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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룡 호의 문화예술섬 2기는 디테일의 악마를 살리는데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의 4년도 같은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기자수첩] 도정 목표, 예산 3% 구호에 가린 전문 인력 확충 등 실질 과제 숙제로  

‘후보 검증’이라 쓰고 ‘네거티브’라 읽는 치열한 공방 덕분에 “이런 선거는 처음”이라는 6.13 제주도지사 선거가 막을 내렸다.  

후보 개인에 대한 집중이 워낙 높아서인지 정책은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는데,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은 저 멀리 밀려난 모양새다. 양강 후보 두 명의 공보물에 문화·예술 정책이 한 줄도 적혀있지 않은 걸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만 하다.

어쨌거나 승자와 패자는 정해졌다. 

승자인 원희룡 지사가 4년간 수행하겠다고 약속한 문화·예술 공약은 다음과 같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개별 발표한 공약과 전체 공약을 모은 200개 실천약속 세부과제를 정리해봤다.

▲제주예술인회관, 제주문학관 등 인프라 구축 
▲도립 제주국악단, 제주도립극단 창단 
▲유휴 공간으로 거점별 공공창작 지원센터 조성 
▲제주예술고 설립 
▲문화예술 전문인력 채용 확대 
▲전문 직렬 확대 
▲문화예술 창작활동 융자제도 도입 
▲제주미술제 예산 확대 
▲서귀포 예술행사 예산 확대 
▲김정문화회관 운영 민간 위탁 
▲예술품 유통 플랫폼 구축
▲한국e스포츠협회 제주지회 창설
▲제주의 정체성 문화창달 사업
▲탐라문화권 국책사업 반영·추진
▲국제하이든쥬니어콩쿠르 유치
▲2020 제주 영상기록화 사업
▲제10회 전국해양문화 학자대회 유치
▲탐라제주 대백과사전 편찬
▲인구 밀집 지역에 복합체육문화센터 건립
▲읍면지역에 복합문화체육시설 건립
이 중에는 지난 임기에서부터 진행 중인 사업들이 여럿 포함돼 있으며, 새롭게 등장한 공약도 눈에 띈다.

도립 제주국악단, 제주도립극단은 가장 흥미로운 예술 공약으로 손꼽을 만하다.

현재 제주도가 운영하는 공공 예술단은 제주교향악단, 서귀포합창단, 제주관현악단, 서귀포관악단 등 네 가지다. 점점 늘어나는 도민들의 문화 향유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예술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는 그간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제주국악단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립하지 못한 제주민요, 소리 등을 체계적으로 전승·발전하는 역할이다. 도립극단은 비교적 도민 관심이 떨어지는 연극 예술이 반등하는 계기로서 기대가 모아진다. 

제주예술인회관은 현재 제주문화예술재단을 통해 추진하는 가칭 ‘한짓골 제주아트플랫폼’이 그 역할을 소화할 전망이다. 제주문학관은 관덕정 옆 주차장을 입지로 선정했다가 무산되면서 다소 난항을 빚은 바 있다. 원 지사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임기 내 모든 공약 완성”을 누누이 공언한 만큼 제주문학관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미술제·서귀포 예술행사 예산 확대는 지역에서 꾸준히 이어가며 자리 잡아가는 ‘알찬’ 행사들을 육성하는 방향까지 뻗어가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 전문인력 채용 확대, 전문 직렬 확대는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핵심 숙제로 손꼽힌다. 공공전시·공연장은 있지만 정작 그 공간에 내용을 채워 넣을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인력 수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 마저도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전문 직렬 확대를 포함해 이 사안은 원 지사의 지난 4년 임기 동안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문제다. 

정치인 원희룡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로 존재하지만, 지난 4년 간 도지사 재임 기간 동안 문화·예술 분야에 한정지을 경우에는 ‘경합 우세’에 가깝다. 도정 목표에 최초로 ‘문화’를 삽입한 상징성, 문화·예술 예산 3%라는 거시적 목표. 잘 한 건 잘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다만 앞서 지적한대로 피부로 체감할 만 한 세세한 변화까지 진전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관련 예산 3% 가운데 ‘문화·예술’의 탈을 쓴 허수를 걷어내고, 순수 문화·예술 창작 분야만 따져보면 그 비중이 현격히 떨어진다. 다양한 예술 분야 창작에 씨를 뿌리도록 예산 규모는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디테일의 악마. 

올해 남북정상회담을 설명하면서 언론 상에 회자된 개념이다. 간단히 말하면 큰 방향은 결국 세세한 접근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의미다. 제주섬을 이끌 선장으로 다시 한 번 원희룡 지사가 선택됐다. 자연스레 문화예술섬 역시 2기를 맞이하게 됐다. 원희룡 호의 문화예술섬 2기는 디테일의 악마를 살리는데 집중해야 한다. 도청·시청 문화 부서, 사업소, 공연·전시장, 소극장, 창작 공간, 생활 예술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는 문화·예술 정책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4년이 구호를 앞세운 지난 번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결국 문화·예술 정책들이 온전히 추진되기 위해서는 일선에서 수행할 관련 부서, 기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거 기간 예술 단체에서 문화 행정 부서의 개편·확대를 요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문화부지사 같은 과감한 조언은 일종의 상징이다. 문화·예술 업무만 맡을 ‘문화국’처럼 필요와 현실성 모두 인정되는 정책은 다가올 조직 개편에서 적극 고려해야 한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역시 정책 기능이 보강하면서 단순 지원·심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제주도의회 역할도 빠뜨릴 수 없다. 곧 막을 내리는 제10대 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가 예산 심사 과정에서 보여준 일부 태도는 깊은 아쉬움을 주기 충분했다. 새로 꾸려질 문광위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깊이 청취한 의정활동에 힘써주길 기대한다. / 한형진 <제주의소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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