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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대통령-민주당 인기 고공행진 속 무소속 출마 ‘원맨쇼 카드’로 상황 반전 성공  

역시 ‘선거의 달인’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불패신화’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13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국을 휩쓴 ‘파란색 물결’ 속에서 유독 순백색으로 도드라진 제주. 제주도지사 선거 승리의 월계관은 무소속 원희룡 후보에게 돌아갔다. 50대의 젊은 지사가 민선 6기에 이어 민선 7기 도정을 연속해 이끌게 됐다.

이날 오후 6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에서부터 개표, 당선 확정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선두자리를 내주지 않은 원 후보의 독주에는 어떤 ‘힘’이 있었던 걸까.

우선은 쉽지 않은 선거에서 판 자체를 흔들며 낙승을 이끌어낸 원 후보 자체의 경쟁력을 꼽을 수 있다. 이른바 '인물론'이 먹혀들었다는 얘기다.  

원희룡. 사실 그는 제주에서 상징적 인물이다. 인구로 따지자면 비록 전국 1%에 불과하지만, 제주도민들의 교육열, 인재만 큼은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한 주인공이다. 정치적 변방인 제주(서귀포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를 지냈다.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수석 입학, 사법시험 수석 등 ‘수석’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법복을 벗고 40대의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해서도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옛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16대 국회에 입성한 후 서울 양천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한다.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정계를 떠났지만 제37대(민선 6대) 제주도지사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이번 도지사선거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아니, 정치적 상황만 놓고 보면 이길 수 없는 선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70%를 웃돌고, 더불어민주당 지지도가 5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다.

원 후보의 승부사 기질은 여기에서 나왔다. 선거판 자체를 뒤흔드는 강수를 둔 것. 정당이라는 차포를 떼어낸 대신 인물론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스스로 ‘제주도민당’ 소속임을 내세우며 지난 4년 도정운영에 실망한 도민들에게 “절대 한눈 팔지 않겠다”고 진솔하게 사과하면서 등을 돌렸던 민심을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자칫 ‘도정 심판론’으로 치러질 선거판을 '구태정치와의 결별' 선언과 이권을 독식했던 적폐세력을 청산하겠다는 ‘적폐세력 심판론’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시킨 건 신의 한수였다.

캠프의 선거전략도 치밀했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20~30세대를 겨냥한 공공분야 일자리 1만개 창출 등 맞춤형 공약을 전진배치하고, 보육․교육 공약으로 여성 표심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4.3문제의 완전한 해결, 남북평화, 난개발 억제, 환경보전, 여성친화도시, 사회적경제 선도도시 등 진보적 의제를 주도하며 합리적 진보 부동층까지 흡수하는 역발상 전략이 먹혀들었다.

이와 함께 지지층 결집, 부동층에 대한 적극적인 투표독려 등 기본에 충실한 선거운동과 정당․이념․진영을 초월하는 협력과 통합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미래지향적 선거운동이 적절히 어우러지며 막판 상승세를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원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내적인 요인 외에 외적인 요인도 컸다.

16년 만에 도청 탈환을 노렸던 더불어민주당은 설욕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4년 뒤로 미루게 됐다. 무엇보다 국회 제1당으로 올라선 뒤 정권교체까지 성공한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는 전략이었지만, ‘정치1번지’ 제주에서 일격을 당하며 오점을 남기게 됐다.

무엇보다 당 대표주자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이 전혀 ‘아름답지’ 못했다. 이로 인한 후유증은 ‘한팀’은 커녕 모래알처럼 갈라졌다.

경선과정에서 문대림 후보를 둘러싸고 제기된 유리의성, 송악산 부동산투기, 부동산업체 부회장 명함, 타미우스CC 특별회원 등 숱한 의혹은 후보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결을 남겼다. 이에 승복하지 못한 당원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탈이 가속화 됐다.

우여곡절 끝에 경선상대였던 김우남 전 최고의원이 뒤늦게 지원에 나섰지만, 원희룡 쪽으로 기운 승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주도민의 민심은 ‘현 도정 심판’보다 ‘적폐세력 부활’ 움직임에 서릿발처럼 더 냉혹했다. 문대림 후보의 뒷배경에 과거 제주사회를 20년 넘게 쥐락펴락했던 ‘제주판 3김’의 한 축인 우근민 전 지사가 버티고 있다는 정황들은 민주개혁 세력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놨다.

전국 17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 유일하게 ‘경합’ 지역으로 봤던 중앙당 차원의 집중 지원도 역설적으로 “원희룡 후보가 그렇게 센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해 ‘큰 인물론’을 띄우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80%에 근접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 50%를 웃도는 정당지지도 속에 결코 져서는 안되는 선거였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은 극심한 경선 후유증 속에 처음부터 갈팡질팡하며 전투에서도 지고 전쟁에서도 지고 말았다.

전국 최고의 격전지로 주목받은 제주도지사 선거였지만,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로 피 말리는 선거전이 될 것이라던 전망과 달리 원희룡 후보의 ‘싱거운’ 승리로 끝난 것은 어쩌면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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