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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화려한 무대 아닌 뒤편 분장실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2018년 09월 14일 금요일 03:1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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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현정, 설승혜, 정민자, 이현주. ⓒ제주의소리

[리뷰] 극단 세이레 연극 <분장실>

극단 세이레가 9월 6일부터 16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분장실>은 일본의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淸水邦夫, 1936~2016)가 쓴 작품이다. 시미즈 쿠니오는 생전 일본 극작가 협회 대표를 역임할 만큼 일본 연극계에서 위상이 높았는데, 그의 작품은 사회 현실과 그 속에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고 한다.

이제 갓 연극을 보기 시작한 기자는 민망하게도 13일 세이레 공연을 통해 <분장실>과 시미즈 쿠니오를 알게 됐다. <분장실>은 1977년 일본 현지 초연 이후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016년 일본 내 18개 연극 단체가 모여 이 작품을 다룬 ‘분장실 축제’를 개최할 만큼 스테디셀러 작품으로 손꼽힌다. 한국·터키 등 다른 나라에도 번역됐는데, 특히 한국에서는 꽤나 큰 사랑을 받아왔다. 예술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심심치 않게 공연작으로 낙점되고, 극단 목화 등 유수의 극단이 재구성하거나 심지어 낭독극으로도 만들어 질 만큼 폭넓게 다뤄졌다. 한국어 극본을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정도니 ‘현대 고전’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내용 자체가 연극을 주제로 하는 연극이면서, 세계적인 극작가 안톤 체호프·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대사로 등장한다. 입문자는 입문자대로, 프로는 프로대로 꾸준히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작품은 네 명의 여배우가 등장한다. 20년 동안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 속 주인공 ‘니나’를 연기해 온 C(정민자), 한국전쟁에 휘말려 세상을 떠난 배우 A(양현정)와 애인을 잃고 자살한 배우 B(설승혜), C를 위한 프롬프터 배우에 불과하지만 그 자리를 꿈꾸는 D(이현주). 

A와 B는 비록 이 세상 존재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못 이룬 한(恨) 때문에 분장실을 떠나지 못한다. 젊은 배우인 D는 주연 데뷔 직전 안타깝게 병원에 입원해 기회를 놓쳤다. 주연 기회를 달라는 D의 요구에 C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자리를 내놓지 않겠다고 매몰차게 거절한다. 두 배우의 실랑이 끝에 D는 목숨을 잃는다. 같은 처치가 된 A·B·D는 슬픔도 잠시, 안톤 체호프의 <세자매>를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의 축배를 든다.

<분장실>은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20년 동안 주연 자리를 꿰차면서 배우로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C는, 배역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배우로 살아온 정민자와 묘한 교집합을 형성한다. 

변변한 역할도 맡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연기에 한이 맺힌 A, B는 티격태격하면서 주고받는 합으로 작품의 웃음을 책임진다. 양현정, 설승혜는 연기에 대한 갈망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소화했다. 

D 역할은 작품에 따라 정신질환을 앓는 인물로 표현되는데, 세이레 공연 사전자료에는 그런 설명은 없지만 사실상 비슷하게 어딘가 나사가 빠진 모습이다. 네 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이현주는 D의 맹한 모습에서 카리스마 있는 니나 연기도 보여주는 반전을 선사한다.

작품 속 인물은 하나 같이 무언가 결핍돼 있다. 최고의 위치에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연기에 대한 간절함은 죽어서도 분장실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며, 그토록 원하던 주역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가능했다. <분장실>은 이런 여배우들의 욕망을 통해, 우리 삶이 화려한 무대가 아닌 시기와 질투, 치열한 경쟁이 오가는 분장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그런 메시지를 전혀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던지는 건 작품을 돋보이는 가장 큰 매력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줄거리에서 밝히는 C의 알콜 중독이 작품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작품 속 D의 존재는 다른 인물과 비교할 때 마치 붕 떠있는 듯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D에 대해 의도한 것이라면 충분한 개연성을 갖추는 이해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덧붙여 본다.

공연 초반, 무대 뒤 기계실에서 마우스 클릭 소리가 한 동안 계속해서 객석까지 들렸다. 기술상 어쩔 수 없는 점이라면 이해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개선됐으면 한다. 

<분장실>은 거창한 무대 장치나 많은 배우도 없지만 연극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남은 공연은 9월 16일까지 이며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다. 관람료는 일반 1만5000원, 청소년 1만원이다.

세이레는 제주에서 공연장을 갖추고 상설 공연하는 몇 안되는 극단이다. 공연장은 제주시시외버스터미널 옆 오라지구대 뒤편 제주가구타운 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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