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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재단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한국 현대사 국제 포럼’ 마지막 행사인 6일 좌담회 모습. ⓒ제주의소리

[종합] 알찬 마무리 '한국 현대사 국제 포럼'...세계연구자 활용 가능 아카이브 과제 도출 

“이번 한국 현대사 국제 포럼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 참석해서 귀 기울여야 했을 만큼 유익한 시간이었다. 현재 한국학이 처한 문제를 제주4.3을 통해 드러낸 소중한 기회였다.” 
-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제주4.3평화재단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첫 번째 ‘한국 현대사 국제 포럼’이 2일 개막해 6일 좌담회로 마무리했다.

포럼 참석자인 정용욱 교수의 앞선 평가처럼 이번 행사는 ‘4.3의 세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고, 겉치레 없이 담백하게 논의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세계화의 숙제를 받아든 4.3평화재단의 행보도 향후 주목할 부분이다.

# 북미, 유럽 등 넓은 전문가 풀(Pool)

한국 현대사 국제 포럼이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여러 나라에서 전문가들을 초청했다는데 있다.

포럼 참가자들은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 관계 대학원,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국 뉴저지 라마포 대학, 영국 캠브리지 대학, 독일 베를린 자유 대학, 프랑스 라로셸 대학, 이탈리아 라 사피엔차 대학, 스페인 말라가 대학 등 각 지역에서 한국학, 한국 현대사를 가르치는 연구자다. 개인 일정 상 불참한 세계 연구자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을 바탕으로 4.3의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의견이 개진됐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 관계 대학원 한국학 교수 James Person은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 ▲유엔 문서 보관소 ▲미 육군 유산 및 교육 센터 ▲러시아 기록 보관소 등에서 4.3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자료 분량은 4TB(테라바이트)에 달한다. 여기에는 4.3 당시 무장 세력의 대표 격이었던 김달삼 발언에 대한 소련의 문서, 여수·순천사건 등 흥미로운 자료도 여럿 포함돼 있다.

James Person은 “포럼에 모인 참석자들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학 연구자들이 보유한 4.3 자료를 각자 업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을 4.3평화재단이 만들어달라. 그래서 서로 자료를 공유한다면 전체 자료를 구분·정리하는 아키텍처(architecture), 큐레이션(curation)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세계 모든 연구자 연결하는 아카이브 

이번 포럼의 단 하나 결론이라면 바로 4.3 온라인 아카이브(archive)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4.3 관련 자료를 단순 모아놓은 1차원적인 아카이브가 아닌,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유용하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Irvine)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김경현 교수는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가 보유한 디지털 라이브러리 시스템 ‘캘리스피어’( https://calisphere.org )를 예로 들었다. 그는 “캘리스피어를 이용하면 꼭 캘리포니아 대학에 찾아가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접근 가능하다. ‘구글’과도 쉽게 연동되기에 정보의 양도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카이브에서 디자인, 폰트, 그래픽 같은 외적인 요소가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다. 젊은 세대들은 친숙하지 않은 인터페이스를 깊이 활용하지 않는다”면서 “4.3평화재단은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하는 보편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하면 구축할 수 있는지 고민하라. 필요하면 세계 주요 대학 사서, 도서관장이라도 초청하라. 예산을 소모하기 위한 세계화 사업은 더이상 안된다”고 조언했다.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 역사학과 김난 교수는 “곧바로 실천 가능한 경우도 있다. 증언, 사료 등 중요한 4.3자료 발췌 부분을 번역하거나, 비디오클립(Video Clip, 짧은 영상)을 번역한다면 여기 모인 학자들이 각자 학교에 돌아가 곧바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난 교수는 ▲4.3 명칭 번역 시 다양한 성격의 해석 병기 ▲4.3 자료 번역 프로젝트 실시(1차로 문헌 목록만이라도 번역 정리) ▲번역 완성도 높이기 위해 현지인 검수 과정 도입 등을 추가 제안했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세계 주요 대학을 보면 한국학 e-learning(온라인 학습) 시스템을 확대하는 추세다. e-learning을 통해 4.3 관련 교재나 커리큘럼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만약 4.3 온라인 아카이브를 만들어도 처음 접한 사람이 활용하기 어렵다면 소용이 없다. 단순히 자료를 웹상에 올리면서 아카이브 역할을 끝냈다고 여기면 안된다. 자료의 지역 구분, 목차, 세부정보까지 제공하면서 연구자들이 충분히 활용하도록 친절하게 가이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4.3평화재단은 지난해 10월 4.3아카이브 홈페이지 ( http://www.43archives.or.kr )를 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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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재단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한국 현대사 국제 포럼’ 마지막 행사인 6일 좌담회 모습. ⓒ제주의소리

# 우리를 위한 세계화 아닌 모두를 위한 세계화

4.3 70주년을 전후로 꾸준히 강조해온 4.3의 세계화 역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제주와 한국 안에서 머물러 '우리'만을 내세우는 세계화가 아닌, 4.3과 유사한 역사를 지닌 전 세계와 공유하는 '모두'의 세계화가 빛을 낸다는 것.

스페인 말라가 대학 Botella Luis 교수는 “스페인 역시 내전 등을 겪으면서 ‘기억’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억압, 대량학살 등을 연구하는 연맹이 구축돼 있을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 대부분 국가, 대륙은 민간 학살을 경험했다”면서 “제주4.3이 어떻게 연구돼 왔고 관리됐는지 스페인, 아르헨티나, 칠레 같은 더 많은 나라들과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 한국현대사 학과 이남희 교수는 “4.3처럼 사건 후 연구·사회·정치적 성과를 거둔 사례는 전 세계 학살 사례를 찾아봐도 많지 않다. 각 나라에서 4.3 같은 역사를 고민하는 학자,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기회가 마련된다면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덧붙이면 학술 작업도 중요하지만 예술 작업을 공유하는 것도 역사를 기억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번역 작업에 예술 역시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라 사피엔차 대학교 Bruno Antonetta 교수는 “많은 사람들의 오해 가운데 하나가 북미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세계화라고 생각한다. 세계 역사학계에서는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꽤 넓게 형성돼 있다”면서 “4.3을 유럽 포함 세계인들에게 소개할 때 중요한 점이 ‘왜 4.3은 오랫동안 침묵했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접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 마이클 신 교수는 4.3의 세계화를 위해 세 가지 충고를 남겼다. ▲제주지역 4.3 연구자들의 영어 실력 향상 ▲세계 각 지역을 찾아가는 4.3 행사 ▲정서적 공감이다.

그는 “세계화를 원한다면 냉정하게 영어 실력을 키워야 한다. 4.3평화재단이 어학연수라도 보내서라도 영어를 배워라. 4.3을 연구한 당사자가 다른 나라에서 강연하면 느끼는 체감이 훨씬 다르다”라며 “한국에서 세계화에 대한 큰 오해가 있는데, 세계화를 한국을 위한 세계화로 여긴다. 이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계를 위한 세계화가 돼야 한다. 낯선 외국인들이 왜 정서적으로 4.3이 중요한지 느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순이삼촌》 같은 4.3 문학을 보다 매끄럽게 새로 번역해야 한다고 꼽았다.

# 아군 도움으로 판 깔린 포럼, 공은 평화재단에게

이번 포럼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그중에서도 주진오 관장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주 관장의 부친인 故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도 4.3진상규명 운동에 참여했고, 본인은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맡을 만큼 제주와 인연이 깊다. 

그는 전 세계 한국학 학자들을 불러모으는 방식의 국제 4.3행사를 개인적으로 구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에 취임하면서 4.3평화재단과 공동 주최까지 나아간 것이다. 

든든한 아군의 도움으로 첫 발을 뗀 제주도나 4.3평화재단 입장에서는 4.3의 세계화를 실현할 로드맵을 그릴 숙제를 안았다. 그 동안 적지 않은 4.3 관련 학술 행사가 자료집만 남기는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며 아쉬움을 준 만큼, 4.3평화재단은 포럼에서 제기된 아카이브, 번역 등 후속 작업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을 소모하기 위한 4.3 세계화 사업은 더이상 안된다"는 포럼 참가자들의 공통된 의견을 기억해 '실용'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영문 번역 4.3자료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데 적극 공감한다. 당장 올해는 주요 4.3논문과 4.3언론보도를 영어로 번역한 자료가 나올 예정이다. 다음 자료는 미국 출판사에 직접 의뢰하는 방법을 생각 중”이라며 “4.3의 세계화를 위해 재단 내 연구전담조직을 9월까지 출범시키겠다”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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