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0) 하원동 오름골 산물

하원동의 엣 이름은 ‘오롬골’ 또는 ‘아랫원’으로 한자로 악동(岳洞), 하원(下院)으로 표기하다가 19세기 중엽부터 하원(河源)으로 쓴다. 하원동의 설촌은 법화사(法華寺) 건립과 비슷한 원나라의 제주 통치시기로 추정되는 마을이다. 절이 지어지던 무렵, 마을 상류인 영실(靈室)의 불래악(佛來岳, 볼래오름)에도 절이 있었고 법정(法井)에도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불래악 사찰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상원(上院)이라 했으며 법정악(法井岳) 사찰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중원(中院), 그리고 법화사 일대를 하원(下院)이라 했다. 마을명인 하원(河源)도 그 하원(下院)에서 유래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법화사에 원(院,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에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 있어 하원(下院)이란 마을 이름은 1850년까지도 계속돼오다가 마을 주위에 법화수(法華水), 원두수(源頭水), 통물, 큰이물, 개상골 등 산물이 많아 강이름 ‘하’를 써서 하원(河源)이라 고쳤다는 것이다. 

물로 인해 촌락이 형성됐던 것과 같이, 사찰이 있었던 곳에는 수량과 수질이 좋은 산물이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해상왕 장보고 대사가 창건했다는 제주의 대표적인 사찰 유적인 하원동 법화사 경내 역시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사찰의 물로 지금은 법화수(감천)라고 하지만 예전에 하원동 주민들은 ‘법햇물’이라 불렀다. 이 물은 사찰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귀중한 식수였다. 구릉지 아래 암반이 용의 입이 되어 그 밑에서 용출되는 모양새다. 갈수기에는 수량이 다소 감소한다. 

용출량이 풍부한 이 산물은 절에서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후 하원마을 주민들의 주 식수원으로 1985년까지 상수원으로 이용했던 수원이다. 상수원으로 개발하기 전에는 평시에는 사용하지 않고 마을포제나 가뭄 시에 우마의 힘을 빌어 물을 운반하여 사용했다. 1952년 한국전쟁 시 상무대 제3숙영지 본부가 법화사 경내에 들어서면서 절 앞의 논과 밭을 매립하여 연병장으로 사용하고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법화수 1.JPG
▲ 법화수(감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법화수 2.JPG
▲ 법화수(감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최근 사찰에서는 산물 통을 새로 만들고 이 물을 이용하여 절을 찾는 사람들의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약수터와 구품연지라는 큰 못을 만들었다. 구품연지는 법화수가 흘러내려 습지가 된 곳을 발굴하여 복원한 못(池)으로 예전에 이 습지는 논농사를 했던 곳이며 근처에 법화과원도 조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찰의 물로써 중생들이 마음을 축여주는 자비의 산물로 거듭나고 있다.

구품연지와 약수.JPG
▲ 구품연지와 약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법화사 약수.JPG
▲ 법화수 약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법화사에서 연못을 만든 이유는 조경의 의미도 있지만 화재가 날 경우를 대비한 수조(水槽)인 ‘드무’의 성격도 한 몫 한다. 드무는 가마솥 같이 생겨 그 안에 물을 채워 화재가 일어날 경우 불을 끌 수 있도록 한 방화수를 보관하는 그릇이다. 궁궐이나 관아, 사찰 등에서 화마(火魔, 불의 요괴)가 불을 피우러 왔다가 이 물에 비친 자신의 험상궂은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을 간다는 옛 소방용기이다.

법화사 드무.JPG
▲ 법화사 드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하원동에서 법화수와 함께 주민 생명수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통물(통천)이다. 이 산물이 있어 일대를 통물동이라 한다. 이 물은 하원마을 동쪽에 사는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으며, 통을 파서 만든 샘이라고 해서 통천이라고도 한다. 이 용출수는 1933년 콘크리트 수조를 조성하여 식수, 가축급수 등으로 사용했다. 심한 갈수기에는 강우의 영향을 받으나 바위틈에서 솟아난 물은 4개의 물통에 흐른다. 첫 번째 칸은 제사용수나 식수로만 사용되었으며, 여기서 넘친 물은 두 번째 물통으로 흘러 고이는데 음식물을 씻는 용도로 이용된다. 세 번째 칸과 네 번째 칸에 모인 물은 빨래나 목욕 용도로 사용했었다. 

당시 물 무게를 측정한 결과 다른 지역 물보다 가장 무겁게 나타나 수질 상태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물이 무겁다는 것은 차고 맑은 물이 솟아난다는 것으로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한천수(寒泉水)다. 다산 정약용은 물 아래 있는 샘물인 경우 물이 무겁다고 했으며 물이 무겁다는 것은 명수의 조건을 갖는다는 것과 같다. 이 산물은 할망당에 갈 때 제수로 올렸던 물로 상수도가 들어온 후 방치되다 시피 하다가 1984년과 2007년에 두 차례에 걸쳐 재정비되면서 식수통과 물통 하나만 남아 있지만 지붕을 씌운 산물 터와 돌담은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통물 1.JPG
▲ 통물(통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통물 2.JPG
▲ 통물(통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통물이 모자랄 때 식수로 사용했던 법화사 동측 길모퉁이 원두수는 주변에 주차장 등이 만들어지면서 아쉽게도 방치된 채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산물은 법화수 위에 있어 머리에 해당한다고 하여 원두수라 했는데, 가뭄이 영향을 심하게 받는 물로 갈수기에는 물이 말라버리는 특징이 있다.

원두수.JPG
▲ 원두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cats.jpg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