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86) 《"새로운" 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김명남 옮김, 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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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김명남 옮김, 까치글방. 출처=교보문고 홈페이지.

“프로이트의 말은 절반은 틀린 말이고, 나머지 절반은 거짓말이다.” 

뇌과학자들은 뇌와 신경세포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무의식 개념을 정초함으로써 다윈의 진화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더불어 근대적 가치를 혁신한 것으로 손꼽혀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뇌과학자들의 마음 연구가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임상학 수준에 머물렀던 탓에 인간 심리의 구조와 작용에 대한 본질적인 연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의식의 터전 위에 집을 지은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에 이르러 역사와 민족 개념까지 등장한 상황이니, 뇌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논변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꿈은 의식일까 무의식일까?”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보면 성립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뇌과학자들은 꿈의 실체를 의심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규정하고 그 꿈의 해석을 통하여 인간의 의식과 인간 존재를 해명해보고자 했지만,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꿈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라고 재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꿈을 포함해서 명백한 의식 작용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마음은 마음의 독자적인 정신세계의 발현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특히 신경세포로 이뤄진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므로 신체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환원하곤 한다. 그러니 이제는 신체화한 마음(embodied mind)를 넘어서 뇌화한 마음(embrained mind)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Leonard Mlodinow)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하여 5년간 치열하게 뇌과학 공부를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신경과학 대가 크리스토프 코흐의 코흐연구소에서 사회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진행하는 인간의 마음에 관한 연구, 특히 새로운 무의식을 연구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했다. 800편의 관련 논문을 읽고 기억의 신경과학, 인간 시각계의 개념세표, 얼굴 파악에 연관된 피질 구조 등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거의 매주 코흐연구소의 점심 모임에 거의 매주 참석해서 뇌과학 연구자들과 친밀도를 높이며, 자신이 직접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 촬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뇌, 마음, 사회>, <감정의 신경생물학>, <행동의 분자적 기반> 등의 수업을 들었으며, 인간행동의 생물학적 기원과 같은 주제의 학회 참석했다. 

이렇듯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한 이 책의 원제는 '서브리미널(Subliminal)'이다. ‘역하적(閾下的)’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개념은 ‘역치(threshold value, 閾値) 아래의’라는 말이다. 역치는 ‘문지방 역(閾) + 값 치(値)’로서 안팎을 구별짓는 한계를 뜻하는 것으로서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극의 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심리학자들은 ‘의식의 역치 아래’를 가리키는 말로 이 단어 서브리미널(Subliminal)을 사용한다. 따라서 ‘의식의 역치 아래’라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자극에 반응을 일으킬 정도의 자극 없이도 존재하거나 작용하는 ‘무의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제는 “무의식은 어떻게 당신의 행동을 지배하는가(How your unconscious mind reles your behavior)”이다. 저자는 역치 효과를 소개하고 무의식의 과정과 영향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의식적 자아와 무의식적 자아 양자 모두를 이해해야 가능하며, 양자의 상호작용도 파악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의식 아래의 뇌는 비가시적이지만 의식적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칼 구스타브 융, 프로이트 등 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행동의 무의식적 측면을 탐구했다. 내성법, 외현적 행동관찰, 뇌손상 환자 연구, 동물 뇌에 적극 삽입하기 등의 방법론으로 연구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나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기술하고 그것에 해석을 가한 것일 뿐 과학적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임상병리학적 관점에서 체계화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이 의식이나 신체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밝혀낼 수 없었다. 따라서 뇌과학자들이 fMRI를 비롯한 세련된 신기술로 의식 아래에서 기능하는 뇌를 들여다보며 실행하고 있는 “의식 아래의 세계”에 대한 연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무의식의 새로운 과학이다. 

마음의 과학을 개조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fMRI다.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은 MRI와 비슷하면서도 뇌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fMRI는 뇌 활동의 강도가 달라질 때 발생하는 혈류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함으로 뇌 구조의 활동을 지도로 그려낸다. 작동중인 뇌의 활동 수준을 약 1mm의 해상도로 지도화 함으로써 뇌의 안팎을 아우르는 삼차원 영상을 제공한다. 이제 컴퓨터는 인간이 보고있는 것에 대한 뇌의 반응을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인간이 보고 있는 것을 재구성해낼 정도로 놀라운 진화를 보이고 있다. 이제 뇌지도는 인간의 시지각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발현하기 시작했으니 인간 의식의 근저에 존재하는 잠재의식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화할지를 기대하는 것 자체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저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로 구성된 뇌를 새로운 무의식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감각과 마음, 기억과 망각을 들여다보면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마음을 파악한다. 나아가 그것을 사회적 무의식으로 재구성하며, 사람의 마음과 외며, 마물, 내집단과 외집단, 감정, 자기 자신 등의 개념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물리적 현상 너머 생명 현상을 좌지우지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특히 무의식에 관한 새로운 연구방법과 개념규정을 정리하고 있다. 체계적인 실험을 거쳐 뇌를 들어다보고 그로부터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무의식에 관한 새로운 접근으로 ‘새로운 무의식’을 제안하고 있다. 

바야흐로 ‘무의식에 대한 뇌과학적 전환’의 시대다. 새로운 무의식 연구는 뉴턴의 역학을 뒤집은 양자역학과 마찬가지로 뇌의 기능, 인간 이해에 혁명을 야기한 사회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에 주목한다. 칼 구스타브 융은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꿈과 신화를 연구해야 하다고 했다. 역사가 문명에서 벌어진 사전의 기록한 이야기라면 꿈과 신화는 마음의 표현이다. 칼 구스타브 융은 꿈과 신화의 원형들이 시간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작동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건 가설일 뿐 검증되지 않았고, 검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과학적 방법으로 뇌의 작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뇌의 생리적 발생, 무의식의 작동방식을 탐구하는 것이 뇌과학 시대 무의식 연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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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현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과정 수료.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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