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난민신청을 위해 제주로 들어온 예멘인 549명이 뜨거운 화두다. 대부분 내전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체류연장이 어려워지자 무비자입국이 가능한 제주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다소 낯선 나라의, 그것도 대다수가 남성인 이슬람 문화권 난민신청자들이 한꺼번에 제주로 입국하자 이들에 대한 배타적인 여론까지 형성되고 있다. 거기에다 내전을 피해 살기 위해 8000km를 넘어 제주로 왔지만 이들에게 '난민 인정 심사'까지 이들에겐 큰 장벽이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4.1%. 국제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제주의소리>가 난민 인정심사제도에 대해 두차례에 걸쳐 긴급 점검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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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심사 긴급점검-上] 난민인정 심사, ‘같은’ 국제기준, 그러나 ‘다른’ 판단...이유는?

난민 심사에 관한 자체적인 내규나 명확한 기준이 없어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법무부가 심사 인원을 보강해 심사에 걸리는 물리적 시간은 줄였다지만 심사 방법과 신청자 진술에 대한 명확한 신뢰성 평가 기준 마련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달 25일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 486명에 대한 난민 인정 심사에 착수했다. 지난 2일 난민 심사 인력이 보강되면서 1차 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8개월에서 2~3개월로 단축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1994년부터 올해 5월까지 집계한 1차 심사, 이의신청 심사를 마친 난민 신청자는 2만361명으로 이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839명(4.1%)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이 38%인 점을 미뤄 볼 때 한국의 문턱은 높은 편이다.  무려 9배 이상 난민인정률이 낮다. 결국 내전을 피해 이곳에 온 예멘인들에게 난민 인정 심사는 또 다른 험난한 길이 되고 있다. 

난민 심사는 신청자가 귀국할 경우 당하게 될 박해의 가능성, 진술의 진위여부 등을 통해 난민 지위를 판단하는 절차다. 특히 심사에서 ‘진짜 난민’과 ‘가짜 난민’을 결정하는 건 박해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가능성의 높낮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법무부 관계자는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법무부) 자체적인 내규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해외 난민 인정 사례를 참고해 (박해 가능성을) 평가한다”며 “COI(국가정황정보)자료와 ‘난민 지위의 인정 기준 및 절차 편람과 지침(난민 편람)’을 통해서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난민 편람은 유엔 국제보호국이 발행한 난민 인정에 관한 실무 지침서다. 여기에는 난민 지위 인정 기준을 비롯한 세부조항이 담겨 있다. 심사관은 신청자의 진술과 편람에 명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국제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협약 가입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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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박해의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수치화해서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다. 겉보기에는 (신청자들의 상황을)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박해받는 상황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진술의 일관성이라든가 신뢰성을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박해 자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의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판단하다보니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판단)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까다로운 것이다. 난민 협약에 명시된 난민 기준과 (한국의) 난민 심사관의 판단 기준은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난민인권센터(NANCEN)의 김연주 변호사의 말은 달랐다. “신청자의 진술에 대한 해석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과거 (고국에서) 구금된 사실이 있음에도 (감옥에서) 풀려난 경위는 감안하지 않고 ‘풀려났으니 박해가능성이 없다’고 하거나,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형을 집행하지 않았으니 박해우려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내린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해가능성에 관한 과거의 사건이나 본국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박해와 관련 없는 출입국 기록이나 다른 세부적인 진술의 불일치를 찾아내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부정해버린다”고 했다. 같은 기준일지라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박해의 가능성과 관련 없는 질문으로 심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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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2015년 12월에 발행한 ‘주요 선진국 난민심사 사례분석을 통한 난민심사 전문성 제고방안 연구’에 따르면 뉴질랜드, 영국(유엔난민기구 2000~2017년 평균 난민 인정률은 각각 19.8%, 19.4%다)의 경우 진술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뉴질랜드는 대리인이나 조력자와 동석을 요청할 수 있다. 또한 심사관은 신청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확보할 경우 이를 공개할 의무가 있다. 신청자가 반박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면접이후 작성된 보고서는 신청자·대리인에게 보내지며 신청자는 3주 내로 이에 대한 추가적인 자료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제공받는다.

영국은 신청자의 신뢰성 평가에 대한 기준이 낮다. 그렇다고 기준이 모호한 것은 아니다. 신청자 진술의 개연성, COI와의 일관성, 진술의 상세한 정도 등을 통해 판단한다. 이런 기준에도 신뢰성을 평가할 수 없을 경우 신청자의 이익(benefit of doubt)을 고려해 판단을 미룰 수 있다. 

이 경우 △신청자가 난민 신청을 확증하기 위한 노력 △증거의 결여에 대한 만족할만한 설명 △일관성과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사례 제시 △신청자의 전반적인 신뢰성 등을 통해 신뢰성을 평가한다.

두 국가는 신청자의 신뢰성을 평가하기 위한 심사의 오류를 줄이는 자체적인 장치와 기준이 있다. 신청자가 난민 신청을 한 이유를 적극적으로 소명하도록 기회를 주거나 신청자의 진술을 판단하는 상세한 기준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공익법센터 어필(APIL) 김종철 변호사는 “심사관이 제시한 객관적 사실과 신청자의 진술이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 부분이 난민 정의의 핵심적인 부분과 연관된 건지 확인해야 한다”며 “신청자의 진술과 양립할 수 없는 자료를 찾을 의무는 심사관에게 있다. 또한 신청자에게 이 자료에 대한 반박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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