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5) 해안동 독숭물 등 용출수

해안동 일대는 5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지형이 바다 게의 눈과 같고 정상이 평평할 뿐만 아니라 바다와 같이 마음이 평온함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해안’이라 했다. 노형동에 속하는 해안동은 한라산의 영기를 가장 먼저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발 200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순박한 삶을 살아온 제주 산간 마을에 새사름으로 이주해 왔다고 해서 ‘이생’이라고도 불린다.

해안동은 묵은가름에서 설촌되어 차츰 새가름으로 사람들이 이주해왔다. 이런 이주조건에는 ‘물’이 전제됐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해안가 마을처럼 식수를 찾기 위해, 외도천이 지류인 무수천 지경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이 마을은 목장인 ‘사소장’에 속해 있었으며 과원(과수원)도 있었다. 특히 주기적으로 물을 공급해야 하는 과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물이 풍부했다는 걸 암시한다. 《제주읍지(1780)》에는 “사소장이 넓이는 45리이며 물이 11군데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기록을 볼 때 하천가로 이주한 후에는 비교적 물의 혜택을 많이 받은 지역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해안동 ‘독숭굴’에는 마을사람들이 보전하는 독숭물이란 용출수가 있다. 이 물은 해안마을 4길 무수내도에 있으며, 거리를 두고 윗물과 아랫물로 솟고 있는 하천가 용출수다. 물은 두 군데서 용출되는데. 윗물은 도로를 개설하면서 원형을 잃어버려 옛 돌담 일부와 물만 남아 있고 아랫물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숨골 형태의 동굴 같은 돌구멍에서 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독숭굴물이라고도 한다. 

독승윗물s.JPG
▲ 파손 방치된 독숭물 윗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20130322_173730N.jpg
▲ 독승물 아랫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독승2s.JPG
▲ 독승물(아랫물) 용출지점.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해안분교가 있는 서쪽마을 ‘이생’이라고 했던 마을의 식수로 산물 근처에는 비지낭굴길 독숭물일뤳당이라는 ‘할망당’이 서쪽 냇가에 있다. ‘독’은 돌이란 뜻이고 ‘숭’은 숨골을 말한다. 곧 돌에 있는 구멍에서 솟아나는 물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물로 가려면 마을 우회도로가 나면서 도로변 석축으로 막혀 도로에서 바로 진입할 수 없고, 해군호텔 길로 우회해서 찾아 가야 한다. 도로가 개설된 다음부터는 독숭물에 가려면 먼 길을 돌아서 가야하므로 마을사람들이 이용을 꺼리면서 산물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방치되어 있다. 

윗물이 식수가 마르면 아랫물이 식수를 사용했는데, 아랫물은 3개의 통을 만들고 식수, 음식물과 빨래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이 솟는 궤 형태의 독숭굴은 원형 상태를 간직한다. 옛 사용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물통과 돌담 등이 남아 있어 다소 위안이 된다. 그러나 무수천유원지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산물 위 한라산 방면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관광단지가 들어서면서 산물이 없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제주시에서는 해안동 설촌의 근거가 되는 이 산물을 무수천유원지의 명소로 보존하는 대책을 조속히 세워, 개발로 사라져 버렸다는 원성을 사지 않길 바란다.

월산마을 해안병듸에는 녹낭당물(녹남담물)도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산물은 월산남2길 도감내(도그내)가 도로변에 있는 용출수로 당이 있어 당에서 사용한 물이다. 설촌 당시엔 당에서 사용하며 식수로 사용하지 않고 하천 동쪽에 있는 작은 산물을 이용했다. 마을이 커지자 물이 부족하여 당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산물 주변을 넓게 웅덩이를 파고 정비하여 월산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었다. 예전에 산물에 입구에 큰 녹나무(녹낭)가 있다고 하여 녹낭당물로 부르고 있다. 최근에 산물 뒤편에 별장 같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IMG_6357 수.JPG
▲ 녹남당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IMG_6368s.JPG
▲ 녹남당물 내부.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지금 형태의 용출수 모습은 1935년에 웅덩이를 파 개수할 때 모습으로 2007년에 사각식수통과 일자수로의 빨래터 형식으로 옛 형태를 살려서 다시 개수하였는데,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용출되는 물량이 예전만 못하고 물이 때로는 정체되어 식수통 안은 녹조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개선되었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cats.jpg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