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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예술

김준기 관장 news@jejusori.net 2018년 06월 11일 월요일 09:24   0면
[BOOK世通, 제주 읽기] (95) 이태호, 《미술, 세상을 바꾸다》, 미술문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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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호, 《미술, 세상을 바꾸다》, 미술문화, 2015. 출처=알라딘.

“내게 슈팅 백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어느 길모퉁이에서 마약을 팔고 있거나, 돈을 위기 위해 누군가를 쐈을 거예요.”
UPI 사진기자 출신인 짐 허버드의 사진 교육 프로그램 ‘슈팅 백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사진작가 디온 존슨의 말이다. 

미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온전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노숙자 수용소에서 ‘희망의 공동체’라는 이름의 방과 후 학교를 열고 사진 교육을 시작한 허버드의 노력은 세상까지는 몰라도 사람을 바꾸는 데에 성공했다. 저자 이태호가 이야기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미술의 힘’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슈팅 백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데에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세상을 바꾸려는 다른 또 다른 미술의 지위와 역할을 보여주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역사적 걸작 중심으로 엘리티즘을 유포하거나 경매시장 레코드를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주류미술계와 달리 이 프로젝트는 ‘벼랑에 선 사람들, 관심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예술적 표현의 과정과 결과를 선물했다. 

저자 이태호는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 멤버로 민중미술 운동을 했던 예술가다. 홍대 조소과를 다니던 중 신춘문예로 소설가 등단을 하기도 했으며, 미술전문지 <계간미술> 기자로 활동하다가 198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유학가서 10여년을 머물다가 귀국했다. 내가 그의 글을 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미술전문지 <아트인컬쳐>에 비평문을 연재하면서 당시 한국 미술 비평계의 관심사와는 결이 다른 공동체예술(Community Art)과 행동주의예술(Activist Art)을 소개하는 지면이었다. 

당시 서른 무렵이었던 필자는 1980년대부터 한국사회의 진보적 변혁운동과 흐름을 같이 했던 민중미술에 공감하고 있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창작과 비평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이태호가 미국생활을 접고 돌아와 처음 한 일들 가운데 하나가 비평작업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지난 10여년의 꾸준한 작업을 거쳐 펼쳐낸 그의 체험과 사유를 되새긴다.

이 책은 ▲ I부 : 미술, 사람들과 함께하다 ▲ II부 : 미술, 세상에 맞서다 ▲ III부 : 미술, 그 시대정신 등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I부에서는 슈팅 백 프로젝트를 비롯해, 슈팅 백 프로젝트, 브라질의 파벨라 페인팅 프로젝트, 게릴라 아티스트 뱅크시 , Tim Rollins+K.O.S., 존 에이헌의 실물 조형, 마야 린의 <월남전 참전용사 기념비> 등 거리와 공동체의 예술을 소개한다. 

브라질의 가난한 달동네를 색채 작업으로 새롭게 환기한 두 이방인은 네덜란드에서왔다. 하스와 한으로 불리는 쿨하스와 우르한이다. 이들은 네덜란드에서 기금을 마련해 파벨라 페인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 날리는 소년>을 시작으로 암벽 위에 그림그리기, 산타마르타 마을 디자인 작업, 34개 건물과 거리, 삼바 스튜디오 등에 페인트칠하기 등의 작업으로 파벨라의 환경을 시각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관심을 촉발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예술의 사례를 만들었다.

얼굴 없는 예술가로 유명한 뱅크시는 거리에 낙서화를 그리는 게릴라 아티스트다. 그의 낙서화를 따라 관광코스가 생길 정도로 그의 작품은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그린다. 도시의 거리와 건물에서 분쟁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 걸쳐진 그의 행동은 비주류의 한계를 넘어 주류미술계를 움직이는 힘을 보여준다. 

Tim Rollins+K.O.S.는 미술교사 팀 롤린즈와 그의 학생들이 꾸린 공동체 K.O.S.(Kids of Survial)의 결합체다. 이 팀은 뉴욕 브롱스 지역의 방과 후 학교에서 함께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그리는 작업을 했고 그 결과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낸 공동창작으로 미술교육에 대한 새 길을 열어주었다. 

사우스 브롱스의 존 에이헌은 그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조각의 주인공으로 모시고 아파트 벽을 비롯한 마을 곳곳에 설치함으로써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로서의 미술을 보여주었다. 

마야 린의 <월남전 참전용사 기념비>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공미술로서 개념미술이 어떻게 성찰적인 미술로 존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정치적 예술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모두 예술가이고, 그 안에서 예술적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이 세계에 정치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이 세계의 개념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다. 정치적이지 않거나, 비판적이지 않거나 세계에 대한 개념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이 책의 II부 첫머리에 나오는 예술가 알프레드 자르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예술은 정치적이건 정치적이지 않건, 그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적 맥락 위에 놓여있다. 이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생동하는 예술가들의 예술은 저항의 언어로서 구체적인 사회참여로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행동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의 II부에서는 알프레도 자르의 작품 세계, 예술노동자연합의 사회적 참여, 68혁명의 꽃이 된 민중공방의 포스터, 게릴라 걸스의 선전포고 등 저항과 사회참여로서의 예술을 담았다. 

알프레드 자르는 이미지는 순수하지 않다는 점을 갈파하고 전세계 곳곳의 전쟁과 폭력, 문화제국주의 문제 등을 개념미술 언어로 표현하며, ‘세상은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노동자연합의 사회적 참여는 전쟁폭력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었다. 1969년 뉴욕에서 미술가, 영상제작자, 작가, 비평가, 미술관 관계자 등이 결성한 단체 예술노동자연합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정치적, 미학적, 윤리적 실천을 목표로 출발했고, 베트남 종전을 위해 연대함으로써, 미술관의 권위와 관심 허물기를 시도했다. 행동주의예술은 20세기 후반 이후 전위적인 예술운동의 핵심이다. 그것은 예술운동이 아니라 사회운동으로서 실제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천이었다. 

이 책이 소개하는 두 가지 사례, 파리 68혁명의 민중공방 포스터와 뉴욕 게릴라 걸스의 페미니스트 행동주의는 세상을 바꾸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예술가들의 실천사례들이다. 

민중공방의 포스터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질주한 68혁명의 열기를 잘 보여준다. 정치혁명으로서의 실패했지만, 문화혁명으로 성공하여 동시대 삶에 큰 영향을 주고있는 68혁명 과정의 예술은 익명의 포스터들이 분출한 시각예술의 힘을 잘 보여준다. 게릴라 걸스는 남성중심의 미술계에 문제를 제기하며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의제를 촉발했다. 예술은 실재나 현실을 반영한다는 생각은 고전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변함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행동주의예술은 현실반영으로서의 예술을 넘어 현실변혁으로서의 실천을 추구함으로써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새로운 예술흐름을 창출했다. 

세상을 향한 변혁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하는 필자는 폭발적이고 적극적인 예술적 실천 이외에도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차원에서 고착된 예술의 비판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Ⅲ부는 서울대학교 문장, 다문화 사회 속, 한국미술의 정체성, 공공미술의 양적 확대와 질적 결핍, 나치가 기획한 <퇴폐미술전>, 미술은 전쟁과 폭력을 어떻게 묘사하나 등의 문제들로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미술을 다룬다. 서울대학교 문장(紋章, emblem) 이야기는 서구는 물론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봐도 문화적 정체성을 담기 보다는 서구적 사유와 감성을 담은 식민적 문화로서 우리를 스스로 이방인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게 필자의 비판이다. 서구화로 인한 전통단절과 문화식민주의의 민낯을 들춰낸다. 현대미술에서 인체를 묘사할 때 나타나는 피부색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미술의 정체성 문제 또한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장구한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동시대미술을 다룸으로써 이른바 콘텍스트 속에서 텍스트를 읽어내는 힘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필자는 1980년대 사회변혁 운동과 함께 한 민중미술 운동의 핵심 그룹 멤버로서 세상의 변화와 함께하는 미술을 지향하는 미술인이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전 세계의 새로운 미술은 그가 청년시절부터 열망했던 변화를 향한 예술적 실천의 사례들이다. 이러한 관심은 그로 하여금 귀국 이후 공공미술 담론과 실천에 투신하게 했다. 그는 후미진 마을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활성화한 낙산프로젝트 예술감독으로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활동한 그는 공공미술의 역사와 한국 공공미술의 흐름과 문제점 등을 구체적인 데이터와 함께 제시한다. 나치의 퇴폐미술과 전쟁폭력을 다룬 미술에서도 그는 예술과 정치, 사회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예술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설령 누군가 자신의 예술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선언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당대의 정치적 맥락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은 언제나 사회적이다. 그 어떤 예술도 사회적 맥락과 결연한 상태에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사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가치와 결별한 예술, 사회적 윤리를 외면한 예술, 사회적 과정을 생략한 예술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종류의 예술을 ‘정치사회적’이라는 용어로 뭉뚱그릴 일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별하여 볼 필요가 있다. 저자 이태호가 그리고 있는 세상을 바꾸는 예술의 힘은 정치적인 예술과 사회적인 예술 양면에 걸쳐있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대면해온 예술이 대부분 정치적인 맥락 위의 것이었다면, 이 책이 언급한 예술들은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 위에 놓여있다. 예술은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 새삼스럽지만 꼼꼼하게 챙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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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현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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