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18)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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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변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시절에 별 유감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놀았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서 입니다. 사람들이 무미건조하고 고루해지는 것은 어쩌면 놀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가 아닐까요? 여러분은 치열하게 공부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나시나요? 저는 놀았던 기억만 생생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저를 지탱하는 힘의 근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수년간 초·중·고등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왔습니다. 책 읽고 나서 쓴 독후감들을 읽는데 옛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줄거리만 한참 쓰고 나서 마지막 줄에 느낀 점을 썼던 아이였습니다. ‘한 줄 소감’ 독후감을 2018년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학교는 쉽게 변하지 않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시험’일 것입니다. 초등학교는 그나마 시험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중·고등학교는 시험이 너무 잦습니다. 제주도는 고교 입학을 내신으로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없진 않지만, 평가체계를 꼭 시험으로 해야 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항상 피곤하다. 왜냐하면 매일 반복된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또 끝나면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중3이니까 난 더 피곤하다. 중3이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다. 고등학교 어디 가냐? 대학 어디 가냐? 매일 듣는 얘기 매일 물어보는 얘기. 이런 얘기를 들으니 너무 부담감이 크다. 그리고 수학, 영어 학원을 다니니까 수학, 영어라도 잘 봐라.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힘들겠지? 근데 부모님 기대는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계속 피곤하고 힘들다. 피곤함은 계속 끊임없이 간다. - 어느 중학교 3학년 여학생 글
영어와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를 전 국민이 느껴본 결과가 어떤가요? 수학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과목이 되었고, 아무리 영어를 오래 공부했어도 외국인 울렁증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쉽습니다. 어렸을 때 수학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수학 점수는 잘 안 나왔지만 대학에서 수학 전공을 해보고 싶을 만큼 관심이 있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수학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죠. ‘학교 수학’과 수학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영어’와 영어도 다릅니다. 앞으로는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이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교권(敎權)은 앞으로도 더 크게 무너질 것이고, 검정고시로 대학 가는 비중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입니다. 마치 감옥처럼 학교를 탈출하려는 행렬이 명백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학교와 교육은 언제나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전 국민이 교육에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별로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비교육적이 되고 있다는 의심마저 드는 학교 교육을 보면, 마치 오래된 소설책을 읽는 기분입니다. 

한 달이 지나면 제주도 교육에도 중요한 변수가 생깁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 교육감에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서 교육 정책이 달라지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 자리를 지나쳤던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떠오르는 사람은 ‘이해찬 세대’라는 말을 만들어낸 이해찬 씨 정도밖에 없습니다. 교육감 선거에서도 교육을 확 바꾸겠다는 말이나 ‘인물론’보다는 어떤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든지 어떤 교육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목소리가 더 신뢰가 갑니다. 

스카웃이 기를 쓰고 학교를 탈출하려 한 이유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작가 하퍼 리가 대공황 시절의 미국 남부 앨라배마를 배경으로 쓴 성장 소설입니다.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성장소설에서는 드문 일입니다. 이 소설은 1931년 ‘스코츠보로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되었습니다. 

테네시 주에서 앨라배마 주로 가고 있던 화물차 안에서 흑인 청년 아홉 명과 백인 청년 두 명이 싸움이 벌어져 백인 청년들이 강제로 내리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의 사주를 받은 백인 여성들은 흑인 청년들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주장하며 무려 20년 동안 재판을 벌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건국자들의 건국 철학이 신화처럼 희미해졌고 경제 공황으로 흑백 갈등이 매우 심화되던 때였습니다. 자신을 도와주던 고결한 흑인을 유혹하다 거절당한, 유얼 집안의 외로운 여성이 강간당했다고 허위 고발한 사건이 뼈대를 이룹니다. 미국 남부의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와 흑인에 대한 편견에 경종을 울린 재판의 변호를 맡은 애티커스 변호사 가족에게 벌어지는 사건이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전개돼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재판은 패배했고 누명을 쓰고 유죄를 받은 톰 로빈슨은 고의로 감옥을 탈옥하다가 무려 일곱 발의 총알을 맞고 숨졌습니다. 저는 소설이 그려내는 교육의 본질과 비교육적인 것에 대한 통렬한 고발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정교육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캐럴라인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쟤한테 망신을 주고 계신 거예요. 월터에겐 선생님께 갚을 25센트가 없어요. 선생님은 장작 같은 건 쓸 데도 없으시잖아요.”
캐럴라인 선생님은 갑자기 꼼짝도 않고 서 계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 옷깃을 움켜쥐고 선생님 책상 쪽으로 끌고 가셨습니다. 
“진 루이즈, 이만하면 오늘 아침 너에게 충분히 시달렸어. 넌 어쩜 이렇게 사사건건 빗나가니? 자, 어서 손바닥 대.”
나는 선생님이 내 손바닥에 침을 뱉으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메이콤 군에서 손바닥을 내미는 것은 말로 게약을 맺을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나는 선생님과 내가 무슨 거래를 했는지 영문을 몰라 반 아이들을 돌아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반 아이들도 의아해하며 나를 쳐다보는 거였습니다 캐럴라인 선생님은 막대자를 드시더니 손바닥을 여섯 번 짧게 내리치셨습니다. 그러고서는 교실 구석에 가서 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캐럴라인 선생님이 나를 때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반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 《앵무새 죽이기》 가운데 일부.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에 있는 조그만 시골 동네 메이콤에 사는 여덟 살배기 소녀 진 루이스 핀치(애칭 : 스카웃)는 《타임》지를 읽거나 손에 잡히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읽으면서 글과 지식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홀아비인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와 흑인 가정부인 캘퍼니아 아줌마, 그리고 세 살 위인 젬 오빠, 여름마다 방문하는 딜과 생활하면서 그야말로 ‘산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화와 토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자라난 사람에게 학교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답답하기 마련입니다. 스카웃은 단조로운 메이콤 동네 교육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동안 무엇인가 사취(詐取)당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스카웃은 아빠에게 제발 학교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입학식 날 단 하루만 출석하고 학교에 오지 않는 유얼 집안 아이들을 들먹이면서까지. 스카웃의 담임인 캐럴라인 선생님은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어휘를 알고 있는 것은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기 때문에 아빠와의 독서를 금지시켰습니다. 이 조치가 학교를 자퇴하고 싶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아빠는 딸에게 타협을 제안했습니다. 

“네가 학교에 가기로 양보한다면, 우리는 전처럼 매일 밤마다 계속 글을 읽을 거야. 그러면 되는 거지?”
- 《앵무새 죽이기》 가운데 일부.
《앵무새 죽이기》는 학교 교육이 얼마나 비교육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예컨대 스카웃의 새로운 담임인 게이츠 선생님은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비난했지만 톰 로빈슨 재판에서는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스카웃도 눈치 챘죠. 스카웃은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라고 비난했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번번히 실패하는 까닭

소설은 가정이 매우 훌륭한 학교 역할을 하는 장면 역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카웃의 집에서 오랫동안 가정부 역할을 하는 캘퍼니아 아줌마는 어쩌면 자기보다 윗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스카웃에게 거리낌 없이 소신을 말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따끔하게 혼내기도 합니다. 커닝햄 집안의 아이 월터를 초대했을 때, 월터는 시럽으로 온통 밥을 말아먹는 기인한 행동으로 스카웃 가족을 놀라게 했습니다. 스카웃은 월터에게 눈치를 주고 창피를 주었다가 캘퍼니아 아줌마에게 크게 혼났습니다. 

“너희 집 사람들이 사람들이 커닝햄 사람들보다 잘났는지 모르지만, 네가 그 사람들을 망신 주는 걸 보면 그 잘났다는 것도 별 볼 일 없는 거야. 그런 식으로 굴려면 차라리 여기 부엌에 앉아 먹어!”
- 《앵무새 죽이기》 가운데 일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캘퍼니아 아줌마는 스카웃을 한 대 찰싹 후려치며 식당으로 내쫓았습니다. 주인인 애티커스 변호사 입장에서는 캘퍼니아 아줌마를 제재할 만도 하지만, 그는 끝까지 개성 넘치는 가정부를 존중했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원칙과 집안에서 하지 않을 행동을 집밖에서도 하지 않는 소신은 교육의 가치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의 교육 현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박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젬 오빠와 스카웃은 우여곡절 끝에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훌륭한 성장에 학교가 어떤 역할을 했고 가족과 친구, 마을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교육이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로 요약되는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의 실천 정신을 학교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본래의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사회 시스템 전체를 손봐야 합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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