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57)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삶의 환희’이고, 잃을 것은 시간뿐이다. 알고 보면 여행은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에, 혹은 공중이나 바다에 버리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곳에서 행복을 줍는다. 낯선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술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생의 윤활유와 활력소가 되고 때로는 접착제와 방부제가 되며 또 어떤 때는 진통제와 각성제가 되기도 한다.

여행은 ‘만남’이다. 여행을 통해 세 가지 만남이 이뤄진다. 

첫째, 여행은 낯선 것, 날 것과의 만남이다. 낯선 사람·사물·자연과 만나고 그것들의 속살, 민낯과 만나는 게 여행이다. 사람과의 예정된 만남은 자신을 치장하고 분장하지만 돌발적·즉물적인 여행에서의 만남은 가식이나 분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면의 진실을 볼 수 있다.

둘째, 여행은 깨달음과의 만남이다. 낯선 것, 날 것과의 대면을 통해 이 세계가 얼마나 광대하고 얼마나 다양한 인종들이 독특한 문화 속에 살고 있으며 얼마나 아름답거나 추한지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곧, 세계의 경이와 신비를 체험하게 되고, 그것들은 자신을 성찰로 인도하면서 “나는 누구이며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여행은 미지(未知)에서 기지(旣知)로, 무지(無知)에서 예지와 각성으로 나아가는 도정이며 실존과 마주치게 한다.

셋째, 여행은 신(神)과의 만남이다. 모든 사람이 다 신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깨어 있는 자는 신과 만날 수밖에 없다. 왜냐고? 여행에서의 깨달음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처럼 경이롭고 신비한 세계의 창조자는 누구일까?”라는 근원적 질문과 이어진다. 이 질문의 끝자리에 신이 있다. 인간 이성으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초자연적 존재가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면 이미 그는 신과 만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나 일탈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구경거리를 찾아 떠나는 관광이나 유람에 그쳐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인간과 인생을 이해하기 위한 도전이고, 잃어버린 혹은 흔들리는 자아를 찾고 바로 세우기 위한 모험이며, 세계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탐구다. 그래서 어떤 이가 여행을 ‘탐방’이라고 부르는데 나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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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미지(未知)에서 기지(旣知)로, 무지(無知)에서 예지와 각성으로 나아가는 도정이며 실존과 마주치게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내가 읽은 세계 여행기들은 “이곳에 어물지 말고 어서 떠나라. 그곳엔 놀랄 만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나를 충동질한다. 여행기의 고전이요, 전범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그냥 여행기라기보다는 사색과 명상의 기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가의 심오한 생각들이 드러나 있다. 한국의 여행자들이 이 책을 들고 괴테의 200년 전 행적을 따라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내가 최근에 읽은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도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에는 스님이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 가서 불타 석가모니의 행적을 따라 유적지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깨달은 바를 적어 놓았다. 인류 사회의 지혜로운 스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인도의 정신적인 토양이 그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더 존귀하다는 걸 스님은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의 여백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부처는 인간이다. 예수와 다른 점은 이거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인간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최고봉까지 올라갔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최초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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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나의 내면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썩어가는 영혼을 치유키 위해, 그리고 나태와 안일의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나는 여행을 떠난다. 명나라 때 서예가 동기창이 “무릇 군자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은 후 세상을 논하라!”고 일갈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나의 버킷 리스트에 있는 여행지는 히말라야와 산티아고이다. 언젠가 반드시 꼭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것이고, 성 야고보의 순례길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연인과 함께 답사할 것이다. 

그 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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