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 고태민 제주도의원

올해 4·3 70주년 추념식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고 컸다. 우선, 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14년 이래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희생자와 유족에게 국가의 폭력적 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과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희생자 명예회복과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100대 과제에 ‘제주 4·3 완전 해결’이 포함되어 있고, 4·3 행방불명인 유해발굴과 4·3희생자 추가 신고, 제주 4·3 제70주년 기념사업 추진, 과거사 피해자 배·보상 등이 추진될 것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고무적인 모습이다.

애월읍 지역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 추념사가 특히 가슴에 와 닿는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영모원’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4·3 추념사에서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다”고 말했다.

대통령께서 언급 한 대로,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영모원은 하귀1리와 하귀2리 마을지도자들이 하귀리발전협의회를 구성, 주민과 출향 인사들이 십시일반 모금하여 2003년에 조성한 추모 공간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지역 출신 독립유공자와 전몰용사, 4·3 희생자, 군·경 희생자를 한 곳에 모셔 같이 위령제를 지낸다. 위령단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위국절사 영현비’와 ‘호국열사 충의비’가 있고, 오른쪽에는 ‘4·3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특히, 4·3 당시 희생자가 어떤 위치, 무슨 활동을 했는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희생자라는 의미로 한 자리에 모셨고, 이로 인해 지금은 마을 화합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실상 애월읍 하귀리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때 도내에서 가장 많은 항일운동가로 활동했고, 4·3 당시에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4·3 당시 희생자만 300여명인데, 위령비에는 당시 숨진 마을 주민들의 이름이 가득히 기록되고, 다음과 같은 추모글이 적혀 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추모글이 말해주듯 슬픈 역사를 사실 그대로 알고 기억하되, 이를 화해와 상생으로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모원은 앞으로 4·3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198232_228451_4226.jpg
▲ 고태민 제주도의원.
4·3당시 애월읍은 법정리 19개 마을 1,559명이 희생을 당하는 등 중산간과 해안 마을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극심한 실정이었다. 마을마다 희생자가 없는 곳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하귀 영모원과 비슷한 의미로 상가리와 장전리에서 위령비를 세워 마을 단위 추모행사를 하고 있고, 또한, 올해는 광령1리와 하가리가 주민참여예산으로 추진하고 있다. 고성1리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예산 반영을 검토하는 등 추모를 통해 화해와 상생을 실천하는 숭고한 노력이 애월읍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음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러한 마을 공동체의 노력과 정성이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행정에서도 공유지 제공과 예산 지원 등 주민들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고태민 제주도의원.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