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64) 젊은 거지 막보지 마라

* 게와시 : 거지, 비렁뱅이(거지를 얕잡아 일컫는 말)

사람을 보려거든 그 속을 들여다볼 일이다. 겉만 보고 판단했다 잘못될 때는 실리(實利) 마저 놓치는 수가 있다. 말(馬)은 비루먹어(피부가 헐고 털이 빠지는 병에 걸려) 살이 찌지 못한다고 버리기 쉽고, 선비는 가난에 허름한 남루차림을 보고 놓쳐 버리기 쉽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젊었을 때는 앞날의 출세를 위해 능력을 키우며 충전하는 시기다. 그래서 삶이 몹시 궁핍한 처지라 비렁뱅이와 같은 행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터라, 언젠가는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으므로 푸대접하지 말라는 것이다.

옛 어른들의 높은 식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난’이 젊은이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을 일깨운다.

보고 느낀 바 있어 스토리텔링 해야겠다.

불과 몇 개월 새 트로트 가수 ‘박서진’이란 이름이 사이트 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시장바닥에서 엿을 팔던 엿장수, 장돌뱅이였다. 1995년 생, 경상남도 삼천포 산이다.

얼마 전,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 매주 수요일의 ‘도전, 꿈의 무대’에 5명의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해 기량을 겨룬다. 그중 5주 연속 5승하는 가수에게 유명 작곡가로부터 노래(곡)를 주게 한다. ‘인간극장’에 이어 진행되는 이 프로는 마침 아침을 먹는 시간대라 선택의 여지없이 눈을 주게 된다. 설렁설렁 보아 넘기기 일쑤인데, 눈을 꽉 붙들어 놓은 젊은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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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학력은 중졸이 전부다. 크면서 주위로부터 얼마나 숱하게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인가. 냉대는 가슴 아린 것이다. ‘젊은 게와시 막보지 말라’.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사진은 트로트 가수 박서진. 출처=박서진 페이스북.

박서진.

새빨간 옷, 반바지 차림에 까만 나비넥타이가 인상적인데, 그 매무새보다 그의 장구 치는 솜씨가 여간 현란하지 않았다. 채를 잡아 장구를 치면서 순간순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올랐다 내리고 몸을 뒤틀고 머리채를 마구 흔들어대고…. 그러면서 그 역동적인 장구에 맞춰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하고 노래를 온몸으로 부르는데, 사람을 아주 빠져들게 한다. 밥을 뜬 채 팔이 떨어지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박서진의 놀라운 장구 솜씨와 노래에 거푸 빨려 들면서 열렬히 응원했다. 내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마침내 그는 5주 연속 5승을 달성했다. 세상이 그의 편이었다. 시종 압도적인 점수였다. 내 아들의 일처럼 기뻤다.
  
마침내 ‘장구의 신’ 박서진이 작곡가 홍진영 씨에게서 곡을 받는다. 곡명이 ‘아빠’다. 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힘들고 고독한 길을 떠나야 하는 아빠의 인생,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빠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내용을 담은 신곡.

오늘도 달려간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가지밭길 걸어가도/ 나는 멈출 수가 없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토끼 같은 자식 위해/ 슈퍼맨이 되어야 해(중략)
사랑 찾아 행복 찾아/ 고독한 길을 떠난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가야만 하는 길이니까…
가수로 정식 데뷔한 박서진.
  
그가 지난 2018년 4월 1일, KBS 열린음악회에 초대가수로 출연했다. 물론 생애 처음이다. 봄바람 타고 매화가 한창 흐드러진 광양에서 막이 오른 그 무대에 장구의 신, 박서진이 오른 것이다. 수많은 가수들이 한번 오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다.

신곡 <밀어 밀어>를 불렀다. 장구와 함께하는 그의 노래는 에너지가 넘쳤고, 그의 퍼포먼스는 기어이 무대를 장악했다. 청중들로부터 특별한 환호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최고의 멋지고 우아한 엔딩을 표현해 주었다.

신인 가수 박서진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고향 삼천포 전어축제에 일번지 예술단 공연에 찬조 출연했었다고 한다. 조회 수가 자그마치 13만9383회였다지 않은가. (4월 6일 기준 14만회 돌파)


그때 그 5주, 박서진이 아침마당에 나올 때면 어느새 내가 긴장해 있었다. 그의 성공을 빌었다. 그의 재능이 아까웠고 장구와 노래의 접목이 탐스러웠다. 아니다. 그에 앞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가 시장에서 엿을 파는 엿장수의 아들이라는 데서 오는 연민의 정이었을 것이다. 가난했던 사람은 가난을 안다.

그의 가족을 거지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거지를 비웃듯, 장돌뱅이 또한 대우 받는 직업은 결코 아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차가운 게 현실이다. ‘젊은 게와시’라 하니 어감에서 언뜻 장돌뱅이를 떠올렸을 뿐이다. 

그의 학력은 중졸이 전부다. 크면서 주위로부터 얼마나 숱하게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인가. 냉대는 가슴 아린 것이다.

‘젊은 게와시 막보지 말라’.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그의 재능은 장성하면서 인정받았다. 이젠 그의 이름 박서진 앞에 또 다른 멋진 이름이 붙어 다닌다. ‘장구의 신’ 그리고 ‘KBS 열린음악회, 그 큰 무대에 선 신인 아닌, 유명 트로트 가수!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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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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