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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과 함께 '벼랑 위 달'처럼 마을 지킨 산물

고병련 news@jejusori.net 2018년 09월 12일 수요일 14:41   0면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3) 애월리 하물과 장군물
   
해망동산이 좌청룡, 한담동산이 우백호의 형세로 둘러싼 애월(涯月)은 애안월명(涯岸月明), 혹은 애안월영(涯岸月影)의 축약된 이름이다. 비룡승천(飛龍昇天)의 지세를 가진 마을이라 한다. ‘벼랑 위에 뜬 달’이란은 뜻을 가진 애월은 물이 고이는 바위 설기인 소위 ‘듬방’이 많았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바위들이 무리를 이룬 곳을 설기라 하는데, 제주어로 '듬방'이라 부른다. 

애월리는 구릉과 암반지대를 의지하고 비옥한 토지와 바다의 해산물을 생활 기반으로 한 해안 방어의 요충지, 애월진성을 둔 마을이다. 마을 발전의 중심에는 풍부한 산물이 있었다. 그래서 애월리 마을과 주변에는 큰 사람이 먹었다는 큰물, 성창 서쪽 편에 있는 구마물, 구마물 옆 서하물, 우체국 옆에 있었던 몰물, 우체국 서쪽에 있었던 시궁물, 서하동 북쪽 바닷가 ‘죽든원’ 곁에 있던 손두벌물, 동광동에 있던 고수물, 일명 샘이물로 불린 오방수 등 좋은 샘들이 여럿 있었다. 아쉽게도 애월항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매립되어 없어졌지만, 설촌, 정착 과정에 중심이 되었던 산물인 하물은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하물은 큰물로 ‘물이 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용출하는 물의 양이 많다는 의미인 제주방언 ‘하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물은 한자로 대천(大泉) 또는 한천(漢泉)이라 한다. 또한 애월십경 중 세 가지 경치가 하물과 관련되어 있는데, 성 아래 하물에 비추는 가을 달빛이란 성하수월(城下水月), 달빛 아래 하물에서 빨래하는 여인의 모습인 월하완사(月下浣沙), 돌 틈으로 솟아나는 풍부한 하물의 물이라 했던 석간용출(石間湧出)이다. 

하물은 바위틈에서 용출하는 마을에서 가장 큰 물로, 경조사에서 물 한 허벅을 길어다 주는 물 부조를 할 정도로 인정이 넘치는 약 500호의 주민들의 식수이며, 여자들의 전유했던 여성의 물이다. 옛 사람들은 주변 바위를 있는 그대로 놔둔 채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하물을 이용했다. 그들이 불편하다고 바위를 깨뜨리거나 치워버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용솟음치듯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도 바위가 된 용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물은 신성하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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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조 전 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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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조한 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하물은 물과 함께 솟아오른 바위를 경계로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칸을 나뉘어 이용하였다. 애월진성이 허물어지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많이 축소되었지만, 마을의 귀한 식수이자 생활용수로 음식물을 씻고 빨래하며 목욕하던 용출수였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하물 동측 2~3평(6.6~9.9m²) 크기의 하르방물만 원형대로 남기고, 육지식 샘터처럼 완전히 개조해 버려 그나마 남았던 물신이 서린 바위와 옛 정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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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조된 하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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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르방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남성은 하물 동쪽에 있는 ‘장공물(장궁물, 장군물)’을 사용했다. 이 산물은 암반을 뚫어 만든 물로 1926년 치수(治水)한 것을 기리기 위한 치수비가 있어 장공물로 부른다. 마을에서는 장공물은 윗물로 남성들이, 하물은 아랫물로 여성들이 사용하도록 구분했다고 하나 해학적인 해석이고, 근원은 모두 같은 물이다. 이 산물은 애월진성에서 사용했던 물로 장군이 먹었다 하여 ‘장군물’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이 물도 하물을 개조할 때 원형을 살려 재 개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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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전 장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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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후 장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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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공물에서 멱 감는 아이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마을에 관한 노래에서도 ‘물 길러 모여드는 하물의 모란꽃’, ‘하물에는 아가씨의 흥겨운 빨랫소리’, ‘하물의 맑은 물 샘솟는 고향’, ‘시궁물 장공물 하물이 그리워’하고 노래했다. 예전부터 애월리라 하면 하물을 생각할 만큼 하물은 마을 밖에서도 유명했다.

1987년 경향신문과 한국자연보호협회가 조사하여 선정한 <한국의 명수 1백곳> 중 샘터 46개소를 선정하였는데, 이중 제주에서는 안덕면 사계리 ‘산방굴사 약수터’, 제주시 아라동의 ‘금산물’, 서귀포시 서홍동의 ‘지장샘’, 제주시 외도동의 ‘수정사지 경내 샘’과 함께 하물이 선정된 바 있다.

지금은 큰 암석 사이로 굽이돌아 흐르던 산물의 옛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하물공원이라 음각된 왕석의 표석과 산물 밖 길모퉁이에 외롭게 서있는 옛 산물 터 바위만 그 옛날을 회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물고망(하물이 하류로 물이 빠지는 구멍)을 통해 도로건너편에 일제강점기에 만든 빨래터는 여전히 남아 있어 한 때 마을 아낙들이 빨래하던 옛 추억을 회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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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물 옛 바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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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물 빨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하물과 장공물은 긴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변모하는 마을의 변화에 따라 산물도 솟는 물의 양도 변하여 예전만 못한 모습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탑바위를 깨뜨려 버렸기 때문에 가뭄과 흉년의 재앙이 그치지 않았다는 ‘탑아진밧’ 이야기가 애월 마을에 전해오듯, 산물은 마을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 고병련(高柄鍊)

▲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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