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94) 메도루마 슌, 《기억의 숲》, 손지연 역, 글누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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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도루마 슌, 《기억의 숲》, 손지연 역, 글누림, 2018. 출처=알라딘.

1. 오키나와의 뭇생명을 유린한 미군의 성폭력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目取眞俊, 1960~)의 장편소설 《기억의 숲》이 한국사회에 최근 번역 소개되었다. 한국사회에 오키나와의 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메도루마의 작품이 오키나와의 다른 작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그리고 집중적으로 소개된 것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우선, 《기억의 숲》의 중심서사를 이루는 사요코의 미군에 의한 강간을 주목해보자.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이르러 미군은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전 오키나와를 공격한다. 오키나와전쟁 와중 미군 넷이 잠시 부대에서 일탈하여 섬을 향해 수영을 하다가 섬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 오키나와 여자 아이들 중 한 소녀인 사요코를 폭력으로 제압하여 강간한다. 사요코를 집단 성폭행한 미군들은 아무런 도덕적 죄책감 없이 오키나와 소녀의 영혼과 육체를 유린한다. 그들에게 사요코는 영혼을 지닌 인간이 아니다. 그들에게 사요코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열대의 섬을 구성하는 한갓 자연의 대상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은 그들이 점령해야 할 적군의 영토를 구성하는 요소에 불과한 것이고, 머지않아 점령군으로서 승자독식의 환희를 만끽해야 할 그들에게 그것은 마음껏 취할 수 있는 승전물의 하나일 뿐이다. 오키나와 소녀 사요코는 그들에게 더 이상 인간으로서 ‘소녀’의 지위가 제거된 채 전쟁터에서 곧 점령군으로서 승자의 환희를 잠시 먼저 만끽하기 위해, 전우애라는 미명 아래 그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여기서, 쉽게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미군의 성폭력이 자행되는 공간이 바로 오키나와의 천혜의 자연 경관 중 하나인 오키나와의 해안 백사장이라는 사실이다. 오키나와처럼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경우 해안 및 백사장은 섬의 뭇생명의 존재의 터전인 것을 직시할 때, 미군의 성폭력이 바로 이곳에서 자행되었다는 것은 섬의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폭력이 자행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바꿔 말해 미군에 의한 사요코의 성폭력은 사요코 개인의 언어절(言語絶)의 참상으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오키나와의 뭇생명에 대한 유린이고 폭력으로,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저지른 끔찍한 대참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2. 오키나와 내부의 폭력, 그 내면화된 폭력의 양상

그런데, 메도루마의 《기억의 숲》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사요코로 표상되는 오키나와의 피해는 오키나와 외부의 폭력, 즉 미군이 최종 심급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되, 오키나와 내부의 또 다른 폭력과도 밀접히 연동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메도루마의 문학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문학의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문학적 쟁점이 아닐 수 없다. 메도루마의 문학에서 이 점은 대단히 예각적이고 섬세히 그리고 치밀하게 탐구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오키나와전을 치르면서 오키나와가 입은 전쟁의 폭력이 오키나와의 안팎을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구조화하는 가운데 오키나와의 폭력 양상이 다층적으로 구축되면서 이것에 대한 응시 역시 그만큼 조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사요코를 둘러싼 주변의 폭력은 미군의 성폭력과 또 다른 폭력의 양상을 보인다. 사요코와 그 가족은 “아버지의 노여움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 겁에 떨면서 살”(231쪽)고 있다. 사요코의 아버지는 상처를 입은 딸 사요코의 영혼과 육신을 위로해주기는커녕 하필 자신이 딸이 미군의 성폭력 먹잇감이 된 것 자체를 수치스러워하고, “미군에게 딸이 능욕당하고도 아무런 저항도 항의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무력함”(231쪽) 때문에 가족을 향해 억누를 수 없는 화를 쏟아낸다. 사요코의 가족은 아버지의 이러한 폭력에 속수무책이다. 가뜩이나 “섬사람들의 끈적끈적한 시선과 수군대는 소리”(231쪽)로 사요코뿐만 아니라 사요코의 가족 전체가 고통스러운데도 불구하고 사요코의 아버지는 개인의 무기력과 분노를, 가족을 향해 퍼붓는다. 아버지의 이러한 폭력은 사요코의 갓 출산한 애를 보면서 “미국 놈은 아니네……”, “섬 개자식덜 새끼일테주”(229쪽)와 같은 말을 심드렁히 내뱉는 장면에서, 어머니의 웃음과 작중 화자 ‘나’의 안심이 사요코가 미군과의 성관계에 의한 게 아니면, 비록 이 출산이 극단적으로는 오키나와의 남성에 의한 성폭력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괜찮다는, 오키나와에 두루 퍼진 폭력의 내면화된 양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쯤 되면, 오키나와의 폭력 양상은 미군의 가해성과 맞물린 채 오키나와 내부의 가해성을 구조적으로 생성하고 이러한 폭력들이 오키나와 안팎을 친친 옭아매고 있는, 그래서 오키나와 폭력이 오키나와의 일상 깊숙이 침전된 채 내면화된 양상을 메도루마는 묘파하고 있는 것이다. 

메도루마가 《기억의 숲》 후반부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바, 학교에서 오키나와전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는 장면에서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들, 가령 오키나와전의 피해를 입은 세대들에 대한 진심어린 이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지한 척 한 것일 뿐 오키나와의 십대 학생의 대부분은 오키나와전 세대의 역사 경험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 따름이다. 오키나와전 세대가 겪은 끔찍한 폭력은 오키나와전 이후 다양한 양상으로 오키나와 안팎을 휩싸고 있기 때문에 이미 이러한 폭력의 양상에 노출된 십대 학생에게 오키나와전 세대의 전쟁 폭력은 흔한 폭력들 중 하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통념이 관성화돼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기억의 숲》에서 그들이 보이는 특정 학생에 대한 집단 따돌림에 수반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폭력이다. 이것을 메도루마는 작품 속에서 익명의 학생들로, 즉 ‘**’와 같은 부호로 호명 처리하고 있다. 오키나와전 이후 이처럼 일상에 내면화된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와 같은 부호로 일괄 처리됨으로써 오키나와에 팽배해진 폭력과 그에 속수무책으로 불모화된 오키나와의 현실을 메도루마는 리얼하게 재현한다. 굳이 오키나와에서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고유명사로 호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 오키나와 안팎의 폭력에 대한 문학적 보복

그렇다면, 오키나와는 이러한 폭력의 뫼비우스 띠에 둘러싸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옥도(地獄島/圖)로 현상될 뿐일까. 《기억의 숲》에서 또 다른 중심서사는 미군의 성폭력에 피해를 당한 사요코를 대신하여 그를 유년시절부터 흠모하던 소년 세이지가 “작살의 증오”(43쪽)로 사요코를 성폭행한 미군들에게 작살 공격을 감행한 사건이다. 세이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자기네 섬 여자가 당하고 있는데 어떵허연 침묵허멍 보고만 있고 막지 않은”(60쪽) 것인지, 세이지는 바닷속으로 잠영하여 미군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수면 위를 헤엄치고 있는 미군의 심장을 겨냥해 작살을 찔렀다. 비록 심장을 비껴간 채 배를 찔러 “피부를 뚫고 내장을 찢었을 것”이나 “미국 놈의 썩은 피도 썩은 창자도 고등어 먹잇감이 되민 그만이여……”(43쪽)하고 자족한 채 해안가 동굴에 숨는다. 말하자면, 세이지는 미군을 죽이지는 못했으나 미군에게 상해를 입힘으로써 미군이 점령군으로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정당한 대항폭력(counter violence)을 감행한 것이다. 사요코와 오키나와 공동체를 대신하여 세이지는 무모한 행위로 비쳐질지라도 오키나와를 더럽힌 미군에 대한 보복 행위를 가한 것이다. 이것은 메도루마가 그 나름대로의 소설을 통한 문학적 보복과 문학적 행동주의를 표출한 셈이다. 

메도루마의 초기 작품을 묶은 단편선집 《어군기》(2013, 이 선집은 2017년 곽형덕의 한국어 번역으로 보고사에서 출간되었다)에는 오키나와를 덧씌운 전‘후’의 위선적 현실‐평화가 얼마나 폭력을 은폐하는지, 그래서 오키나와전에 대한 기억과 투쟁의 정치를 순치시키고 무화시키려는 국민국가의 제도적 폭력을 가감없이 드러내는바, 특히 이 과정에서 천황제를 과감히 비판할 뿐만 아니라 미군 점령이 야기한 온갖 폭력의 양상에 대해 문학적 보복을 단호히 실행하는 데서 알 수 있듯, 《기억의 숲》에서 보이는 세이지의 작살 보복은 메도루마의 문학에서 돌출적으로 표출된 문학적 모험주의가 결코 아니다. 세이지의 작살 보복은 오키나와를 대상으로 한 오키나와 외부의 폭력에 대한 오키나와 주체의 행동화된 저항이다. 말할 필요 없이 이것은 메도루마의 문학적 보복이다.

▲ 고명철 교수. ⓒ제주의소리
▷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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