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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인 북-미 정상 단독회담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 댄 스카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오마이뉴스..
[분석] 6.12 북·미공동성명, CVID와 종전선언은 왜 빠졌나?

70여 년 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북한과 미국은 '종전', '비핵화 절차와 시기', '관계정상화'와 같은 구체적인 약속에 합의하진 못했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우선 선언적인 합의를 내놓고, 서로 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며 불신부터 극복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북·미공동성명은 최근에 제기된 여러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단시간 내의 비핵화 로드맵' 종전선언, '북한 체제보장 방안' 등 이번 회담에 기대를 거는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 미국이 그토록 강조해온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문구도 없었다. 

대신 더 길고 넓은 범위의 '새로운 북·미관계 로드맵'이 제시됐다. 70여 년간의 적대관계 대신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북·미관계'를 이룬다는 최종 목표에 대한 합의가 있었고, 이를 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주로 북한의 과제다. 여기에 핵무기의 반출·폐기, 핵시설 폐기 등의 과정을 포괄한다. 반대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주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다. 한국전쟁의 종전, 북·미수교 등 관계정상화를 포괄한다. '선 핵포기 후 보상'과 '선 체제보장 후 핵폐기'를 주장하던 양측이 서로의 과제를 동등하게 합의에 반영한 것이다. 

미사일 실험장 폐쇄 - 연합훈련 중단 우선 교환... 인도적 조치로 신뢰부터 

회담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회담 중 김 위원장은 ICBM 개발에 필수적인 미사일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합의사항 준수를 위해 김 위원장이 이행을 약속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아무 조건 없이 폐기한 데에 이어 북한 스스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이 매우 위협적으로 느끼는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이 해결해준 셈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미국의 합의 이행조치로 볼 수 있다. 서로에게 설정한 포괄적 형태의 과제에 대한 '이행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장 구체적인 합의 사항인 '전쟁포로 유해발굴 및 송환'은 인도적인 문제로서, 잘 이행만 된다면 정상 사이의 신뢰는 물론, 북한-미국 양국 국민 사이의 신뢰가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폼페이오 국무부장관의 두 번째 방북 때 억류됐던 미국 시민 3명을 석방한 데에 이어 북한에 대한 미국 측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이번 북·미공동성명은 구체적인 이행사항의 교환보다는 포괄적인 합의를 설정해두고, 우선 할 수 있는 이행조치로 서로 간의 신뢰를 쌓아나가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의 CVID 구상에 '현실의 벽' 반영된 듯

하지만 이번 회담에 뒤이어 고위급회담을 열어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협상을 벌여나가기로 한 것은 CVID라는 미국의 목표에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핵화 완료시 대북제재를 해제한다는 입장도 그대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매우 현실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를 강조하던 그는 회담 뒤 기자회견에선 "비핵화는 과학적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애초에 '비핵화는 핵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던 그가 '북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CVID로 인정하겠다는 정도로 북측과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이날 공동성명 내용이 알려진 직후 "종전을 선언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새로운 관계를 수립한다는 내용이 그런 함의를 품고 있다. CVID라는 말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비핵화의 함의를 품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할 내용들을 갖췄지만, 미국 여론의 반발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공동성명"이라 평가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첫 정상회담에 걸맞는 합의문"이라고 총평했다. 고 교수는 "적대관계 청산이라는 구체적인 수식은 안 붙었지만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란 말에 다 담겨 있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합의를 담고 있다"며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큰 그림과 밑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로드맵은 앞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뢰 구축 중요성 모두 인식한 결과"... "수개월 내 구체적 합의 나올 듯"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미회담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뭔가 가시적인 CVID와 체제보장을 기대했던 저조차도 공동성명을 받아들고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뭐야 이게 다야'하는 실망감과 의아함이 들었다"고 썼다. 

하지만 김 교수는 "욕심을 내 상대방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기에 앞서 먼저 신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북미 모두 인식한 결과라고 본다"며 "오히려 시작은 이렇지만 튼튼한 신뢰를 바탕으로 비핵화와 체제보장 모두 가속도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썼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CVID라는 표현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공동성명에 들어간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과 CVID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 방안과 관련해 북미 양측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며 "북·미 양측이 일방주의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과 북한 비핵화를 동시 병행 추진하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정 본부장은 "비핵화의 시한과 로드맵,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면서도 "조속한 시일 내에 북·미가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동의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합의도 수개월내에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업무협약에 따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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