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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좋고 인심 좋은 평안과 안녕을 비는 산물

고병련 news@jejusori.net 2018년 08월 31일 금요일 10:02   0면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0) 애월읍 상귀리 내비담 산물

삼별초 왕궁 터가 있었다는 상귀리는 ‘소웽이, 소왕이’로 지칭한다. 귀일리에 속했던 마을로 고려 원종 때 남쪽 항몽유적지로 가는 중간 지점인 ‘내비담’에 설촌된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이 마을은 옛부터 샘이 많아 물 좋고 인심 좋은 마을로 알려졌다. 구시물, 옹성물, 소왕물, 논골물, 푼체물 등이 귀한 식수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중 구시물과 옹성물은 주로 고성리 지경 사람들이 사용했고 상귀리에서는 소왕물, 논골물, 푼체물 등을 사용했다.

상귀리에 속한 마을로 항파두리성 북쪽에 위치한 소앵동에 소왕물(소앵물)이 있다. 소앵동은 풍수지리로 보아 앵무새가 알을 치기 위한 둥지형이라 하여 '소앵동(巢鶯洞)'이라 했다. 마을 지경에는 소왕물, 소왕동산, 소왕천 등의 지명이 있는데, 소웽이(소왕이)의 뜻은 분명치 않으나 가시엉겅퀴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 산물은 긴 세월동안 삶을 지탱해 주며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은 물로 알려졌다. 마을에서 예전부터 소왕물이라 했던 것은 지금부터 약 750여년 전 고 씨에 의해 처음 설촌되었기 때문에 탐라시대 때 탐라 왕가에서 먹었던 물이거나, 항몽 시절 삼별초 태자가 먹었던 물이라서 소왕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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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왕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하귀에서 고성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소앵동 안내 표지를 따라 상귀길로 들어가면, 가정집 건물 남쪽 소왕물동산 아래 위치해 있다. 소왕물동산은 유수암에서 소앵동까지 지맥이 이어졌다 하여 붙여진 지형이 파도처럼 이어진 동산인 ‘절동산(절[파도]+동산이 합성어)’의 끝자락이다. 옛 모습 그대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보전되어 있는 도내에서 몇 안 되는 산물이다. 

소왕물은 산물 입구에 정낭을 세우고 사람이 양팔을 뻗은 채 누워 있는 모습이다. 머리인 사각 물통에서 솟는 물을 네 단계로 구분해 식수, 음식물 씻기, 빨래터, 기타 잡용수로 주민들의 편리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각 물통 앞의 부분은 잘 다듬어진 사각 왕석을 성곽처럼 쌓고 물팡은 길고 넓적한 돌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이 산물의 돌담은 무틈새사선막쌓기 축조방법으로 꽉 차게 석축하여 전형적인 제주 돌쌓기 형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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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왕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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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왕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4. 소왕물 물통.JPG
▲ 소왕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푼체물(퐁체물)이 있는 동네를 부처물동이라고 한다. 부처물동은 원래 푼체왓(밭)이라는 농경지였는데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동네다. 한 때 4.3으로 폐동되기도 했지만 마을 중심에는 푼체물이 있다. ‘푼체’는 ‘부채’의 제주어와 ‘물’의 합성어라는 의견도 있다. 마을에서는 북쪽 파군봉(破軍峯)을 끼고 자리 잡은 병풍천(倂風川)에 연대 미상의 사찰이 있어, 가정의 평안과 안녕을 비는 물터라는 뜻에서 ‘부처물’이라고 부른다. 

이 산물과 관련하여 “어느 날 갑자기 사찰이 부서지면서 주지스님이 쓰던 대야가 샘 속에 묻혔는데 그 후부터 비가 와서 물이 넘칠 때는 대야 우는 소리가 난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당시 모셔있던 불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부처물동'으로 부르며 이 산물은 부처교(다리)가 있는 고성천 인근에서 부처님께 올리며 신성시 여긴다. 산물은 교량이 확장되고 인근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개수되어 궤(동굴)처럼 된 구멍에서 솟아나 1미터 남직한 작은 식수통을 채우는 형태다. 길가에 있어 언뜻 보면 가정집 정원 같다. 또 이 물의 또 다른 의미로 집 처마에 비바람이나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인 풍채를 닮은 물이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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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푼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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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푼체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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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푼체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논골은 논이 있는 마을로서, 이 마을에서 벼를 수확할 수 있게 해준 물이 논골물이다. 약 3000평(약 9917.3㎡)의 논에 물을 공급했다. 이 산물은 논골 사람들이 식수이며 논농사를 위한 관개용수로 사용돼 왔다. 논골물로 인해 이 일대는 예전부터 논농사가 활발했는데, 지금은 논은 사라지고 밭으로 변했다. 이 산물은 암반하부에서 용출되어 사각 식수통을 채우고 일자형 빨래통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다. 답동4길 한적한 소로, 나무 두 그루 밑에 원형 그대로 자리하며, 그 모습이 전형적인 시골아낙처럼 순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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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9. 논골물 내부.JPG
▲ 논골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견우직녀물이라고 부르는 산물을 찾기 위해 파군봉 앞 월영사를 찾아갔는데, 주변에 빌라가 들어서고 도로를 확포장해 물이 있다는 장소가 주차장으로 매립되는 등 지형이 많이 변해서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산물은 월영사 동쪽 구릉내 사이에 있는 할망물과 건너편 서쪽에서 있는 하르방물을 합쳐서 일명 견우직녀물이다.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딱 한 번 칠월칠석날에 만나는데 그날은 비가 온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비는 견우와 직녀의 재회하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연인사이인 두 남녀가 이 물을 함께 마시고 입맞춤을 하면 결혼한다는 속설이 마을에 남아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답사에도 불구하고 물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 고병련(高柄鍊)

▲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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