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되돌아본 제주] (2) 캠퍼스 '권력형 폭력' 수두룩…부당한 '교수 뒷바라지' 만연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피해 폭로 이후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문화예술계와 정치권, 종교계 등을 비롯한 사회 전방위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도내에서도 지성의 산실인 상아탑에서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는 등 미투 운동 확산 조짐이 역력하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와 성폭력에 국한돼선 안된다. 각계각층에 만연돼 있는 ‘권력을 남용한 폭력’에 대해 “피해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준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취지일 테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제주에서도 각종 성폭력 문제가 다양한 집단에서 제기된 바 있지만 지금처럼 큰 관심과 사회적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제주의소리>가 ‘미투 운동’으로 되돌아 본, 지위와 권력에 의한 제주사회의 각종 부당한 권력형 폭력 문제를 되짚고 그 대안을 진단해본다. <편집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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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피해자다', '나도 고발한다'는 의미에서 촉발된 '미투(MeToo)', 제주도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미투 열풍이 확산될 무렵 폭로된 제주도내 한 대학생의 성폭력 피해  고발사례는 도민사회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특히 그 진원지가 진리를 탐구해야 할 신성한 상아탑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지역 사회에서, 그 중에서 대학 캠퍼스는 같은 전공 학계(學界)라는 더욱 폐쇄된 구조 안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등의 관계로 얽혀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학내에서 이제껏 덮고 넘어간 각종 추문이 많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학교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는 특유의 문화도 작용한다. 사실상 인권의 사각지대나 다름 없었다. 

대학 사회의 서열화, 교수와 학생 간의 주종 관계, 파벌주의 등으로 대학을 빗대어 '학문시장의 노예'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학부생도 그렇지만 대학원생의 경우 더욱 그렇다. 

현직 제주대학교 교수 2명이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달 27일이었다.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의 A교수는 지난해 6월 연구실에서 학부생인 남녀 제자 각 1명씩 2명의 신체 중요 부위를 만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A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친근감의 표시'라고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은 A씨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제자들을 추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제주대 경상대 교수인 B씨는 같은해 11월 자신의 차량에서 제자인 여학생의 신체 중요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 두 교수는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사건이 터지자 취임식도 갖지 못한 송석언 신임 제주대 총장은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갖고 머리를 숙이고, 해당 교수들을 수업에서 배제시키기에 이르렀지만 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미 제주대 인권센터와 총학생회 등으로 학내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인 '갑질'에 대한 제보가 속속 들어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랜 기간동안 대학 내부에 축적돼 왔던 고름을 도려내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학은 집단의 특성상 내부적인 문제가 터부시 돼 왔다. 취재 과정에서 대학생들은 '취업 절벽' 시대에 교수가 내린 평가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털어놨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좁은 지역사회에서 교수의 연줄은 그 자체로 '힘'이 되는 구조여서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관련 분야를 떠나지 않는 이상 교수의 명을 어기기는 더욱 어렵다"고 증언했다.

특히 개개인에 따라 평가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예체능 관련 학과에서는 이 같은 두려움이 더욱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의소리>는 해당 학과 학생들로부터 소위 '찍히면 끝'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는 증언을 입수했다. 교수의 지시로 인해 지극히 사적인 심부름까지 조교 또는 학생들이 도맡아 왔다는 사례가 속속 제보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는 이같은 교수와 제자 간, 선후배 간, 대학 내 각종 '갑질 폭력'과 관련된 취재도 진행하고 있다.)

교수가 학과 학생들을 자신이 집필 중인 논문이나 각종 세미나 발표자료 작업에 동원하는 행위는 이미 만연해 있고, 장인과 도제의 관계와 유사한 대학원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이같은 부당한 '교수 뒷바라지' 요구 행태가 비일비재하다. 

사실 이같은 대학내 성폭력 등 각종 폭력행위와 비뚤어진 갑질 문화가 최근에야 불거진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랫동안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린 교수가 한둘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학생들이 기댈만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예방을 목적으로 지난해 8월 개소된 '제주대 인권센터'는 정작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부실 대응 논란에 직면해야 했다. 신고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해당 학생들이 2차 피해에 노출된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했다. 특정 교수가 센터장을 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담원도 2명밖에 없고, 이마저도 건강증진센터나 학생상담센터 등에서 겸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론이지만 성폭력 신고 대응에 따른 센터의 전문성 또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당연하다. 이 문제도 현재 도마에 올랐다.

제주대 총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사례도 인권센터가 매뉴얼대로 대응했지만 결국 문제가 됐다. 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비 할 필요가 있다"며 "학생회 내부적으로도 개별 학생들의 제보를 받는 창구를 검토중에 있다. 미투를 계기로 비뚤어진 상아탑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국 대학 총학생회 연대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는 지난 1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학 내에 만연한 교수 권력과 젠더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대학측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각 대학 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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