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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현광식 전 비서실장 제3자 뇌물수수 무혐의...대가성-부정한 청탁 입증 두고 시각차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최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는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적용에 대한 검·경간 엇갈린 판단으로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

2017년 12월 현광식(56) 전 비서실장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경찰은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입증에 주력해왔다. 이를 위해 올해 1월 현 전 비서실장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

현 전 실장은 2015년 2월 중학교 동창인 건설업자 고모(56)씨를 통해 민간인인 조모(60)씨에게 매달 250만원씩 11개월간 총 2750만원을 지원하도록 했다.

경찰은 이 돈에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혐의 적용을 위해서는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형법 제130조에 따라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나 중재인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제3자에게 뇌물을 주거나 줄 것을 약속한 경우 성립한다.

경찰은 고씨의 업체가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건설중인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건설공사에 참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금전적 지원이 묵시적 청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현 전 실장과 고씨는 경찰조사에서 금전적 지원 사실은 모두 인정했지만, 조씨의 형편이 어려워 도와줬을 뿐이라는 취지로 청탁과 대가성을 전면 부인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과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제3자 뇌물수수 사건에서도 ‘뇌물 제공자의 부정한 청탁’이 쟁점이었다. 

정 전 총장은 재직 시절인 2008년 STX그룹 계열사들이 유도탄 고속함 등을 수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STX는 이후 정 전 총장의 아들 회사에 7억7000만원을 후원했다.

문제는 STX가 후원금을 건네며 “방산업체로 선정되게 해달라”는 등의 구체적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3자 뇌물수수의 성립조건인 부정한 청탁이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STX가 정 전 총장의 아들 회사에 후원금을 내면서 향후 사업 선정의 대가를 기대한 것으로 판단했다. 실질적 청탁이 아닌 묵시적·암묵적 청탁을 인정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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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사건 등에서 법원은 돈을 주고받을 당시 구체적 현안에 집중했다”며 “현 전 실장 사건도 이 같은 근거로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즉, 경찰은 돈이 오고간 시기에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공사가 진행중인 만큼 제주도 비서실장이라는 위치에서 직무상 영향력을 행사할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경찰의 해석이다.

반면 검찰은 고씨가 조씨에게 돈을 건네면서 친구인 현 전 비서실장에게 대가를 기대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봤다. 경찰도 이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고씨의 건설사는 지역업체 참여를 보장하는 계약 방식에 따라 컨소시엄 형태로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공사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현씨의 영향력 행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돈을 건넨 직후 고씨가 친구인 현 전 비서실장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도 입증되지 않았다.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가 아닌 다른 사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도 확인된 것이 없다.

검찰 관계자는 “(제3자 뇌물수수가 성립하려면)건설사가 인허가나 사업수주 등을 위한 부정한 청탁을 해야 하는데 경찰 수사로는 입증이 안된다”며 “부정한 청탁이라고 볼 만한 사안도 특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근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삼성그룹에 대해서는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롯데그룹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현금 지원과 삼성 승계과정 사이에 명시적·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은 반면 롯데에는 면세점 특허에 대한 박 전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간 묵시적 청탁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있는 것으로 봤다.

해석이 제각각인 묵시적 청탁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결과적으로 원희룡 지사 최측근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는 검찰 의견에 따라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입건 당시 검찰 지휘를 받은 사건은 송치 전 검찰의 의견을 받아야 한다.

제3자 뇌물수수는 혐의 적용이 안됐지만 현직 지사의 최측근인 비서실장이 지인을 통해 민간인에게 이른바 용돈을 줬다는 사실만으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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