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되돌아본 제주] (1)제주사회 전반 성폭력 문제 어제 오늘 논란 아니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피해 폭로 이후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문화예술계와 정치권, 종교계 등을 비롯한 사회 전방위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도내에서도 지성의 산실인 상아탑에서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는 등 미투 운동 확산 조짐이 역력하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와 성폭력에 국한돼선 안된다. 각계각층에 만연돼 있는 ‘권력을 남용한 폭력’에 대해 “피해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준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취지일 테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제주에서도 각종 성폭력 문제가 다양한 집단에서 제기된 바 있지만 지금처럼 큰 관심과 사회적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제주의소리>가 ‘미투 운동’으로 되돌아 본, 지위와 권력에 의한 제주사회의 각종 부당한 권력형 폭력 문제를 되짚고 그 대안을 진단해본다.  <편집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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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 곳곳에 숨어있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문화예술계·학계·종교계 등을 가릴 것 없이 곪았던 상처들이 터져 나왔고, 최근에는 정치권까지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게 됐다.

'나도 피해자다', '나도 고발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당초 여성들이 차별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권력형 성폭력을 근절하는 취지로 시작돼 이후 들불처럼 번져 사회 전반적인 영역으로 확산됐다. 어디에도 성역은 있을 수 없다. 

‘미투 운동’은 특히 단순히 성(性)의 개념을 넘어 그간 부당하게 억압돼 온 약자들의 목소리가 일거에 터져 나오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애초에 '미투'는 조직 내 위계와 권위주의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폭력으로부터 비롯됐던 터다.

연일 언론지면과 소셜 네트워크를 달구는 것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유명 인사들이지만, 바다 건너 제주의 경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제주사회 곳곳에서도 그동안 각종 권력형 성폭력 문제는 감춰져 있었을 뿐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지난달 27일 현직 제주대학교 교수 2명이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진리를 탐구하는 가장 순수해야 할 상아탑이 성범죄로 얼룩져 있다는 현실에 도민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취임식도 갖지 못한 신임 총장이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하기에 이르렀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대학 내 지위를 이용한 교수의 성추행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인 ‘갑질’ 의혹에 대한 제보까지 속속 접수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제주에선 이미 훨씬 오래전부터 지금의 ‘미투’ 고발과 같은 조직 내 각종 성폭력 문제가 이미 불거진 바 있다. 최근 10년 안팎의 알려진 사건들만 해도 도정 최고 책임자였던 모 제주도지사의 여성단체 여성 성추행 사건, 단체장이 소속 예술단체 단원들을 고위공직자와의 술자리에 동석시킨 사건, 남성 상급자들이 여성 예술단원들에게 지도를 명분으로 성희롱 발언이나 언어폭력을 반복한 사건 등으로 한때 지역사회에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검찰이 도내 모 농협 조합장을 자신이 감독 주체인 농협마트의 입주업체 여직원을 제주시내 한 과수원 건물과 노래에서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해 정식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문제의 조합장도 현재 여직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지난달 하순에는 도내 기혼여성들의 온라인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에 “초등학교 시절 동전 몇 개 쥐어주며 물불 안 가리고 키스를 해댔던 담임 선생님. 그때는 그게 성희롱인지 뭔지도 모르고, ‘싫은데 해야하는 거구나’하며 당했었네요.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신고도 처벌도 안되겠죠?”라는 글이 올라와 사이트 회원들로부터 격려 댓글이 잇따르기도 했다. 현재 이 글은 무슨 이유에선지 삭제된 상태다. 

당시 이 글을 읽은 회원들은 “안 늦었다. 신고해라” “우리도 심하게 쓰담쓰담하던 담임 있었는데 지금은 교장하고 있더라” “고등학교 때 상의 속옷끈 잡다 당기던 X도 있었다” “혹시 저랑 같은 학교 출신 아니냐. ◯◯선생님 그 당시 너무 충격이었다” “아직도 그 선생 이름 기억해요. ◯◯ 가르쳤는데” 등 동조의 글들이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에서도 지난달 말 '제주 Metoo' 페이지에 중학교 시절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익명의 피해 글이 게재된 바도 있다. 피해자는 이 교사가 끌어안는 척 하면서 자신의 신체 부위를 만졌다고 증언하며, 당시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성추행을 당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미투의 핵심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폭력’ 문제다. 왜곡된 성의식에서 비롯된 각종 성폭력뿐만 아니라, 신체폭력과 언어폭력 등이 모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제주의 경우 좁은 지역사회라는 폐쇄적 환경 특성상 가해자 못지않게 피해자 역시 드러날 수 있어 피해사례 공개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미투 고발에 따른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당장 우려되는 현실이다보니 “당신과 함께 싸우겠다”는 시민들의 자발적 ‘위드유(With You) 운동’이 가장 절실한 곳이 제주다. 

강경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성인지정책센터장은 "서로가 다 아는 지역사회에서 개인이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며 싸우기는 어렵다. 상담소나 여성단체 등과 함께한다거나 공론화하는 작업들이 피해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원론적인 문제지만 공동체 의식이 강할수록 인권의 개념이 희박할 수 있다. 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보다 여성 개인의 인권이 더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영순 제주여민회 공동대표는 “제주지역도 미투 고발에서 예외일 순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역주민이건 정착주민이건 제주여성들에게도 각종 성폭력 문제는 있는 것으로 안다”며 “미투 운동의 취지처럼 제주여성들도 피해자들과 함께 남성중심의 그릇된 성문화와 각종 폭력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힘을 모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금의 미투 운동은 촛불시민혁명의 연장선이나 다름없다.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들과 사회구조적 약자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중심으로 한 우리 안의 다양한 폭력을 뿌리 뽑는 근본적 사회변화의 계기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촛불혁명에서 미투운동까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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