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가운 저작이 제주사회에서 탄생했다. 저자 강문규는 20년 세월이라는 오랜 담금질 끝에 드디어 알찬 모습을 드러냈다. 일곱 개의 별과 달을 품은 탐라왕국.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마치 소설의 제목처럼 아리송하지만 거기에는 2천년에 걸친 긴 역사의 자취가 담겨져 있다. ‘칠성대’라는 하나의 코드를 가지고 탐라의 시공간적 궤적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저자는 지역 언론에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 한라산을 주제로 주옥같은 글들을 선보였고, 탐라의 별문화에 대한 오랜 기간의 탐구 끝에 본 저서를 상재하게 되었다. 제주의 역사지리를 전공하는 후학으로서 기쁨과 동시에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탐라왕국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탐라국과 칠성대, 제2부 탐라의 별문화, 제3부 일곱 별과 달을 품은 탐라도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어느 노인이 전해준 칠성대 이야기를 시작으로 탐라의 역사와 문화를 풀어내고 있다. 지금은 역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간 칠성대를 실마리로 별의 왕국 탐라를 재구성해 낸 것이다. 제2부에서는 별과 관련된 제주의 문화요소들을 세밀하게 고찰하면서 종교적 제의를 비롯한 일상생활에 스며든 별문화를 특유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칠성대라는 열쇠를 탐라도성이라는 공간으로 확장시키면서 몽환적 상태에 머물던 있던 탐라도성의 실체를 확인시켜 준다.

탐라왕국은 전문 학자의 글은 아니지만 전문 학술서 못지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첫째, 고고학적 유물 유적과 역사 자료가 드문 탐라 시기를 칠성대라는 조그만 단서로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역사의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둘째는 탐라의 별문화를 실제의 공간상에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역사라는 씨줄은 공간이라는 날줄과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의 연구에서는 시간이라는 씨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공간이라는 날줄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향이 많다. 탐라왕국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시공간 결합을 이뤄내고 있다. 

셋째, 과거를 현재적 사실과 연관시켜 고찰하려는 실사구시적 태도가 책의 전편을 아우르고 있다. 박제된 과거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별의 도시, 제주’라는 제언은 도시의 정체성, 도시 디자인과 관련하여 제주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탐라왕국은 탐라의 별문화를 해독한 선구적 저작이기에 차후 보완되어야 할 점도 있다. ‘성사(星槎, 별뗏목)’는 조선시대 육지부의 다른 지역의 경우에도 사용되던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신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기간지주를 우주목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것은 수자기(帥字旗)가 조선시대 군영에서는 통상적으로 게양되었던 사실을 고려한다면 과장된 면이 있다. 방사탑을 소우주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해석하는 것도 지나치게 천문적 사고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한다. 제주성의 특징을 원형이라 단정하는 것도 방형으로 된 수산진성과 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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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학 제주대학교 박물관장
이와 같은 다소의 쟁점이 있음에도 탐라왕국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가치가 있다. 선구적 저작에 대해 말이 많을 수 있지만 누구나 선구가 될 수는 없다. 20년을 한결같이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상상하며 현장을 찾던 저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단히 세상과 소통하며 한 잔의 술잔 속에 별나라 탐라를 생생하게 담아내려는 저자의 열정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 오상학 제주대학교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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