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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차가운 새벽을 여는 여인들의 산물

고병련 news@jejusori.net 2018년 08월 10일 금요일 14:04   0면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54) 위미리 우미 산물

위미는 논어에 나온 ‘이인위미(里仁爲美). 택불처인(擇不處仁). 언득지(焉得知)’에서 따온 지명이다. 의미는 ‘인후(仁厚)한 마을에서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 인후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이다. 여기에 유래된 우(又)가 위(爲)가 된 마을이라고 한다. 

위미리의 옛 지명은 ‘우미, 뙤미, 뛔미’다. 바닷가에는 많은 산물들이 기암괴석 틈을 따라 용출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맑고 차갑다. 특히 산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 산물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해맑게 솟아난다. 이 마을의 대표적 산물로는 바위틈 고망(구멍의 제주어)에서 물이 솟는다는 데서 연유한 고망물과 넙빌레(평평하게 넓게 깔린 바위란 뜻을 지닌 현무암지대)에서 물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넙빌레물이 있다.

고망물은 복개된 태위로 위미다리의 남쪽 70m 지점인 해안가 앞개 하천변 암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용출딘다. 물이 차고 맑으며 수량이 풍부하여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일제강점기 때에는 황화소주의 원수로 사용했던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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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망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1999년 정비하여 산물 입구에 ‘부지런한 여인들로부터 아름다운 위미의 새벽이 열다’는 의미의 물허벅 여인상을 세워 보전한다. 그리고 여인상 비문에는 ‘허벅의 물을 조심스레 항아리에 붓는다. 물허벅으로 고망물을 길어 나르는 일은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여인들의 몫이었다. 이 물로 밥을 지어 식구들 밥상 차리고 그녀들은 밭으로 바다로 잰 걸음을 옮겼다’고 옛 삶을 회상한다. 

또 ‘이 고망물가에 여인상을 세우는 것도 우리 여인들의 근면하고 강인했던 생활력을 되살려 더 나은 위미의 내일은 가꾸어 가고자 한다’라고 마을 미래에 대한 발전 의지를 적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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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망물 용출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망물 맞은편 하천의 바닥에도 여러 군데서 암반을 뚫고 빌레(바위의 제주어)물이란 크고 작은 산물들이 용출된다. 전에는 물이 솟는 주변에서 빨래와 목욕을 주로 했던 산물로 지금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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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망물에서 서쪽 해안인 서성동 앞바다에는 넙빌레에서 나는 넙빌레물이 넓은 암반지대에서 솟구친다. 여름 피서철에 피서객들이 더위를 식히며 휴식을 취하는 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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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넙빌레 표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일제강점기 때 소주 원수로도 활용됐지만, 황하소주의 수질검사 시에는 고망물 대신에 넙빌레물을 떠서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한 번도 불합격된 적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위미리에서는 바꿔치기하는 것을 빗대어 ‘넙빌레물도 고망물이라고 하면 고망물이다’란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 산물은 지금 남탕과 여탕으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는데, 여탕에 있는 식수통은 암반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남탕은 크고 작은 3개의 욕탕 같은 물통을 만들고 목욕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넙빌레물 남녀탕은 인조석 돌담으로 보호되고 있는데, 바다 쪽은 열린 공간구조로 담수욕을 하면서 서귀포 앞바다의 정취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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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넙빌레물(앞 여자 전용, 뒤 남자 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6. 넙빌레물 여탕.JPG
▲ 넙빌레물 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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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넙빌레물 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위미3리의 바닷가 떼배를 매던 종정포구인 ‘테우개(태웃케)’에도 ‘신그물(싱긋물,시금물)’이 솟고 있으며, 이 산물이 있어 여름철에는 숨은 피서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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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정포구(태우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바다와 포구를 중심으로 위(웃고망)와 아래(알 고망)에서 용출하는데 약간 염분기가 있어서 ‘물이 싱겁다’는 의미로 신그물이라 부른다. 그래도 바닷가에 자리 잡은 산물치고는 수질이 좋아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까지는 이 일대 주민들의 귀한 식수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태우개의 바위틈과 바닥에서 용출하는 산물을 그대로 살려 포구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하여 피서지겸 소공원으로 탈바꿈시킨 숨은 피서지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 작은 담수풀장까지 갖추었지만 개인적 생각으로 일부 시설들이 주변 경관과 제대로 어우러지지 않아 어색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아 좀 더 개선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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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그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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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우개 담수풀장.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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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물이 만든 태우개 물놀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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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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