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아트센터 기획 공연 <라 트라비아타>가 9일부터 10일까지 열린다. ⓒ제주의소리

[리뷰] 제주아트센터 특별기획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는 (기자를 포함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예술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생겨나 유럽을 기반으로 널리 알려진 장르인 만큼, 지금도 극장에 오르는 상당수 작품이 속된 말로 ‘수입산’이다. 그래서 작품 노랫말도 이탈리아어, 독일어처럼 듣기만 해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기에 자막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성악으로 접하는 연기는 그만의 매력이 있지만, 뮤지컬이나 일반 연극과 비교하면 이질적인 느낌이 사뭇 강하다. 17세기부터 시작해 고전 작품들이 오늘 날까지 이어지는 만큼, 정서도 다르고 분량도 길게는 몇 시간까지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 <신들의 황혼>은 공연 시간이 5시간 20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아예 원작을 재구성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연기를 하는 대신 무대·합창·오케스트라 연주를 빼거나, 연기 없이 노래만 불러 부담을 줄인 일종의 편집형 오페라 공연이 자주 열리곤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제주에서 열린 오페라 공연을 살펴봐도 이런 경향은 잘 나타난다.

제주아트센터가 특별 기획으로 준비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동백꽃 여인>은 오페라 공연의 기본에 충실했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로 뒤마 필스의 소설 <춘희>에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곡을 입힌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가져왔다. 덕분에 시간은 2시간 30분이나 된다. 여기에 주·조연 배우와 30명에 달하는 합창단, 오케스트라, 무대 연출에 남녀 무용수까지 더하면서 사실상 오페라 공연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

9일 <라 트라비아타> 첫 공연은 이런 무게감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무대는 서양 전통 건축양식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채워졌고, 배우들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빚어내는 화음은 그만큼의 묵직함을 선사했다. 

주인공 비올레타 역의 강혜명과 비올레타의 연인 알프레도 나승서 모두 전반보다 후반 공연에서 한층 매끄러운 음색을 선보이며 박수갈채로 무사히 공연을 마무리했다. 두 주연 배우의 신장 차이는 연기에 몰입하는데 조금 영향을 줬지만, 목소리로 차이를 채우기 충분했다. 전반 공연의 끝자락이었던 2막 1장은 감정 연기가 늘어진 감이 있지만, 공연 전체로 볼 땐 2시간 30분이 금세 지나갈 만큼 제법 몰입감이 있었다. 

줄거리만 떼어 놓고 보면 <라 트라비아타>는 평범한 슬픈 사랑이야기다. 덕분에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기에 공연은 전반적으로 담백한 느낌을 준다. 대신 연기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해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 여유가 있어 오페라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강혜명은 밋밋할 수도 있는 공연의 풍미를 살리는 핵심 역할을 했다. 노래뿐만 아니라 표정, 몸짓, 신체 조건(physical)에서 나오는 분위기까지 빼어난 연기력을 자랑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3막 말미, 목소리에 두려움과 비애의 감정을 실어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자신이 왜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맹활약하는지 증명하는 듯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지은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김승철은 중년 역할에 걸 맞는 절제와 호소력 짙은 노래 연기의 선을 절묘하게 유지했다. 제주도립 제주합창단·서귀포합창단원들이 포진한 다른 조연도 큰 탈 없이 소화했다. 

조명이 꺼졌지만 3막 시작이 1분 가까이 늦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객이 의아할 만 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의상과 소품은 19세기 프랑스 파리 분위기를 적절히 구현해 내는 데 일조했다.

1adsad.png
▲ 주연 배우들의 커튼 콜 인사. ⓒ제주의소리

<라 트라비아타>는 제주아트센터(행정), 제주 음악인들(민간 제주지역)과 한국오페라70주년 기념사업회(민간 서울지역)가 함께 만들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출연진뿐만 아니라 한정적이지만 제작진에도 제주 음악 자원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연을 앞두고 2월 22일 열린 <라 트라비아타> 기자간담회에서 연출자 최지형 한국소극장오페라연합회 이사장은 “제주에서 활동하는 출연진과 지역을 오가며 준비하는 건 무모한 작업이나 다름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다른 제작진들도 이번 공연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제주에 경험을 남긴다는 기획 의도가 제대로 살았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지만, 소중한 계기가 됐길 기대해본다. 

합창단으로 무대에 오른 김수지(제주대 음악학과 3) 씨는 “학생 신분으로 선배들의 연기를 보고 배우는 게 가장 인상 깊고 설렜다. 덕분에 한 층 더 풍부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오페라70주년 기념사업회를 제주로 이끈 건 제주아트센터다. 김태관 제주아트센터 공연기획자는 2016년 서귀포예술의전당 근무 당시 ‘서귀포오페라페스티벌’을 만들며 여러 오페라 작품을 시민들에게 소개한 바 있다. 2년이 지난 올해는 단 한 편만을 올리면서 필요한 공연 요소를 빠짐없이 갖추고, 제주 음악 자원까지 참여시키는 방식을 시도했다. 한 단계 씩 올라가는 연속성 있는 흐름이기에, 이번 기획을 보완·발전하는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라 트라비아타>는 10일 오후 4시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