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56) 태흥리 펄개 산물

보한이(보한리, 봉안이)라고도 불렀던 태흥리는 산물과 함께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을 가지고 있다. ‘마을이 크게 흥하라’는 의미의 태흥리는 펄이 있는 포구 주변에 산다고 하여 옛날부터 펄로 이루어진 개(포구)라는 의미에서 '펄개(벌포)'라 불렸다. ‘펄개’는 포구가 있는 바닷가라고 해서 ‘소금밭’에 갯벌이 질퍽하게 깔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벌포’는 ‘태우’(뗏목의 제주어), 즉 떼배가 많은 포구가 있는 마을이란 의미에서 연유한 이름이라 한다. 이 마을에는 과거(科擧) 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가 마시면 머리가 한층 더 명석해진다고 알려진 도네기통물, 나라에 큰 재난이 있을 때만 물이 마른다고 하는 소서물(벽두소서) 등 물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태흥리 해안은 산물들이 바다 속에 숨어 있는 유명한 곳으로, 포구에는 설촌 유래가 되는 개맛물(개맡물)이라는 산물이 사시사철 솟아난다. 개맛(개맡)은 포구의 어귀를 일컫는 제주어로 태흥 덕돌포에서 솟고 있으며, 포구에 있는 ‘맛있는 단물’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이 산물은 당시 덕돌포 주민이나 뱃사람들이 귀한 식수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원형 돌담으로 된 물통을 보호하기 위해 그 주위에 산물보호 경계목을 치고 시멘트로 돌담의 틈을 메워 놓았지만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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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맛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계단을 통해 물통 안으로 내려가 물을 뜰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이유는 밀물 시 염담수 밀도 차에 의해 담수가 해수 위에 뜨기 때문이다. 썰물 시에는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 바닥에 일부 고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개맛물은 도로와 포구 확장으로 빨래터는 없어지고 식수통만 남아 있으며 포구공사 후부터 물이 정체된 채 통에 가둬져 있어 수질이 예전만 못하고 이끼가 끼면서 녹조현상으로 물이 썩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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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맛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남태해안로 의귀천의 태흥교 아래에 정좌한 고망물이라는 냇각물이 있다. 냇각물은 의귀천 하류 바다와 하천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용출되는 산물로 시멘트로 만든 원형 훔관통 속에서 용출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히 지나치기 쉽다. 의귀천 하류는 조석 간만의 차로 인해 주기적으로 바닷물이 역류하는 감조하천의 특성을 지닌다. 

해안을 경계하는 곳의 하천의 물은 염분기가 많다. 그러나 냇각물은 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기에 염분기가 없는 암반 틈에서 솟아나는 담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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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망물(냇각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제주식 돌담으로 에워싼 전형적인 구조는 아니지만 원형통 주변에 돌로 나지막한 원형 담을 두르고 있으며, 그 모습이 새색시같이 앙증맞다. 그래서인지 홀로 서 있는 정적인 모습이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어 보이는 한 폭의 풍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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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망물과 태흥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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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망물 통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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