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29) 《조선과 일본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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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이들은 ‘무언가’에 사로잡힐까?

나는 지금 시를 쓰는 중이다
정말 쓰기 싫다
핸드폰을 만지고 싶지만 만지면 안 된다

지금 당장 핸드폰으로 페이스북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욕구를 참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버티기가 정말 힘들다

시 쓰니까 졸리다
핸드폰을 만지면 안 졸리다
핸드폰 하고 싶다
- 어느 중학생의 글 <핸드폰>
저의 10대 시절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혔던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책에 빠져들었다가, 열 살 때는 ‘전자오락실’, 그리고 ‘노는 친구들’에게 오랫동안, 어느새 ‘노름’까지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범위를 조금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당시에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은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홍수처럼 넘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30년도 더 지났지만. 

저는 반공 어린이 웅변대회에 나가고 싶었지만 웅변 실력이 형편없어서 감히 도전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반공 글짓기를 잘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먹 불끈 쥐고 마음속으로 김일성을 증오하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기억이 서글픕니다. 

《조선과 일본에 살다》를 쓴 김시종 시인은 어린 시절 ‘일본’에 사로잡혔습니다. 황국신민 어린이가 되기 위해서 집에서도 일본어를 열심히 실천하고 전쟁을 치르는 일본을 위해서 힘이 되기 위해서 진심으로 고민하고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본이 패망했을 때 시인은 환영인파에서 빠져나와 터덜터덜 강변 자락을 걸으며 일본 노래를 불렀습니다. 누가 이 어린 아이에게서 나라를 빼앗겼다는 슬픔과 나라를 되찾았다는 기쁨을 앗아간 것일까요? 

우리 동네 치킨 집에서는 도넛과 튀김 같은 것을 팔았는데 이제는 아이스크림을 같이 팔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들도 엄마에게 용돈 천원을 받아서 시냇물이 흐르듯 졸졸 치킨집으로 갑니다.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버는 일은 얄밉기도 하지만 귀여운 놀이에 불과합니다. ‘코 묻은 생각’을 빨아들이는 것은 아이의 인생을 한 움큼이나 뜯어먹어 버리죠.  

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무엇인가에 쉽게 사로잡힐까요?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로잡히면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 어린 마음에 유혹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휴대폰’이라는 시를 썼던 중학생도 휴대폰과 하나 되는 마음이 잊히지 않았을 거예요. 휴대폰을 손에서 떼는 순간 이 세상은 한층 어두워졌으니까요. 그 친구에게 휴대폰 말고 다른 것과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알려준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주4.3 당시 10대는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과 일본에 살다》는 일제 강점기와 제주4.3이라는 냉혹한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재일 교포 김시종 시인의 자전(自傳, 자서전)입니다. 황국신민으로 살았던 어린 시절, 그리고 어린 시절의 망각을 자각하고 제주인이 되었던 배움의 시간, 미군정과 친일파의 부패와 패악에 맞서 남로당 첩보․조직 활동을 했던 시간들이 숨 가쁘게 이어지죠. 4.3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탈출하고 일본에서 있었던 배신의 시간은 또한 가슴 아픕니다. 북한에서는 문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한 시인은 북한행을 포기하고 재일동포로 남기로 합니다. 시인은 광복 이후 좋은 스승과 동지를 만나 황국신민의 망상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광복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와 뜻 있는 인물들을 잡아다 고문시키고 일본에 붙어서 사람들을 괴롭히던 친일파들이 요직에 앉아서 떵떵거리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의 으스대는 모습과 패악에 너무 화가 난 시인은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에 입당했습니다. 《일본과 조선에 살다》에는 제가 지금껏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4.3에 대해서 배우러 다니고 책도 찾아서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진짜 그곳에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던 생생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숨겼다고 해요. 왜냐하면 자신의 이야기가 4.3을 공산폭동이라고 몰고 가는 사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걱정은 타당합니다. 저도 읽으면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쩌지 하며 조마조마했기 때문입니다. 

4.3 당시 시인은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남로당의 지시에 따라 교원양성소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우체국과 교원양성소를 오가는 일을 했습니다. 비밀 첩보를 전달하거나 전신 전화를 도청하는 위험한 임무도 맡았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10대가 나오는 가장 빛나는 장면은 1947년 3․1절 28주년 기념 제주도민대회였습니다. 현장에 직접 관여한 시인의 목소리로 들어보겠습니다. 

3월 1일 오전 9시를 기해 오현중학교 교정에서 감행한 학생들의 합동 기념집회는 제주농고·오현중·제주중·교원양성소의 학생, 거기에 처음으로 집회에 참가하는 제주고등여학교의 여학생과 그들의 어머니, 학교 주변의 일반 주민 등도 함께해 순식간에 2천 명이 넘는 예상외의 대집회로 발전했습니다. 이 갑작스런 학생집회에 놀란 군정청 경찰고문관 패트리치 대위는 미군부대와 기마경찰, 기동대원을 스스로 인솔하고 들이닥쳐 기념집회를 해산하려 했지만, 학생들의 강경한 항의에 꼼짝 못한 그는 '속히 행사를 마치고 해산하라'고 명령하고 합동 기념집회가 끝날 때까지 교문 밖에서 대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조선과 일본에 살다》 중에서
3만여 명이 운집한 3.1절 도민대회에 가려져 있었지만 2000명의 학생들이 모인 오현중 학생 합동 기념집회는 제주에 사는 10대라면 기억할 만한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이 역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어린이와 10대들이 왜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는지,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시종 시인에게서 1948년 4.3 당시 제주에서 있었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시간이 쌓이면 신화로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왜곡된 이야기가 그대로 신화가 돼 버리기도 합니다. 일본이 위안부 역사 등 부끄러운 과거를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도 왜곡된 역사를 신화로 만들어 수백 년 후에는 진짜 역사가 완전히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주도나 4.3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죠. 저는 제주도 사람으로서 김시종 시인의 피맺힌 이야기를 잘 읽고 진짜 역사를 되살려야겠다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을 한데 모일 수 있게 해주는 가치 있는 일이나 재미있는 일이 펼쳐진다면 어떤 학생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가슴 벅차는 일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어른으로서 부끄럽습니다. 가슴 떨리는 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뛰어다녀 보려 합니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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