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3) 삼양3동 벌랑 용출수

삼양3동은 ‘사철 파도가 높고 파도치는 소리가 파도를 가르는 듯하다’하여 칠 벌(伐), 물결 랑(浪)을 써서 벌랑(버렁, 성량포)이라 불렸다. 계절풍의 영향이 심한 곳으로 여름에는 북동풍이 많이 불고 겨울에는 북서풍이 강하다. 이로 인하여 파도로 밀려온 모래가 해안 200m이내에 평지와 동산을 만들고 이 모래밭과 동산을 농경지를 만들어 생활의 터전으로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 설촌의 중심이 되었던 산물은 벌랑1길에 있는 ‘궷물’이다. 이 궷물을 중심으로 반경 60m안에 크고 작은 산물들이 바닷가 포구에서 군락을 형성하며 용출되고 있다. 궷물은 속칭 ‘벌랑’ 마을에 있는 해변가 바위굴에서 솟는 물을 말하는데, 궷은 궤의 센소리로 동굴(작은 굴로 일종의 바위그늘집)를 의미하는 제주어다. 현재는 도로를 확장하면서 궤는 없어지고 산물은 벌랑1길 도로 밑 흄관 안에 보존되어 있다. 이 산물은 도로 옆 돌담으로 둘러싼 못 형태의 사각물통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사각물통 옆으로 도로를 개설 공사로 다시 축소되어 삼각물통으로 변해 버렸다. 이처럼 개발이란 이름하에 편리함만 추구하면서 설촌의 역사인 산물이 등한시되고 손쉽게 없애 버린다면 과연 제주생명수라는 산물이 서 있을 자리는 어디인지, 하나둘 없어지는 현장을 보면서 애석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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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소 전 궷물(사각형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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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공사로 축소된 삼각형태의 궷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궷물에서 서쪽 벌렁서로로 60m 정도 옆 올레로 들어가면 바다 끝에서 ‘벌랑물’이란 산물을 만날 수 있다. 이 산물은 벌랑지경에 있지만 지번은 화북동에 속해 있어서 화북사람들은 벌랑물이라 한다. 또 다른 이름으로 벌랑에서는 서펜물이라 하는데, 벌랑마을에서 보면 버렁개(포구) 안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식수보다는 주로 목욕물로 사용한 용출수다. 서펜은 서쪽을 나타내는 제주어다. 그리고 이 물이 내리는 곳에 남자들이 목욕했던 남자목욕통 ‘아랫물’이 있었다. 이 서펜물 바로 곁 동측인 포구 안쪽에 ‘빌레(너럭바위의 제주어)’에서 솟는 물인 빌레물도 있다. 

서펜물은 여름철에만 사용한 여자들이 목욕하는 물이었다. 이 용출수는 원래 돌담으로 둘러싼 고정적인 산물 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름에 동네 남자들이 여자들을 위해 제주의 전형적인 돌담인 듬성듬성하게 허튼막 쌓기로 만든 임시 목욕통을 만들고 사용했다. 

서펜물은 예전에는 돌담을 쌓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물을 받아 목욕도 하고 때로는 식수로 사용했다. 지금은 화북동에 서펜물이 속해 있어서 화북동마을만들기 일환으로 3칸의 일자형 물통을 만들고 시멘트 단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파도의 영향 등 아무런 검증 없이 쌓아 버려서 건너편 포구의 옛 방파제 축담과 조화롭지 못하고, 태풍이나 큰 파도 때는 일부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전에는 산물 입구에 초가가 있는 전형적인 제주돌담 형태의 올레로 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현대식 개인주택이 들어서면서 올레가 사라져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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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레물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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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방파제 축담과 서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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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펜물 내부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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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버린 서펜물 올레.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해수욕장에서 서쪽인 삼양2동과 경계지점인 벌낭포구의 검은여원에 ‘물의 나는 형태가 새각시처럼 순하여 얌전하게 졸졸 솟아난다’고 하여 ‘새각시물’이라는 산물이 있다. 한 때 수도가 보급되면서 모래와 돌로 메워져 방치되다가 2007년에 해안도로 개설로 묻힐 뻔 했던 용출수로 여자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삼양3동 주민들은 ‘옛사람의 여자의 몸매를 닮았다고 하여 새각시물이라 하였네. 마시고 몸 감고 빨래하던 곳, 아끼고 즐겨보세’라고 쓴 표석을 세우고 정자식 비가림시설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재정비하였으나 항시 관리가 안 되는지 목욕탕으로 만든 바닥에 이끼가 잔득 끼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너무 거창한가. 축소된 궤물을 보면서 도로개설로 정당화하기 위해 산물을 훼손은 어쩔 수 없다는 사고가 우선시 되고 설촌의 유산인 산물을 훼손하고 마을의 모양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행위는 역사의 근본정신과 사람까지 밀어버리고 마을의 전통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버렁포구의 바람이 만든 파도를 등지면서 역사를 버린다는 말이, 사라져 가는 산물과 함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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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각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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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각시물 표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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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각시물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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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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