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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하수펌프처리장에서 질식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23일 오후 현장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하수펌프장 질식사고, 현장감독 공무원 중태...가족들 "떠나 보낼 준비" 울먹

제주에서 발생한 하수중계펌프장 질식 사고로 중태에 빠진 현장 감독 공무원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안전불감증'으로 빚어진 인재(人災)였지만, 이를 온 몸으로 책임지려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오후 3시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포구 인근 하수중계펌프장에서는 제주도 상하수도본부와 경찰의 조사가 진행됐다. 5명이 중경상을 당한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여부 등이 조사됐다.

이 자리에는 중태에 빠진 현장 감독 공무원 부모(46)씨의 가족들이 참관했다. 이들은 악취가 코를 찌르는 펌프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펌프장의 2.5m 높이 지하 밸브실이었다. 2인 1조로 나뉘어져 한 조는 밸브관의 압송관을 해제하는 작업중이었고, 또 다른 조는 저수조에서 용접 작업을 했다.

그러던 중 밸브실 안에 진입한 업체 직원 1명이 압송관의 볼트를 푸는 과정에서 유해가스를 흡입한 것이 발단이 됐다.

위기에 빠진 직원을 구조하기 위해 같은 조 직원과 감독 공무원 2명이 곧바로 진입했지만 이들도 가스에 의해 질식했고, 이후 반대쪽 조의 업체 직원 2명이 진입해 구조 작업에 나섰다.

부씨는 모든 이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발 아래를 받쳐준 것으로 전해졌다. 모든 이들이 펌프장을 빠져나왔음에도 119 구급대가 현장을 도착할 당시까지 부씨만 홀로 밸브실에 남아있었다.

지속적으로 가스를 흡입한 부씨는 결국 밸브실에 앞으로 쓰러졌고, 바닥에 깔려있던 오폐수를 그대로 들이마셔야 했다. 오수의 높이는 발목에서 종아리 부근인 20~30cm밖에 되지 않았지만, 구조 당시 부씨의 호흡기와 폐기관에는 오수가 가득 차 있었다.

부씨는 가장 가까운 서귀포의료원으로 긴급 후송됐지만, 오수가 찬 폐에 산소를 공급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되자 응급처치 후 곧바로 제주시 한라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22일 오후 3시 29분쯤이었고, 부씨가 최종적으로 한라병원에 도달한 시점은 오후 5시 50분쯤이었다. 퇴근길 교통체증으로 인해 이송시간은 더 늦춰졌다.

결국 부씨는 이튿날인 오늘(23일) 늦은 오후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의식 불명 상태가 아닌 폐기능과 뇌기능 등이 정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적으로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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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식사고가 발생한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포구 인근 하수펌프처리장 내 밸브실. 사다리에 걸려있는 옷가지는 중태에 빠진 부씨의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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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하수펌프처리장에서 질식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23일 오후 현장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날 현장 점검에서는 작업 인력들이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시 됐다.

아무리 평소 오수가 차있지 않는 '밸브실'이라 할지라도 밀폐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송기마스크 등의 장비를 착용함은 물론, 환기 팬 등을 설치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구조 상황이 발생했을 시 신속한 대처를 위한 생명줄도 설치되지 않았다. X반도 등의 조끼를 차고 바깥과 이어지는 밧줄을 착용했다면 참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현장 감독 공무원이었던 부씨는 이 같은 책임을 지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아무리 공무원이 '공복'의 신분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동료를 구하러 뛰어드는 것 자체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터다.

가족들은 "평소에도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주고, 배려가 몸에 깃들어 있었다. 희생했으면 했지 먼저 몸을 사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부씨를 떠올렸다.

2남 7녀 중 막내인 부씨는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 두 딸을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현장에는 부씨의 누나와 매형들이 자리해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들은 "지금은 기계로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보내기가 너무 미안하고 아쉬어서 끈이라도 붙잡고 있는 것"이라며 "한 가정이 송두리째 파괴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두 조카는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눈물 지었다.

특히 "상식적으로 작업 현장에서 밸브를 열면 유독가스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 아니냐.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감독 공무원으로서는 불명예일지 모른다. 누군가 다른 직원이 죽었다면 '과실치사' 등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면서도 "하지만 가족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목숨은 붙어있는 것이, 그래도 옆에는 있어주는 것이 고마웠을 것"이라고 흐느꼈다.

한편, 지난 2016년 7월에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하수처리펌프장에서 작업을 하던 근로자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안전불감증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또 변고를 당하게 됐다.

이번 사건이 당시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추후 논란의 여지가 남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원희룡 지사가 직접 주재한 가운데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가족 위로 및 행정지원을 위한 사고대책본부를 구성,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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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하수펌프처리장에서 질식 사고 현장. 작업자들의 옷가지들이 그대로 널부러져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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