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 TF 구성해 증거 능력 향상에 주력...살해 시점 밝히려 국내 첫 개·돼지 부패 실험

경찰이 2009년 제주에서 발생한 보육교사 살인 사건에 다시 손을 대면서 9년만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은 24일 오전 10시30분 한라산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요장기미제 사건(사건번호:2015-173호)에 대한 재수사를 공식 발표했다.

경찰은 사건 당시 혼선을 빚은 피해여성의 사망시간을 특정 짓기 위해 국내 법의학 사상 처음으로 시신 발견 지점에서 개와 돼지를 이용한 부패 실험까지 진행했다.

실험 결과 사망시간이 경찰이 당초 주장했던 실종 직후로 판단되면서 수사는 새국면으로 들어섰다. 경우의 수까지 줄면서 경찰의 수사에도 한층 탄력이 예상된다.

▲ 제주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이 25일 오전 10시30분 한라상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재수사를 공식 발표했다. ⓒ제주의소리
▲2009년 2월1일 새벽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사라진 20대 보육교사

범행 하루 전인 2009년 1월31일. 이씨는 여고 동창생을 만난다며 제주시 애월읍의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제주시청 대학로였다. 이씨를 포함해 4명이 오후 7시부터 모임을 가졌다.

자정을 넘긴 2월1일 오전 2시쯤 이씨는 자신의 차량을 놔두고 제주시청에서 친구들과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남쪽으로 향했지만 이씨는 제주지방법원 앞 도로에서 도중 하차했다.

곧이어 어머니에게 ‘찜질방에서 자고 간다’며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다시 택시에 오른 이씨는 제주시 용담동의 남자친구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2월1일 오전 2시50분쯤이었다.

남자친구의 흡연 문제로 싸운 이씨는 오전 3시3분 ‘니가 정말 이럴 줄 몰랐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이씨는 곧이어 애월·하귀 연합콜택시에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 탓에 결국 택시는 배차되지 않았다. 남자친구 집 앞에서 사라진 이씨는 이후 행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오전 4시4분 제주시 애월읍 광령기지국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이었다.

▲ 2009년 2월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고내봉 옆 배수로에서 그해 2월2일 제주시에서 실종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숨진채 발견돼 현장에서 검안이 이뤄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실종 일주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가방은 닷새만에 아라동서 발견 

이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들은 2월2일 경찰에 신고했다. 당일 오후 8시20분에는 제주시 이도2동 옛 제주세무서 후문 무료주차장에서 이씨가 세워둔 차량이 발견됐다.

경찰은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실종 닷새만인 2월6일 오후 3시20분 제주시 아라동 은성사회복지관 옆 밭에서 주민이 이씨의 가방을 발견했다.

이 지점은 시신이 발견된 곳과 3Okm,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광령리와는 17km 떨어진 곳이다.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제주시 용담2동 남자친구 집에서는 7km 거리였다.

수색작업이 한창이던 2월9일 오후 1시50분 산책에 나선 김모(당시 67세)씨가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고내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에서 이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실종 7일만이다.

발견 당시 이씨는 실종 당일 입었던 밤색 무스탕 상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반면 치마와 속옷 등 하의는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시신은 배수로를 향해 누워있었다.

▲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2009년 2월8일 실종 8일만에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실종 다음날 제주에서는 이틀간 비가 내렸다. ⓒ제주의소리
▲사망 시점 두고 경찰 “실종 시점”vs 부검의 “발견 시점” 수사 혼선

실종사건이 살인사건으로 전환되면서 경찰의 수사도 빨라졌다. 시신을 수습하고 곧바로 부검에 나섰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혼선이 빚어졌다. 살해 시점이 문제였다.

부검의는 살해 시점을 사체 발견 직전인 2월6~7일로 추정했다. 위 속 음식물이 소화되지 못했고 사망직후 피부에 생기는 자줏빛 얼룩점(시반), 당시 체온, 부패 정도를 이유로 들었다.

베테랑 형사들은 손사래를 쳤다. 시신의 부패가 더디고 음식물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이유로 경찰은 당시 기온과 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의 구조적 특징을 제시했다.

성인 여성이 납치돼 일주일간 음식을 먹었다는 설정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실제 부검 당시 시신에서 손발이 묶였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수사의 기본인 범행 시점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내부적 부담감은 커졌다. 범행 시점이 특정되지 않으면 수사 대상과 범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력 용의자는 택시기사 거짓말탐지기도 의심했지만 DNA 없어

경찰은 이씨가 남자친구 집을 나선 뒤 차량에 올라 곧바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봤다. 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 하려다 저항하자 목 졸라 살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용담동에서 이씨를 차량에 태워 살해 한 뒤 하가리에서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었다. 이후 광령리에서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아라동에 가방을 버린 것으로 추정했다.

이씨의 몸에서 외상 흔적이 없는 점을 이유로 이씨가 저항없이 차량에 탔다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경찰도 이를 이유로 도내 택시기사 5000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전수조사에 나섰다.

택시업체 운항일지를 확인하고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범행 당일 행적이 의심되는 용의자 10여명을 추렸다. 이중 유력 용의자 한명은 거짓말탐지기 거짓 반응을 보였다.

의심의 컸지만 결정적 단서가 없었다. 범행 현장에서 나온 DNA를 대조했지만 일치하지 않았다. 용의자도 끝내 범행을 부인하면서 결국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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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법의학계의 대가인 이정빈 전 서울대 법의학 교수가 25일 오전 10시30분 제주청 2층 한라상방에서 동물사체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9년만에 재수사 사상 첫 동물 부패실험...범행 시간 특정 수사 새국면

정황 증거는 있지만 입증은 부족했다. 경찰은 9년 전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 수사기록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수사 초기 혼선을 빚은 사망 시점을 특정하기 위해 사상 첫 동물 부패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국내 법의학의 권위자인 이정빈 가천의대 교수 등 전문가 7명을 초빙했다.

경찰은 올해 초 개 3마리와 돼지 4마리 사체를 이용해 5차례에 걸쳐 사체 부패를 재현했다. 사망 장소와 시기, 온도, 습도, 시신 속 음식물을 동일한 조건으로 부패 속도를 확인했다.

연구 결과 경찰이 판단한 사망시점에서 동일한 체온과 직장 내 온도, 음식물 소화 현상을 보였다. 실종 당일 이씨가 피살 됐다는 경찰의 주장이 법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국내 첫 법의학적 실험을 통한 사망시간이 특정되면서 경우의 수는 줄었다. 미제사건이 새국면에 접어들면서 이씨의 죽음에 대한 억울함을 풀수 있을지 도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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