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관광진흥회 성안연구소 ‘오목(五牧)’ 선정...김정, 윤시동, 김수문, 이종윤, 이약동

풀뿌리 일꾼을 뽑기 위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2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역대 제주목사 가운데 본받아야 할 다섯 명을 선정하는 행사가 진행돼 눈길을 끈다.

사단법인 제주도관광진흥회(이사장 홍성광) 부설 성안연구소는 ‘시대가 정치인의 덕목을 요구한다-제주 오목(五牧)을 찾아라’는 주제로 훌륭했던 제주목사 5명을 선정했다. 

선정 방법은 현장 투표와 온라인 투표를 병행했다. 현장 투표는 6~7일 제주목 관아에서 관광객과 도민을 대상으로, 온라인은 4월 20일부터 5월 10일까지 진행됐다. 목 관아에서는 205명, 온라인은 276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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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제주도관광진흥회(이사장 홍성광) 부설 성안연구소가 제주목 관아에서 진행한 제주목사 현장 투표. 제공=성안연구소. ⓒ제주의소리

성안연구소는 제주목사 286명(일제통감부 설치 이후 제주군수 2명 포함) 가운데 자체 선발한 목사 10명을 후보군으로 올렸다. 투표 결과 김정 목사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윤시동, 김수문, 이종윤, 이약동 목사가 뒤를 이었다. 

김정 목사(재임 기간: 1735년 4월[영조 11]~1737년 9월[영조 13])는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수령으로 재직할 때에도 여러 폐단을 개선한 인물로 알려진다. 영조 때 제주목사로 온 그는 삼천서당을 창건하는 등 도민들의 문화 교육을 위해 힘썼다. 화북포구의 축항 공사 때는 자신이 직접 돌을 나르며 백성들과 함께했다. 

임기를 마친 그는 제주를 떠나기 전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는데, 화북의 아낙들이 머리카락으로 운구할 끈을 제작할 만큼 존경을 받았다. 그 끈은 김정 목사 가계에 보관돼 있었으나 한국전쟁 와중에 사라져 아쉬움으로 남는다.

윤시동 목사(1765년 8월[영조 41]~1766년 6월[영조 42])는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제주를 떠날 때 자신이 쓰던 물건을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도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일 때, 육지에서 곡식 6000석을 실어와서 백성들을 구제했다.

김수문 목사(1555년 3월[명종 10]~1557년 10월[명종 13])는 왜적과의 전투에서 도민들을 지켜냈다. 제주를 기습한 왜적에 맞서 정예병을 뽑아 승리를 거두는 등 수 차례 침입을 막아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하는 영광도 이룬다.

성종 때 제주로 온 이종윤 목사(1490년 8월[성종 21]~1494년 12월[성종 25])는 직접 민간 소송을 판결, 억울한 백성이 생기지 않게 만들었다. 도민들은 이 목사가 계속 있어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그렇게 4년 4개월이나 제주목사 자리를 지켰고 제주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약동 목사(1470년 10월[성종 1]~1473년 8월[성종 4])는 제주목사 시절 조정으로부터 청백리로 선정될 만큼 청렴한 행보를 보였다. 제주목사를 그만 두면서 의복과 마필 등을 모두 놔두고 떠났다. 한라산 정상에서 열던 산신제를 삼의양봉 아래로 옮긴 것도 도민을 위한 이 목사의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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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제주도관광진흥회(이사장 홍성광) 부설 성안연구소가 제주목 관아에서 진행한 제주목사 현장 투표. 제공=성안연구소. ⓒ제주의소리

성안연구소는 “다섯 목사의 특징을 보면 백성을 위하며 도덕적인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지식을 많이 퍼뜨린 것보다는 진정으로 도민을 위한 행정을 펼친 이들이 선정됐다”며 “오목을 통해 모름지기 정치 하는 사람이라면 최고 책임자라고 해서 거들먹거리지 않고 깨끗하고 청렴하게 백성과 함께 해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평가했다.

성안연구소는 오목의 업적 등을 정리한 자료집을 만들어 전국의 행정기관과 의회 등에 알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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