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27일 이시돌마을 삼위일체대성당서 장례미사...강우일 교구장 “덩치 큰 불굴의 사나이”

제주에 터를 잡아 가톨릭 선교와 주민 자립의 기적을 일궈 낸 푸른 눈의 ‘돼지 신부’ 임피제(맥그린치. P.J Mcglinchey) 신부가 제2의 고향 한림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강우일 제주교구 교구장의 주례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장례미사는 제주교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엄수됐다. 현장에는 맥그린치 신부를 기억하는 성이시돌마을 주민들과 도내 각지에서 모인 신자 등 수백여명이 참례해 천상영복을 기원했다.

이석문 제주교육감과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원희룡, 문대림 예비후보도 함께했다. 위성곤 국회의원과 한림읍을 지역구로 둔 박원철 제주도의원도 자리를 지켰다.

▲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천주교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27일 오전 10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린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장례미사 강론을 맡은 강우일 주교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출신인 맥그린치 신부와의 인연을 언급하며 그를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덩치 큰 불굴의 사나이’라고 표현했다.

강 주교는 “맥그린치 신부는 너무 샘이 날 정도로 부럽고 멋진 인생을 살고 갔다”며 “기존 선교사와 달리 한 곳에서 무려 60년간 머물며 선교활동을 펼친 고집 강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의 옹고집을 통해 성사시키고자 했던 하늘의 섭리가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 행동이 없었다면 지역사회에 복음을 선포하고 도민에게 다가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주교는 “맨손으로 하느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았다”며 “바위 같은 믿음으로 시련을 이견 낸 푸른 눈의 사나이를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1928년 아일랜드 레터켄에서 태어난 맥그린치는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부산에 왔다. 이듬해 제주시 한림본당에 부임하며 제주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지독한 가난을 목격한 맥그린치는 척박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목축을 통한 주민들의 자립을 도왔다. 당시 한국나이는 27세였다.

1950년대 맥그린치 신부는 경기도로 수행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챙겼다. 인천에서 목포까지 기차로 암퇘지를 끌고 결국 배까지 태워 제주로 향했다.

성당에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등장하자 난리가 났다. 맥그린치는 새끼를 주민들에게 주며 목축을 도왔다. 훗날 이 돼지는 제주 양돈산업의 시발점이 된다.

1960년대 농촌자립사업으로 성이시돌목장을 설립했다. 선진 축산업 기술을 도입하면서 황무지는 거대한 목초지로 변했다.

맥그린치는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병원과 경로당, 요양원, 유치원, 노인대학 등 복지시설을 운영했다. 제주 최초의 지역신용협동조합과 가축은행도 연이어 기획했다.

▲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27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마을에 위치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목장은 형편이 어렵던 지역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는 각종 사회복지사업을 이끌며 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공헌했다.

1970년 개원한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현재 호스피스로 운영되며 오갈 곳 없는 어르신과 말기 암 환자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이마저 무료로 운영되며 약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인정받아 2014년 자랑스러운 제주인으로 선정됐다. 2015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상으로 받았다. 모국인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이달초 건강이 악화돼 심근경색과 신부전증으로 제주시내 모 병원 응급실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23일 오후 6시27분 선종했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한림성당에 고인의 빈소를 차리고 신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장지 성이시돌마을 내 글라라수녀원에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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