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5) 화북동2 곤을 용출수

화북동에는 별도봉(화북봉) 벼랑 밑에 숨겨진, 가슴 아픈 산물인 드렁물이 있다. 이 산물은 제주4.3 당시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의 비애의 식수이다. 곤을마을은 고려 충렬왕 26년(서기 1300년)에 별도현에 속한 기록이 있듯이 설촌된 지 700년이 넘는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다. 고지도에서는 예부터 오래된 포구란 뜻인 고로포(古老浦)라 표기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비문에서는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화북천 지류를 중심으로 안(안쪽)곤을, 밧(바깥쪽)곤을, 샛(가운데)곤을로 나누어져 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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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제주4․3마을 곤을동.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곤을마을의 옛 이름은 고놀개로 이곳의 산물은 드렁물이다. 드렁은 두렁의 변형어다.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로 작게 쌓은 둑이나 언덕’을 뜻하는 의미로 들어간 벼랑의 뜻으로 쓰였다고 짐작된다. 드렁에는 ‘첫 새벽에 삐걱삐걱 거리는 물지게 소리’(물허벅 지고 오는 소리)란 의미도 있다. 구좌읍 동복리에는 드렁알이란 바닷가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바닷가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벼랑 아래에서 솟는 산물이란 의미로 봐도 될 것 같다. 이 산물은 두 군데서 용출하는데, 하나는 바다 쪽에서 있다고 해서 밧(바깥의 제주어)드렁물, 다른 하나는 벼랑 끝 안쪽에서 나온다고 해서 안드렁물이라 한다.

바다 쪽 별도봉 낭떠러지 움푹 들어간 곳(제주어로 엉)에 나는 산물인 밧드렁물은 길이 비탈져 접근하기가 힘들다. 이 산물은 안드렁물로 가는 길 입구에 있는 물로, 오름 자락에서 흘러나오듯 솟는 오름이 만든 물이다. 솟아나는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아 작박(바가지의 제주어)으로 물을 뜰 수 있도록 둥근 작은 물통을 만들어 놓은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시멘트로 물골(수로의 제주어)를 만들어 놓고 끝자락에서는 떨어지는 물로 물맞이를 할 수 있도록 한 남자 전용의 물이다. 밧드렁물은 진입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든물인 밀물 때 진입로가 바다에 잠긴다. 때문에 주로 썰물 때 사용한 물로 안드렁물이 식수가 모자랄 경우 비상용 식수로 사용된다.

별도봉 절벽 아래서 솟는 안드렁물은 주상절리와 어울러져 그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의연한 느낌을 주는 한 폭의 기정(절벽의 제주어) 끝 산물이다. 이 산물은 돌 틈 사이 깊이 20㎝ 폭 10㎝ 정도 되는 사각수로에서 물이 나온다. 시멘트로 만든 찌그러진 폭 70㎝ 정사각형의 식수통을 포함하여, 얕고 작은 물통 3개가 한 줄로 열을 지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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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밧드렁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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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렁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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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렁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비록 물통은 작지만 첫 칸 식수, 둘째 칸 음식물 씻는 물, 셋째 칸 빨래하는 물로 단 한 방울의 물도 남김없이 알뜰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어 졌다. 안드렁물은 바닷물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항시 사용할 수 있도록 물통을 만들어놨다.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관리했던 여성전용의 물이었다. 별도봉에 스며든 빗물이 만든 산물이라서 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안곤을의 식수였다. 이 물은 비가 오고 난 후 흘러나오는 양이 많아진다. 즉, 지표하수의 성격이 강한 중력작용으로 용출하는 자유면 대수층(지하수 저장소)에서 만든 지하수이다.

곤을마을은 4.3 당시 마을 전체가 전소되어 잃어버린 마을의 비애를 달래기 위해, 화북천 동쪽 마을 입구(곤을서길)에 4.3 곤을동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 뒤편에는 샛곤을과 밧곤을 주민들이 사용하던 덕수물 돌담 일부가 모래에 묻혀 남아 있었는데, 이 일대를 정비하면서 매립해 버려 곤을동과 함께 물도 역사도 사라져 버렸다. 복원을 못하더라도 산물터 돌담 흔적이라도 그래도 남겨 놨으면 했다. 왜냐하면 이 산물 돌담 또한 곤을동 마을의 역사이고 마을의 생명을 지킨 유적으로 사라진 마을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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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을동 제주4․3 표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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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물(멸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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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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