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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 ⓒ제주의소리
[화제] 한쪽 다리 절단 좌절 딛고 이탈리아 세리에A 활약 김동현씨 "더 많은 관심 절실"

기억도 분명하지 않은 어린시절 한 쪽 다리를 잃은 청년은 그저 운동을 하고 싶어 농구공을 잡았다. 

재미로 시작한 휠체어농구였지만 '어떻게 하면 더 빨라질까, 어떻게 하면 더 단단해질까'를 고민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갈수록 성취감을 느꼈고, 어느새 세계 무대를 호령하게 됐다.

우리나라 휠체어농구 리그를 평정하고 이탈리아 휠체어농구 세리에A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30)씨 이야기다. 지난 27일 제주 탐라장애인복지관에서 그를 만났다.

190cm를 훌쩍 넘는 우람한 체구를 지닌 동현씨는 지난 1994년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됐다. 6살이었던 당시 제대로 제동이 걸리지 않은 레미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고, 수술과 재활을 병행했지만 우측 대퇴를 절단하게 됐다.

휠체어농구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동네 선배의 권유로 농구공을 잡았지만,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단다.

"어린 마음에 무섭기도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도 혹시 부상을 당할까봐 말리셨고요. 동네 형이 따라오라고 해서 가긴 했지만, 3번 정도 나갔다가 발길을 끊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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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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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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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 ⓒ제주의소리
하지만 운명을 빗겨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동현씨는 2년 후 다시 코트로 돌아왔고, 휠체어농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무엇보다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매력이었다.

"부모님의 결정으로 쭉 일반학교를 다녔어요. 아무래도 운동시간 때는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니까 아쉬움이 많았죠. 처음에는 장애가 있어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휠체어농구에 끌렸던 것 같아요"

뒤늦게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후보선수였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국가대표 팀의 일원이 됐고, 3년 후에는 한국 대표팀의 주전 센터가 됐다.

◇ 속도감-박진감 넘치는 휠체어농구...전국 재패한 제주

휠체어농구는 일반 농구와 거의 룰이 유사하다. 경기규칙은 물론 농구공 크기나 림의 높이, 3점슛 라인 등 경기장 규격도 일반 농구와 똑같다.

공을 잡고 세 발 이상 걸으면 '트래블링 바이얼레이션' 파울이 되는 농구의 룰이 휠체어농구에서는 공을 잡고 세 번 이상 바퀴를 구를 경우 적용된다. 공을 잡았다가 다시 드리블을 하는 '더블드리블'만 휠체어농구에서는 허용된다.

언뜻 정적으로 느껴질 것이라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휠체어농구의 스릴은 일반 농구와 견줘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휠체어를 이용해 스퍼트를 할 때의 속도감, 휠체어 바퀴가 부딪히며 "챙!챙!" 소리를 내는 골밑 싸움의 박진감은 여느 스포츠와 비교해도 손색없다.

각 팀 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룰도 경기의 흥미를 더하는 요소다. 휠체어농구의 모든 팀은 레귤러 선수 포인트를 '14.5포인트'로 맞춰야 한다.

포인트는 장애의 정도에 따라 매겨진다. 척추 장애 등 중증장애 선수는 1.0~2.5포인트, 하체에 장애를 지닌 경증장애 선수는 3.0~4.5포인트가 매겨지는 식이다. 팀을 꾸리려면 중증장애 선수와 경증장애 선수의 조합을 잘 맞춰야 한다.

동현씨는 4포인트다. 센터 포지션에서의 존재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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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가 27일 탐라장애인복지관 3층에 설치된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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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가 27일 탐라장애인복지관 3층에 설치된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동현씨가 속한 제주특별자치도휠체어농구단은 이미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에다 행정적 문제로 동현씨가 출전하지 못한 제24회 홀트전국휠체어농구대회에서만 3위를 차지했을 뿐, 지난 3년간 국내에서 열린 모든 대회를 휩쓸었다.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였다.

◇ 0.3초 남기고 자유투 실패...'각성의 계기' 된 한일전 패배

올해 동현씨는 용병 신분으로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이달초 제주로 돌아왔다.

유럽은 익히 알려진 대로 휠체어농구 리그가 활성화 돼있다. 이탈리아만 하더라도 정기적인 리그경기 외에도 이탈리안컵, 이탈리안 슈퍼컵 등이 있고 유럽 각 리그 최고의 팀이 겨루는 '유로피언컵'까지. 휠체어농구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무대로 꼽힌다.

동현씨가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한 것은 2012년이었다.

생면부지 타국에서의 생활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동현씨가 처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것은 2009년이었다. 당시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동현씨를 눈여겨 봤던 이탈리아 리그팀의 감독이 넌지시 영입을 제안했다.

당시 동현씨는 갓 20살이었다. 어린 나이였고, 타국 생활의 두려움도 있었다. 부모님의 걱정도 적지 않았다. 결국 마음을 접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1년. '2012년 런던 패럴림픽' 출전 기회가 걸린 일본과의 최종 예선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팀이 패럴림픽에 출전하게 되는 '외나무 다리' 경기였다. 우리나라보다 휠체어농구가 활성화 된 일본은 사실상 한 수 위의 팀이었지만, '한일전'의 특별함은 휠체어농구에서도 그대로 통용됐다. 절대 져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경기 종료 0.3초전. 동현씨에게 2개의 자유투가 주어졌다. 2골 모두를 성공시키면 역전, 1골을 성공시키면 경기를 연장까지 끌고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동현씨는 2개의 자유투를 모두 놓쳤고, 일본이 패럴림픽에 진출하는 것을 지켜만봐야 했다. 눈물의 나날을 보냈다고 당시를 회고한 동현씨.

"힘들었죠. 제 자신에게 화도 많이 났고요. 한일전이잖아요. 정말 이기고 싶은 경기였거든요. 경기 후에 팀원들도 다같이 펑펑 울었어요"

역설적이게도 뼈아픈 경험은 각성의 계기가 됐다. 한일전 패배 직후 동현씨는 유럽리그 진출 결심을 굳혔다. '선수로서 더 성장하겠다'는 굳은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유럽리그 경력은 올해로 4년째다. 도중에 팀을 옮기기도 했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유럽에서도 동현씨를 원하는 팀은 매년 늘었다. 올해만 하더라도 기존에 몸 담았던 이탈리아리그의 팀을 비롯해 스페인 리그, 독일 리그에서 각각 러브콜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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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가 27일 탐라장애인복지관 3층에 설치된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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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휠체어농구단 김동현씨가 27일 탐라장애인복지관 3층에 설치된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열악한 휠체어농구 리그..."실업팀 기반 다졌으면"

힘겹게 시작했지만 최고 리그에서의 경험은 동현씨에게 자부심을 안겨줬다.

"사실 국내에서는 경기의 흐름을 어느정도 읽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유럽은 한 순간 방심하면 경기가 뒤집혀버려요. 득점이나 리바운드 외에도 패스와 드리블, 거의 모든 것들을 익혀야 하고요. 더 재미있고 흥분될 수 밖에 없죠"

선수들에게는 각각 출전 수당이 주어지지만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물가가 비싼 유럽에서 생활하다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정도다.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이어왔지만, 동현씨가 다시 유럽 리그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동현씨는 "이제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어느덧 적은 나이가 아니더라고요. 마냥 하고싶은 것을 따라갈 수만은 없을테고요. 이제 무슨 일을 할지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국내 휠체어농구의 사정은 아쉽기만하다. 선수들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실업팀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휠체어농구 실업팀은 현재 서울시청과 무궁화전자 2개 팀이다. 제주도휠체어농구단은 동현씨에게 좋은 동료이자 훌륭한 후견인이지만, 그 이상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선수들 모두 각자의 생업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단순히 저 좋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에요. 실업팀으로 기반이 다져지면 더 많은 선수들을 발굴할 수 있고, 리그의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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