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이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70이란 숫자에는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흡사 마지노선의 감정이 스며있다. 사람은 언젠가 모두 떠나가지만 예술은 세대가 이어지는 한 영원하다. 제노사이드의 역사였던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기억의 복원에 집중된 ‘기억투쟁’에 있어서 예술이 중요한 이유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14주년과 4.3 70주년을 맞아 주목할 만 한 4.3 미술행사를 <4.3과 미술>로 엮어 소개한다. [편집자 글]

[4.3 70 특집-4.3과 미술] (2) 1994~2018 탐라미술인협회 <4.3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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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제주4.3 60주년을 맞아 열린 4.3미술제 아카이브전 모습. 1994년 제1회 4.3미술제 '닫힌 가슴을 열며'(맨 왼쪽) 등 과거 전시 포스터들이 인상적이다. ⓒ제주의소리

제주4.3을 추모하는 예술 활동 가운데 가장 지속적인 것을 꼽으라면 (사)제주민예총의 4.3문화예술축전(구 4.3예술제)이 있다. 탐라미술인협회(탐미협)가 주최하는 4.3미술제도 1994년 4.3예술제의 시작과 함께 '사반세기(四半世紀)' 동안 이어와 올해로 25회째를 맞는다. 

4.3미술제 이전에도 작가 개인 별로, 혹은 모여서(그림패 보롬코지 등) 4.3을 미술로 조명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역량을 모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5년 간 이어왔다는 점에서 4.3미술제는 4.3미술운동의 상징으로 손꼽힐 만하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故 김현돈 제주대 교수(철학과)는 2003년 4.3미술제 10주년 당시 “4.3 미술 10년은 고난의 연대기를 의미 있는 역사로 승화시켜 나가기 위한 미술인들의 땀의 결실이었다. 당대의 모순을 증언하고 고발한 리얼리즘 정신의 승리이며, 지역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활로를 보여준 쾌거”라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1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김 교수의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4.3미술제 기록을 정리 중인 박민희 독립큐레이터는 "故 김현돈 미술평론가는 일찍이 4.3미술제의 성격을 전시의 형태로 치러지는 ‘제의’로 해석했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듯 4.3미술제를 준비하는 탐미협의 예술가들을 ‘샤먼’이라 불렀다"고 소개한다.

일명 ‘4.3특별법’ 제정(2000), 정부 공식 사과(2003), 4.3평화재단 출범(2008), 국가추념일 지정(2014) 등 4.3의 역사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듯, 4.3미술제 역시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모해왔다. 물론 4.3유적지 같은 현장을 둘러보며 작가들니 신작에 필요한 영감을 공유하는 방식은, 4.3을 기억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시하는 4.3미술제의 전통 같은 중요한 특징이다.

1994년 4월 1일부터 8일까지 제주도 문예회관과 세종갤러리에서 열린 제1회 4.3미술제 제목은 <닫힌 가슴을 열며>이다. 

▲ 넋이여 오라 (1995년·2회)
▲ 상극의 빗장을 열고 상생의 아름다움으로 (1998년·5회·4.3 60주년)
▲ 보이지 않는 손, 보는 눈-4.3과 미국 (1999년·6회)
▲ TERROR (2002년·9회>
▲ 개토 60년 역사의 변증(2008년·15회)
▲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2014년·21회)

제목만 봐도 4.3미술제가 달라지는 정치·사회 상황을 주시하며 전시에 반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 지역과의 교류전, 해군기지 문제로 고통 받는 강정마을에 대한 관심 역시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럼에도 초창기와 현재를 비교하면 많은 면에서 달라지기도 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외부 작가·예술 감독 참여다. 4.3미술제는 1회부터 5회까지 비회원도 참여하는 방식이었으나, 6회부터 20회까지는 순수 탐미협 회원전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21회부터는 다시 국내외 비회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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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4.3미술제에 등장했던 강요배의 작품 <빌레못굴의 유골>, 116.7x80.3cm, 유채, 1994.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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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4.3미술제에 등장했던 박경훈의 작품 <언어연구-빨갱이>, 500x200cm, 사진 위에 실크스크린, 1998.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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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4.3미술제에 등장했던 고민석의 작품 <동카름 삼촌>, 40x40x170cm, 종이찰흙, 1996. ⓒ제주의소리

이에 대해 22회 4.3미술제 예술 감독을 맡은 김종길 미술평론가는 “그렇게 20회까지의 미술이 4.3의 역사를, 4.3의 희생을, 4.3의 정신을 높게 치켜세워서 그것을 억압했던 것들과 맞서 싸웠던 것이라면, 이제는 4.3과 연대하려는 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판단해, 지난 21회부터 제주미협, 한라미협 등 제주 또는 제주출신 작가들의 참여는 물론이요, 국내외 작가들도 참여하는 연대 기획전으로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예술 감독제 도입은 4.3이란 기본 뿌리는 지켜나가면서 보다 다양한 해석·시각을 더하고 예술적 표현도 함께 넓히는 시도였다. 김종길(21·22회), 김유정(23회), 양은희(24회) 감독에 이어 올해는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가 맡는다.

덕분에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믹스라이스’(조지은·양철모), 2011년 일맥아트 프라이즈 대상 수상자 ‘무늬만 커뮤니티’ 등 다른 지역 예술가들도 4.3미술제에 참여하며, 4.3을 알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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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4.3미술제에 등장했던 고남수의 작품 <꽃과 총>, Pigment Print on Fine Art Paper, 150x100cm, 2016.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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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4.3미술제에 등장했던 김영화의 작품 <꽃필녘-우지짖다>, 한지·염색천에 자수, 210 X 350 X 210cm, 2016.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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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4.3미술제에 등장했던 믹스라이스의 작품 <기록일기>. 글(pigment print), 가변크기, 2016. 작품 속 인물은 양신하 백조일손유족회 고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25년 동안 이어온 전시는 세계적으로 찾아봐도 흔치 않다. 물론 4.3미술제를 두고 ‘때되면 하는 제사 지내듯 한다’는 세간의 평가도 존재하지만, 그런 문제를 타개하고자 탐미협은 더욱 새로운 시선으로 4.3을 바라보고자 한다.

지난해 4.3미술제가 제주시 원도심 공간 구석구석으로 확장하는 물리적 시도에 나섰다면, 올해는 난민·여성·이주·노동·환경 같은 국내외 이슈를 아우른다. 4.3을 마중물 삼아 ‘오늘날의 4.3’을 비추는 노력은 미술제와 4.3 모두의 생명력을 이어가게 한다. 앞으로 4.3미술제를 통해 오키나와, 대만 등 제주처럼 비슷한 아픔을 지닌 지역과 함께하는 국제 교류 행사도 충분히 시도할 만 하다. 

탐미협 초대 회장을 지낸 강요배 화백은 <제주의소리>에 “4.3미술제의 첫 단계는 주로 4.3 사건 자체를 세상에 알리는 작업이었다. 지금은 우리들이 4.3을 어떤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지 해석해야 한다. 4.3과 현대를 연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4.3의 본질을 꿰뚫으면서 새롭고 풍부한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 전시 방식 역시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게 여러가지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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