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제주를 덮친 태풍 '나리' 당시 물에 잠긴 제주동문시장 모습. 한천과 산지천 등이 범람하면서 엄청난 인명, 재산피해가 발생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초점] 제주시 복개천 전면철거 배경과 과제...하천·방수로 인근 주민 설득도 숙제 

제주시가 도심 4개 복개(覆蓋)하천 구조물을 전면 철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천문학적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관심이다. 아울러 애초 판단을 제대로 했다면 혈세를 들여 지어놓고 철거하는데 또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점에서 여론의 향배도 주목된다.   

지난해 제주시가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한국종합기술 등에 맡겨 실시한 ‘하천 등 시설물 정밀진단’ 용역 보고서 초안에는 한천과 병문천, 산지천, 독사천 등 4개 하천의 복개 구조물을 완전히 걷어내고 하천변을 따라 대체 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제시됐다. 

또 애조로를 따라 일종의 물길인 외곽 방수로(放水路)를 설치해 4개 하천으로 유입되는 빗물의 일부를 제주시 외도나 애월읍 구엄 앞 바다로 흘려보내는 사업도 함께 제안됐다. 하천 유입량을 분산함으로써 범람 등에 대비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생태 복원'과 안전확보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제주시가 이들 하천을 복개할 당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 2007년 제주를 덮친 태풍 '나리' 당시 제주동문시장 모습. 한천과 산지천 등이 범람하면서 엄청난 인명, 재산피해가 발생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2007년 제주를 덮친 태풍 '나리' 당시 아수라장으로 변한 제주시 용담 일대. 한천과 산지천 등이 범람하면서 엄청난 인명, 재산피해가 발생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82년부터 2004년까지 제주시 도심지역 한천, 병문천, 산지천, 독사천, 흘천 등 5개 하천에 설치된 복개 구조물은 총 연장 6.25km에 달한다.

당시 시민사회 등은 복개 구조물을 설치하면 집중호우 때 역류 현상과 함께 도심 하천의 순기능이 사라질 수 있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주민 편의 보다는 생태 파괴 등으로 잃는게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비등했다. 

이런 우려에도 당국은 복개를 밀어붙였지만, 얼마못가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2007년 태풍 '나리'가 강타해 한천과 산지천이 범람하면서 13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제주에선 거의 유례가 없는 대형 참사였다.

인재(人災)라는 지적과 함께 복개 구조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었다. '하천 복개'를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국이 선택한 대안은 저류지였다. 

▲ 2007년 제주를 덮친 태풍 나리 당시 제주시 용담. 한천과 산지천 등이 범람하면서 엄청난 인명, 재산피해가 발생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2016년 제주를 덮친 태풍 차바로 한천이 범람하면서 차량들이 장남감처럼 쓸려 내려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는 태풍 ‘나리’ 이후 100년에 한번 발생하는 폭우까지 견딜 수 있게 하겠다며 12개 저류지를 설치했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851억원이다.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4개 하천에 조성된 저류지 용량(당초 설계기준)은 한천(2곳) 89만9000톤, 병문천(4곳) 56만8000톤, 산지천(4곳) 9만1000톤, 독사천(2곳) 8만9000톤 등 총 164만7000톤(12곳)이다.

하지만 당국의 호언과 달리 복개하천은 9년 만에 또 범람하고 말았다.

태풍 '차바'가 제주를 덮친 2016년 10월5일 오전 3~4시 사이 순식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한천을 흐르던 빗물이 육상으로 치솟았다. 빗물은 복개구간과 만나는 이른바 도깨비시장(동룡상가) 인근에서 터졌다.
▲ 2016년 제주를 덮친 태풍 차바로 한천이 범람하면서 차량들이 장남감처럼 쓸려 내려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불어난 물은 복개구간 경계선인 길이 10m의 콘크리트 화단을 부수고 해안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복개천에 주차중인 차량 30여대는 장난감처럼 물에 떠 수십여m를 휩쓸려갔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

당국이 복개 구조물 철거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은 이 두 번의 하천 범람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이번 용역 보고서 초안에는 하천 범람을 막기위한 일련의 사업을 추진하려면 1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필요하다고 나와 혈세 낭비 논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도내 환경단체 관계자는 "생태하천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복개 구조물 철거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문제는 일이 터질 때마다 근시안적으로 혈세를 투입하면서 합당한 지적을 외면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천문학적인 사업비를 어떻게 마련할지도 의문이다. 용역진은 사업 예산을 약 1조원으로 추산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조달할지, 연도별 투자계획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 2016년 제주를 덮친 태풍 '차바'로 한천이 범람하면서 차량들이 장남감 처럼 쓸려 내려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조원이라면 올해 제주도 예산 5조원의 20%에 해당한다.    

용역진의 구상대로 방수로가 설치된다 하더라도 최종 종착지 주민들의 반응도 변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보고서 초안에서 최종 종착지는 제주시 외도, 애월읍 구엄리가 언급됐다. 그 거리가 각각 10km가 넘는다. 제주시 도심 4개 하천으로 유입되는 빗물을 멀리 끌어다가 방류해야 하는 만큼 "왜 하필 우리 지역이냐"는 반발이 따를 수 있다. 어장오염 등 유무형의 피해 우려를 제기할 수도 있다. 

현재 복개 구간은 인근 주민 등에 의해 도로나 주차장 등으로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철거가 진행되는 동안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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