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6) 함덕리 도릿개 산물

덕 있는 사람들만이 모여 사는 덕이 많은 마을이라서 함덕포라 했던 함덕리는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참패하여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다고 할 정도로 민족항쟁의 처절한 격전장이었다. 일명 ‘고여못(고여지)’이라고도 했던 함덕리는 공마진상 등 해상활동으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대촌을 이뤘던 마을로 구전에 의하면 근검절약으로 부를 이룩한 함씨할머니가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돌 한 덩어리씩 옮기게 하여 죽 한 그릇을 대접하고 마을의 오랜 숙원이던 다리가 만들어졌다고 하여 함씨할머니의 덕이 있는 마을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때의 돌다리가 있었다고 하여 함덕 바닷가를 도릿(돌다리의 의미)개, 함도리라 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이 마을은 물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마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유서 깊은 마을에 중심이 되는 산물들이 바닷가와 서우봉 기슭, 그리고 마을 안에서 용출된다. 함덕리의 산물들은 고두물(고도물), 사래물(소래물), 시긍물, 흘물, 숫두물, 거룻물, 드름물, 든물 등이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산물이 매립되거나 그 형체를 잃어버렸지만 설촌과 마을의 근간을 형성했던 대표적인 산물인 사래물과 고도물은 여전히 물줄기를 분출하면서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산물들은 옛 형태를 완전히 잃고 개조되어버려 애석할 뿐이다.

고도물(고두물)은 옛 중학교 입구인 함덕해수욕장 주차장 입구 길가에 있는 산물이다. 이 산물은 입구에 제주야자수라는 종려나무 두 그루가 서 있으며 산물은 현대적으로 개조된 건물 안에 빨래나 목욕하기 좋게 만들고 건물 입구에 고도물이란 명패를 걸어놨다. 이 산물은 동산 아래 땅이 꺼진 곳에서 솟는 물로 예전에 함씨 할머니의 주막이 있었다. 고도물이란 명칭으로 볼 때 바다 가까이에 있는 동산이 섬처럼 보여서 ‘동산과 같이 높은 곳에서 나는 물’이란 의미로 추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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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물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예전에 고도물은 정사각형의 석축 형태로 물을 저수할 수 있도록 한 물통이 모두 세 개로 구분돼 사용되었다. 물통의 크기는 가로, 세로 1m 남짓한 정사각형으로 물통에는 차갑고 맑은 산물이 힘차게 솟았다. 이 산물은 원래 하나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를 개설하면서 둘로 나누어져 식수통이 있었던 곳은 여자전용으로, 빨래터였던 길 건너편은 남자전용 목욕탕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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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물 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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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탕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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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물 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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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탕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함덕리 마을 가운데 함덕14길 앞에 서레물(소래물) 또는 사래물이라고 불리는 산물이 있다. ‘사래물’의 ‘사’는 ‘절 사(寺)’로, ‘절이 오면서(來) 보호된 물’이란 뜻이라고 추정되는 산물이다. 그래서 인지 이 일대에는 사찰이 두 군데나 있다. 예전 이 산물은 자연암반 틈에서 용출돼 동쪽으로 흐르는데, 네 칸으로 구분하여 사용했다. 처음 솟는 물은 제사용수와 식수로만 사용했다. 그리고 음식물,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물은 마소들에게 먹이거나 농업용수로 이용했다. 이런 물 사용방법은 그만큼 물이 귀하기도 했거니와, 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도보급으로 마을 사람들로 부터 멀어지면서 산물은 축소되고 방치되다가 2012년에 옛 모습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개조해 버렸다. 지금 모습은 육지식 샘터로 제주답지가 않아 멋이 없고 초라해 보이며 물이 솟는 양도 예전만 못하여 마을사람들이 외면하는 산물이 되어 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고증을 통해 옛 모습으로 복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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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사래물(1970년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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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전 사래물(2000년 초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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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한 사래물(2012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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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한 사래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함덕리 바닷가에 앞갯물과 큰도물, 엉알물이 있다. 앞갯물은 모살(모래의 제주어) 동네 앞에 있는 포구인 앞개에 있는 산물이다. 앞개는 마을 앞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인 포구를 뜻하며, 사시포(사시미)라 했던 황개코지 자락에 있는 지금의 함덕포구로 마을 서쪽에 있어 섯모살동네라 부른다. 코지는 곶의 제주어로 ‘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를 말한다. 이 물은 마을과 포구에서 사용한 물로 지금은 마을 쉼터로 현대적으로 개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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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갯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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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갯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개 입구에서 솟는 물을 뜻하는 큰도물은 큰개 동측 자그마한 포구였던 모살개가 있던 모살개 빌레(너럭바위) 근처에서 솟아나는 산물로 모살개물이라고도 한다. 이 산물은 고증을 통해 물이 솟는 두 곳을 복원했는데, 바닷쪽은 남자용이며 도로쪽은 여자용이다. 특이한 것은 남자용 출입구는 도로쪽으로 나 있는데, 여자용은 바다쪽을 향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것은 사적으로 남에게 간섭받지 않게 하고자 여자 이용자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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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도물(앞 도로 쪽 여자 전용, 뒤 바닷가 쪽 남자 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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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도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엉알물(엉물)은 해수욕장의 산물이다. 함덕해수욕장 백사장인 샛사시미 언덕 건너 중툭굴개란 어로시설이 있었던 엉알에서 용출되는 산물이다. ‘엉알’은 ‘언덕아래’라는 뜻을 가진 제주어다. 이 산물은 서우제당이 있는 빌레언덕 밑 사각시멘통에서 용출하는데, 예전에 캠핑하던 사람들이 식수로 주로 이용했던 물이며, 지금도 이 산물을 아는 해수욕장의 피서객들이 가끔 몸을 씻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안내판이 없고 산물시설이 눈에 잘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물은 파도에 부셔져 찌그러진 것 같이 보이는 사각 시멘트통에서 솟고 있는데, 제주의 설촌의 역사가 담겨 있는 생명수로써 산물홍보 및 탐방차원에서 제주식 산물터로 조성하여 해수욕장의 또 하나의 명소로 활용하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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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알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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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알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제는 고도물과 사래물의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최근까지 일부 남아 있던 사래물의 물통뿐만 아니라 물을 긷고 허벅을 놓았던 물팡도 사라져 추억마저 묻어 버린 것 같아 아쉽다. 앞으로는 부득이하게 산물을 개수한다면 최소한의 옛 모습을 어느 정도 살려서 설촌의 유적인 산물에 대한 배려와 함께 애향심을 고취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됐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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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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