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65) 남과 경쟁은 하되 시기는 마라

* 놈광 : 남과, 남하고
* 심벡 : 경쟁, 선의의 경쟁
* 호곡 : 하고, 하되
* 게심 : 시기(猜忌), 시새움. 남을 미워함

사람이 사회라는 구조적인 틀 속에 살면서 다른 사람과의 겨루기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삶 자체가 겨루기다. 힘을 겨루고 실력을 겨루고 기술과 재물을 겨룬다. 서로 간에 경쟁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도 갖가지라 선의의 경쟁이 있는가 하면 남을 미워하는 시기도 있다. 

선의의 경쟁은 생산적인 것으로 피차 변화와 발전을 이룩하는 활력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을 훼방 놓거나 궁지에 빠뜨리려는 불순한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라, 관계를 나쁘게 해 서로 피해를 입는 결과를 자초하기 마련이다.

아주 비근한 예를 들면,

A와 B 두 과자점이 이웃해 있다 할 때, 어느 날 A 과자점이 500원 하던 과자를 400원으로 깎았다. 그래서 A 과자점엔 손님이 붐볐고, B 과자점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렇게 되자 B 가게도 300원으로 깎아 손님을 끌어들였고, 이에 질세라 A 과자점은 또 200원으로 깎았다. 악의의 경쟁으로 덤핑을 친 것이다. 두 과자점의 형편은 보나마나 좋을 리 만무하다. 손님들만 굿판이 됐다. ‘악의의 심벡’은 부실한 결과를 낳는다.

한데 A와 B 두 과자점이 서로 견제하되 덤핑을 치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부당한 이득이 없는 대신 둘 다 피해도 입지 않게 된다. ‘선의의 심벡’을 했기에 그런 것이다.

여행에서 음식을 먹으며 겪는 일이다. 낯선 곳인데, 주변에 식당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밥을 먹게 되는 수가 있다. 웬 걸 음식 맛이 없는데다 비싸기만 하고 불친절하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식당이 모여 있는 곳에 가라고 했다. 음식점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그렇지 않다.

여러 식당들이 서로 경쟁하면 더 깨끗하고 친절하게, 음식도 맛깔나게 그리고 가격도 낮추려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에는 경쟁이 있어야 한다. 이왕이면 그 ‘심벡’이 치열할 필요가 있다. 경쟁은 기업의 생리다. 따라서 자연스레 ‘심벡’하게 돼 있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품질경쟁, 물건을 싸게 팔려는 가격경쟁, 보다 친절한 서비스를 하려는 서비스경쟁, 상품을 널리 알리려는 광고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소비자는 훨씬 더 좋은 대접을 받게 된다. 기업 또한 노력한 만큼 손님을 끌어들이게 되므로 큰 이익을 남기게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격이  아닌가.

문제가 없지 않다. 우리 선인들은 그 옛 시절에 앞을 훤히 내다보았다. ‘놈광 심벡은 호곡 게심이랑 말라’고. 선의의 경쟁은 하되 남을 시가하거나 질투하는 일만은 삼가라 한 것이다. 무릎을 치게 하는 에지력(豫知力)이 아닌가. 

그렇잖은가. 가격경쟁이 심해지는 날엔, 기업들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눈도 벌겅, 코도 벌겅’하게 마련. 나쁜 재료를 사용하는 등 악덕이 판을 치게 되면서 상도의가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선량한 소비자들에 돌아간다. 불 보듯 한 일이다.
  
광고경쟁만 하더라도 허위광고, 과장광고로 치닫는다. 과당경쟁은 파괴적인 것이다. 기어이 기업윤리를 무너뜨리고 만다. ‘심벡’이 좋다고 모든 걸 경쟁에만 맡겨 버리면, 힘없는 개인이나 기업은 살아가기 힘든 피폐한 세상이 되고 만다.

‘게심’은 시기 질투다. 이것들은 둘 다 누군가하고 비교하게 될 때 강렬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이를테면 내가 바라는 것을 나는 가지지 못했는데, 친구(상대)는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좌절감을 느낄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쟁자가 누리는 이득에 대한 부러움에서 시작되면서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 심화되면 경쟁자를 제거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소망으로 흐를 수가 있다. 
  
한마디로 얘기해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게심’이다. 심해지면 공연히 미운 생각이 들어 결국 상대를 깎아 내리고 잘못한 점을 들춰내려는 쪽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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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개봉한 영화 <블랙스완>. 뉴욕 발레단 발레리나 주인공 '니나'(나탈리 포트만 역)는 새로운 공연에서 경쟁 상대에 대한 지나친 시기와 압박으로 서서히 내면이 망가진다. 출처=네이버 영화.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대종사는 “남 잘되는 것을 못 보아서 무슨 방면으로든지 자기보다 나은 이를 깎아 내리려 하는 것”라면서, 남을 시기하는 걸 경계했다.

‘놈광 심벡은 호곡 게심이랑 말라.’ 

경쟁과 시기의 본질을 핵심에서 짚어 냈다. 

상대와 선의에서 경쟁하는 것은 성취에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지만, 남을 시기하는 것은 서로 간에 간극을 만들 게 분명하다. 방죽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는 법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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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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