂게 생긴 화마(火魔·불귀신)가 불을 지르러 왔다가, 드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고 전해진다. 고대 중국에서도 화재를 예방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건물 앞에 큰항아리를 놓고 바다를 뜻하는 ‘문해(門海)’라 했다.

▲ 드무(창덕궁 인정전). 사진=고병련.
▲ 자금성 문해. 사진=고병련.
▲ 드무의 역할을 한 우련당. 사진=고병련.

‘시정(市井)’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물을 뜻하는 정(井)과 시장을 뜻하는 시(市)가 결합된 말이다. ‘인가(人家)가 모인 곳, 사람이 모여 사는 거리’란 의미로 옛날에는 우물이 마을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물 물은 모든 것을 씻겨주는 세정수(洗淨水)란 의미에서 시정이란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또한 우물은 생명, 정화(淨化), 부활(復活), 농경(農耕), 왕권(王權) 등의 상징성을 가진 곳이다. 마을의 중심공간이며, 함부로 오염시켜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목 관아지의 우물은 백성의 아픔을 씻어준 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상당수 우물은 상수도 보급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각종 오염물질의 증가로 더럽혀져, 식수로도 사용할 수 없는 우물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각 가정마다 수도가 있어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을 함께 만나는 일도 옛 추억이 되었다.

제주성의 식수

제주성은 지금은 제주도심이 되었다. 과거에도 성에 사는 사람들을 성안사람 또는 성내사람이라 했으며, 옛 제주시를 간다는 말로 성안 혹은 성내에 간다고 했었다. 그때만 해도 제주성은 인구 밀집 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지만 생활의 기본이 되는 식수가 부족했다. 그래서 하루 일과의 시작은 식수를 구하는 일이었다. 제주 부녀자들의 주된 일과는 물허벅을 챙겨야 했다. 물을 나르는 일에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저물었다.

탐라순력도에서 보면 제주성은 동쪽에 산지천, 서쪽에 병문천이 있었으나 건천으로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르는 하천이었다. 하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굴헝이라는 웅덩이인 소(沼)에서, 자연 용출되거나 고여 있는 물을 식수로 사용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런 어려움에 대해 목사 김석철(金錫哲, 1512년)은 “성안에 샘이 없어 별도로 중성(重城)을 쌓아 가락쿳물을 급수하도록 하였다”고 기록할 정도로 제주성의 식수문제는 백성을 다스리는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 제주를 연구한 일본인 마수다 이치지(桝田一二)는 제주 섬에서 취락분포를 결정하게 된 제1요인으로서 음료수 문제를 들고 있다. 그는 화산암이 제주 섬을 덮어 표토는 극히 얇고 하천도 대부분은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학갈류(涸渴流)라고 분석했다. 빗물 대부분은 하천 하상 아래인 땅속으로 흘러서 용암의 깨진 곳이나 화산의 사력 속으로 침투해 해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솟아오르며, 해안에서 가장 많은 용천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취락발달의 핵심이 용천에 있기 때문에 노동력이나 땅값도 용천의 의해 평가된다고 하였다.

마수다 이치지의 저서 《제주 섬의 지리학적 연구》를 보면, 제주성에서 가장 풍부한 용천은 제주신사 언덕 밑(지금의 동문로타리 북쪽)의 삼천수며, 삼천수는 질과 양 모두가 우수해서 시가지 중앙에 가까운 점에서 이용도가 높아 주민 대부분 이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이 지역의 용천분포에 대해서 기술하였는데, 삼천수 남쪽에도 용천 2곳을 볼 수 있으며, 삼천수 하류의 건입리 산지다리 근처의 용천, 또 그 하류의 우측 강 밑에 2곳, 발전소 부근 7곳에 용천이 있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제주성 안에서는 용천대가 두드러지게 동쪽에 치우쳐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삼천수는 삼천서당의 물로서 <증보탐라지>에서 말하는 서당 남쪽의 가막천이라는 가막새미이다.

이런 기록들로 추정해 볼 때 제주성의 주된 식수는 삼천수인 가막새미와 가락쿳물이었다. 그리고 목관아지에서의 식수는 이수동 목사가 팠다고 추정되는 귤림당 앞 우물이다. 《남사록》(1601)에서는 “성안에 우물이 없으면 적이 침입하여 성을 포위하거나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수급하기 어려우므로 연못을 파고 물을 가두어 연꽃을 심은 뒤 그 위에 ‘우련당’을 세웠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건입동 수원지의 금산물과 광양통물이라 했던 우녀천, 한두기물이라는 선반물은 성 밖의 사람들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 기록으로 볼 때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수도 보급이전까지, 근대화 과정에서 제주시 도심을 지킨 용출수는 성 안의 가막새미와 가락쿳물, 성 밖의 금산물, 우녀천, 선반물로  제주성 및 도심의 5대 식수라 할 수 있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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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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