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79) 말 타면 궁궐 생각난다

* 몰 타민 : 말(을) 타면
* 구중 : 궁중, 구중궁궐(九重宮闕)의 준말

예전에는 지체 높은 벼슬아치가 말을 타고 다녔다. 곧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냈다. 관리 행세를 한 것이다. 그게 신분과 지위를 내보이는 것이라, 말을 타면 부지불식중 우쭐해지기 십상이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더라도 자연히 그렇게 돼 가는 것이니, 사람이 갖는 보편적 심성이랄 수 있다. 얼마 가지 않아 마음 들뜨게 되면서, 궁궐을 드나드는 관리가 되고 싶은 허황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점입가경인 셈이다.

평소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소탈하게 지내던 사람도 신수가 조금 펴지면 좀 더 좋아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심리 상태를 꼬집을 때 하는 말이다.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유사한 속담이 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와 ‘말 타면 종 두고 싶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가 화중(話中)에서 보편적으로 많이 쓰인다. ‘몰 타민 구중 생각난다’와 좀 더 같은 맥락에서 뜻이 통해 그럴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심의 물결을 바라보는 것 같다. ‘말 타면 궁중’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 마음처럼 변화무쌍한 게 없다.
  
여기서 ‘경마’는 경마장의 달리며 선두 다툼을 벌이는 그런 ‘경마(競馬)’가 아니다. 말(言)이 전혀 다르다. ‘견마(牽馬)’에서 온 말이다. ‘견(牽)’ 자가, 끌어당긴다는 뜻을 지닌다. 그러니까 ‘남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말을 모는 일 또는 그 고삐’라는 뜻이다. 
  
경마 잡히고 싶다는 건, 자기 대신 말의 고삐를 잡아 줄 하인이 있었으면 한다는 뜻이 된다. (경마 잡히다의 ‘잡히다’는 ‘잡게 하다’로 피동형이 아닌, 하게 시킨다는 뜻으로 사동형임에 유의) 그러니까 걷는 것보다는 말을 타는 것이 좋고, 내가 직접 말을 몰고 가는 것보다는 하인이 말고삐를 잡아 주는 것이 좋다 함이다. 그냥 해 보는 소리가 아니다. 결국 사람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다는 것, 은연중에 비꼬는 뉘앙스를 풍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타고 있는 말의 고삐를 잡고 말을 몰고 가게 한다는 뜻인즉, 욕심이란 게 한번 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임을 은근히 빗대었다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는 말이나 있었으면 하고 바라다가 막상 말을 타고 나서자 경마까지 잡히고 싶은 것, 그게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본성(本性)이니까.

누가 필자더러 “당신이 바로 그런 분 아닌가요?”하고 물어온다면 명쾌하게 한마디로 답할 것이다. “무슨 말씀을, 제겐 노새 한 마리도 없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騎馬(기마)면 欲率奴(욕솔노)라.” 말을 타면 종(하인)을 부리고 싶다 함이다.

‘몰 타민 구중 생각난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메우지 못한다. 가진 놈이 더 가지려 한다. 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을 부러워하는 법. 그렇구나,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요즘은 정권 연장 욕심이 들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먼 데서 찾을 것도 없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집권 연장이 바로 그 한 예다. 시 주석은 개혁 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최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부패한 권력은 절대 몰락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사진은 마오쩌둥과 시진핑 주석의 모습을 겹친 타임지 표지. [편집자] 출처=KBS 뉴스.
그는 제19차 전당대회에서 ‘시진핑 사상’ 공산당헌을 삽입함으로써 영구 집권이 아니더라도 실제 그게 가능한 집권 연장의 확고한 기반을 다져 놓았다.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덩샤오핑 이론 이후 주석의 이름이 들어간 당헌이 나온 만큼 시진핑 주석이 중국 공산당 내 절대 권력을 잡게 됐음은 이미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일이다. 대단히 견고한, 놀라운 장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부패한 권력은 절대 몰락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마오쩌둥이 말년에 문화혁명이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도 당내에 그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진핑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권력은 종국에 가서 실수를 낳게 되고, 그 실수는 공산당 자체는 물론 중국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게 될는지 모른다. 권력에 대한 민중의 심판은 언제나 준열하다.

‘몰 타민 구중 생각난다’. 말을 타서 문제가 됐다. 말을 타지 않았다면 욕심도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는 것이다. 한 번 잡으면 놓고 싶지 않은 것이 절대 권력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산의 정상에 오르면 하산 길을 재촉할 줄을 알아야 한다. 오르면 내려오는 것이 순리이고 지혜이기 때문이다.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그게 훌륭한 지도자다. 아름다운 퇴장!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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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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