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28)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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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어떻게 자녀의 주적(主敵)이 되는가

우리 반에 OOO이란 애가 있는데, 그 아이가 덜 자란 애처럼 행동해서
영화처럼 투명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면 엄청 혼내주고 싶다 
- 중학생 A의 글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던 때>

나에게 시간을 되돌리거나 투명인간 같은 초능력이 필요했던 순간은 시험에서 내가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내가 정말 힘들고 자신에게 화가 나서 정말 죽고 싶었을 때 그런 초능력이 생겨서 내가 원하는 점수 이상을 받고 싶다.
- 중학생 B의 글 <나에게 초능력이 필요했던 순간>

내가 작다거나 해서 다른 사람들, 친구들이 놀리는 게 짜증날 때.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옆에서 누군가 더 화나게 할 경우에
그 사람을 실컷 혼내주고 싶다.
- 중학생 C의 글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그놈에게>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부모님 모든 연령과 함께 글쓰기와 문학 수업을 하는 요즘은 매일 매일이 ‘모든 시절’입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저에게는 일상이 되었기에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도 생깁니다. 40년이 조금 넘은 나의 생애를 시절에 맞게 잘게 잘라서 서랍 같은 곳에 살포시 올려놓았다가, 같은 시절의 사람을 만나면 그것들을 꺼내서 같이 어울리는 거죠. 제가 ‘사람’으로서 존경하는 사상가나 작가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누구와도 재밌게 대화할 수 있었죠. 저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상대하는 연령대 중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불만족스럽고 좌절감이 넘쳐나는 때는 역시 중학생들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제 인생에서 괄호를 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중학생이다 보니 저는 중학교 시절이 자꾸 저를 찾아옵니다. 아, 그 어색한 재회!

중학생 시절이 왜 이렇게 힘든지 제가 경험한 시간과 제가 만난 아이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1% 정도만 공감한다면 대화가 이렇게 단절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울타리지만, 중학교 때 부모님은 장애물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하려든 간에 부모님이 가로막는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가장 완벽한 적대(敵對) 관계는 중학생과 학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현상의 징후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어느 정도 형성됩니다. 

발달 과정 상,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면 아이들의 관심은 가족관계에서 교우관계로 넘어갑니다. 부모님보다는 ‘친구’로 관심이 달라지죠. 요즘 아이들 말로 ‘부모님’은 ‘아웃 오브 안중’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이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성장과정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족은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중학생이 부모님과 어른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까닭은 ‘독립’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학생들은 경제적 독립은 할 수 없지만 그 나머지 독립은 대부분 달성하고 있습니다. 중학생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의 독립을 정성스레 돕는 것입니다. 만약 중학생 부모가 이런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자녀의 적이 됩니다. 동물이든 곤충이든 사람이든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우뚝 서려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오직 ‘인간 부모’만이 이 주제에 허둥지둥하고 갈팡질팡하고 일을 그르치기 일쑤입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중2병’이라고 부르는 현상보다 더 심각한 ‘중2 부모병’이 널리 퍼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알려지지 않은 병이죠. 

인간의 발달과정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로 인한 여러 가지 갈등과 스트레스와 좌절과 분노는 중학생 가족이 골고루 나눠 갖지만, 가장 많이 고통을 받는 건 중학생 당사자입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은 중학생 자녀와 관계가 좋지 못한 부모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 도서입니다. 과학자 그리핀이 어찌하여 투명인간이 되었는지 세심히 따라가다 보면 중학생 자녀의 뿌리 깊은 좌절과 원망, 욕구불만 등의 감정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중학생의 스마트폰 금단현상과 《투명인간》의 ‘백화점 장면’ 사이

《투명인간》을 쓴 작가 웰스는 영국 박물관의 도서 목록에 600여 개의 항목이 기입되어 있는 ‘인간 박물관’ 그 자체였습니다. 풍속 소설가, 저널리스트, SF(과학소설) 작가, 백과전서가, 역사가, 사회주의자, 대중계몽가, 과학자, 유토피안, 페미니스트, 예언자 등 그의 직함은 끝이 없죠. 《투명인간》은 《타임머신》, 《모로 박사의 섬》과 함께 3대 대표작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 T.S.엘리엇은 “1등칸에서도 3등칸에서도 애독되는 작가”라는 표현으로 그의 폭넓은 독자들을 평가했습니다. 《투명인간》의 모티브는 길버트의 해학 시집 《바브 발라드(Bab Ballads)》의 작품 중 하나인 <투명 인간의 모험>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잔소리꾼 아내에게 시달리던 피터 영감이 요정의 도움으로 투명인간이 되어 추위에 덜면서 시골을 돌아다니는 장면은 웰스의 《투명인간》에서는 장소만 도시로 바뀌었을 뿐이죠.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 그리핀의 주변에는 그를 좌절시키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그가 지도하는 대학생들은 하품하고 졸고 과학에 대한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을 섞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얼마나 우울한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합니다. 

웰스가 활동하던 당시 영국에서도 한국의 대학원 같은 ‘악랄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학원에는 대학원생들이 연구활동보다 지도교수의 시답잖은 심부름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제자의 연구주제를 강탈하는 일도 흔히 벌어집니다. ‘갑질’과 관련해서 지도교수의 행태가 더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분노의 투명인간’ 역시 연구진의 선임연구원이 연구 결과의 가장 많은 공적을 차지하는 제도 때문에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발표할 것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길버트가 발표하는 순간 대부분의 공적을 차지하게 될 지도교수는 제자에게 발표를 종용하는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길버트는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어 ‘투명인간’이 됩니다. 투명인간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뿌듯하고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투명인간이 되고 난 현실은 환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길버트는 자신이 간과한 뼈아픈 사실을 투명인간이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실수를 했어, 켐프. 이 일을 혼자 해내려 한 건 아주 큰 실수였어. 나는 힘과 시간과 기회를 낭비했네. 혼자 해내려 하다니! 사람이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는 정말 놀랄 만하다네! 조금 강탈하고, 조금 상처를 입히고, 그게 끝이야.” 
- 《투명인간》, 투명인간 길버트가 옛 동료 켐프에게 한 고백
투명인간은 심지어 개 한 마리에게도 벌벌 떨어야 하는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알몸 상태여야 하는데, 추운 계절에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닐 거예요. 

《투명인간》에서 얕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판타지는 역시 ‘백화점 장면’입니다. 어디에도 있을 수 없고, 쫓기는 도망자에 불과한 투명인간 길버트가 자신의 환상을 그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상징을 생각하면 우리들의 처지가 생각나서 비참한 기분이 듭니다. 저는 백화점 장면에서 중학생들이 마치 ‘금단현상’처럼 스마트폰을 자꾸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침울해졌습니다. 

투명인간은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라 ‘배신당하는 아이콘’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믿음’이라는 따뜻한 공기를 쬐어 본 적이 없었고, 투명인간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싸늘한 불신과 배신에 쓰라렸습니다. 심지어 노숙자에게도 배반을 당했으니까요. 그는 투명인간인 채로 삽으로 머리를 강타당해 시체가 되고 나서야 남들 눈에 띄는 색깔로 탈색해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투명인간》이야말로 중학생의 모든 상황과 기분을 담아내고 있는 뜨거운 그릇입니다. ‘X같은 기분’과 ‘X같은 상황’을.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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