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무 힘듭니다”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받았던 박모(49)씨가 체포 64시간만에 유치장을 나서며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제주지방법원 양태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8일 강간살인 혐의로 체포된 박씨를 상대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고 이날 밤 11시30분쯤 영장을 기각했다.
영장 기각 소식을 전해들은 박씨는 과거 법률 위반으로 납부하지 않은 벌금 50만원을 지급하고 1시간 23분만인 19일 0시53분 유치장을 나섰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 같은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박씨는 “지금 너무 힘들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제주동부경찰서 정문 앞을 나선 박씨는 갑자기 나타난 지인의 차량에 올라 곧바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범행시점과 당신 인근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 섬유조직에 대한 미세증거물 분석 결과 등을 정황증거로 내세웠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물실험을 통해 밝힌 사망시점에 대해서는 2009년 당시에도 부검의가 밝힌 시점이 아닌 형사들이 판단한 실종 시점으로 수사한 점을 이유로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실종 당일인 2009년 2월1일 범행현장 부근에서 CCTV에 찍힌 흰색 NF소나타 차량에 대해서도 차체 옆 모습만 촬영해 박씨의 택시와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여성의 우측 무릎과 어깨에 묻는 섬유 조직에 대해서도 당시 택시기사의 옷과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쳐 직접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추가로 제시한 거짓말탐지기 검사와 POT 검사(긴장정점 검사), 뇌파검사 등의 결과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양 부장판사는 “피의자 주장에 석연치 않은 점이 일부 있지만 피해자가 피의자 택시에 탄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영장이 기각되면서 경찰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찰의 수사는 계속될 수 있지만 직접증거 없이는 혐의 입증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수사팀은 "9년 전 미제사건에 대해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추가 증거를 수집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씨를 성폭행 하려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9년 전 박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결국 풀어줬다. 박씨는 이듬해인 2010년 2월 제주를 떠나 강원도 등지에서 생활해 왔다.
당시 형사들은 박씨를 의심했지만 사건 발생 3년4개월만에 수사본부는 해체됐다. 2016년 2월7일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이 이 사건을 넘겨받으면서 수사는 다시 시작됐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올해 3월26일 장기미제사건팀 내에 보육교사 살인사건 TF를 별도 구성했다. 5월10일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16일 경북 영주에서 생활 하던 박씨를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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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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