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에게 4월은 분홍빛으로 가득한 봄날이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핏빛으로 얼룩진 잔인함 그 자체일 것이다. 제주 땅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4월은 후자에 조금 더 가깝다. 내게 4월은 4.3 당시 오라방(오빠)을 잃고 당신도 꼭 같은 달에 돌아가신 할머니께 자꾸만 말 걸고 싶어지는, 그런 서글픈 달이다. 할머니 살아생전 단 한 번도 ‘그날’에 대해 묻지 못했다. 아물지 않은 생채기를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 선택은 4.3이 잊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과 후회로 남았다.

이런 두려움과 후회 속에서 4.3 70주기를 맞이한 해가 떠올랐다. 그리고 2월의 어느 겨울날, 70주년을 맞이하여 진행할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을 기획하는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어른들의 방식으로 4.3을 기억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4.3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새로운 방식과 방향으로 4.3을 기억하는 문화제를 만든다? 기대가 컸다. 그 기대는 흐릿해져 가는 4.3의 이름과 정신이 세대 간 기억으로써 연결되어 다시금 또렷해질 것이라는 희망과도 같았다.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을 기획했던 추진위원회에는 오현고등학교 소속 동아리 ‘초점’을 이끌고 있는 네 명의 청소년이 함께했다. 그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곧 그동안의 나를 반성하는 부끄러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또래 청소년들에게 4.3을 알리고 싶다는 진실된 마음은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추진위원회의 원동력이었다. 

추진위원회는 문화제를 대표할 문구를 가장 먼저 논의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4.3은 푸르다>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가 탄생했다. 이는 청소년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푸르른 봄날의 4.3을 뜻함과 동시에, 우리라는 단어에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주체적 의식을 표현했다. 붉은 빛으로 얼룩졌던 4.3을 청소년의 푸른빛으로 어루만지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았다. 


그러나 추진위원회의 굳은 의지와는 달리, 문화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행사 당일은 청소년 대부분이 등교하는 평일이었으며, 겨울방학 시즌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홍보하고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교육청을 포함하여, 청소년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만나고 논의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4.3을 기억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문화제에 어떠한 내용을 담아내고 그려낼 지에 대한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청소년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활용한 홍보 활동을 펼쳐 나가는데 집중했다. 재치 넘치는 웹자보와 홍보 영상을 제작하여 끊임없이 소통하였으며, 도내 모든 중·고등학교를 비롯한 청소년 유관기관에 리플릿과 포스터를 담은 홍보물을 우편으로 발송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평화마당(공연), 평화의몸짓·동백행진(플래시몹), 인권·나눔마당(부스 운영)을 가득 채울 청소년 360여명이 지원했다. 4.3에 대한 퀴즈를 맞히는 ‘4.3 골든벨을 울려라’ 대회 참가자까지 더해져, 도내 40여 개 학교 소속 청소년 500여명이 문화제에 함께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모습. 제공=이민경. ⓒ제주의소리
▲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모습. 제공=이민경. ⓒ제주의소리
▲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모습. 제공=이민경. ⓒ제주의소리

문화제가 진행되었던 4월 3일 당일, 제주문예회관은 4.3을 기억하고자 모인 제주 청소년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4.3을 겪은 할머니·할아버지 밑에서 자라거나, 4.3을 전혀 몰랐거나, 이제라도 4.3을 알고 싶은 청소년 등 저마다의 사연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4.3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췄다. 댄스 퍼포먼스, 랩·밴드 공연, 영화, 그림자 인형극 등 4.3을 담아내기 위한 그들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의 흔적은 감동 그 자체였다.

▲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모습. 제공=이민경. ⓒ제주의소리
▲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모습. 제공=이민경. ⓒ제주의소리
▲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모습. 제공=이민경. ⓒ제주의소리

KakaoTalk_20180518_090138443.jpg
▲ 이민경 2018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운영팀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또한, 무언가를 기억 ‘한다’는 것은 기억하고자 하는 주체의 행위성을 가정 먼저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들의 ‘4.3 기억하기’가 필요한 이유다. 참으로 푸르렀던 그 날의 4월. 지난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은 미래를 그려나갈 청소년들이 4.3을 기억하기 위한 첫걸음과도 같았다. 

제주의 아픈 4월이 그들의 첫걸음으로 조금씩 치유되기를 기대해본다. / 이민경 2018 청소년 4.3 문화예술한마당 운영팀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