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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공간 오이의 창작극 'SS' 출연진. 왼쪽부터 김경미, 김수민, 부지원, 문혜림. ⓒ제주의소리

[리뷰] 예술공간 오이 연극 'SS'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는 9월 15일부터 11월 10일까지 연극 'SS'를 공연한다. 이 작품은 오이가 제주시 삼도2동에 있던 지난 2015년 7월에 처음 공연한 창작극이다. 3년 만에 돌아온 'SS'는 새 연출자(남석민→고승유)에 출연진도 4명에서 A·B팀 8명으로 늘어났다. 기자는 2015년 6월 오이의 1인극 <설사>를 무척 인상 깊게 관람했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었던 'SS'를 챙겨보려 했지만 놓친 기억이 난다. 당시 초연을 봤다면 이번 두 번째 공연을 보다 다각적으로 소개할 수 있었지만 불가능하기에, 새 작품을 접하는 마음으로 16일 객석에 앉았다.

작품은 원하는 스펙을 본인의 능력과 교환해준다는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여기서의 스펙은 점수, 자격증처럼 유형적인 것이 아닌 자신감, IQ 같은 무형적이다. 제목인 'SS'는 ‘specification store’, 즉 스펙 가게의 줄임말이다. 교환에는 조건이 있다. 등가 교환(等價交換)에 다른 능력을 스펙만큼 내놔야 한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인 술인은 지능지수(IQ) 169 가운데 일부를 떼어 심미안을 얻었다. 취업 준비만 8년째인 현세, 양부모에게 사실상 버림 받은 고아 모모, 그리고 우주선 개발자였지만 예술가를 꿈꾸는 술인까지 세 명이 ‘SS’ 가게를 찾는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은 초월적인 힘 ‘스펙 교환’으로 세 명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SS’를 찾는 세 인물 모두 현재 삶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매우 강하다. 현세는 스펙 쌓기와 취업 준비에 지쳤다. 술인은 우주선 폭파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점을 크게 자책한다. 항상 밝은 모모는 양부모가 그를 사고사로 살해해 보험금을 타내려 했다는 상처가 있다.

작품은 스펙 교환으로 개개인이 단번에 달라질 수 있는 기회를 보여준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진심 어린 공감으로 맺는 인간 관계, 그리고 스스로의 내면을 마주하는 성찰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젠 스펙 쌓기 대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현세, 매정하다는 표현은 택도 없이 모자라는 양부모를 그래도 용서한다는 모모. 둘 다 변변히 내세울 건 없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챙기면서, 힘이 되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준다. 매사에 냉정하고 계산적인 술인은 술의 힘을 빌려 우주선 개발자로서 본인이 떠안아야 했던 부담을 털어놓는다. 심미안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자 공감 능력을 다시 얻어야겠다는 술인이지만, 실상 그에게 필요한 건 마음 속 깊은 곳 상처를 꺼내 보이는 용기와 그걸 보듬을 인연이었다. 

'SS'는 색 조명, 효과음 등 극 전반에 걸쳐 음악과 조명을 적극 활용한다. 여기에 <매트릭스> 속 슬로우 모션, 꿈이 실제 삶을 바꾸는 <인셉션>처럼 영화적 장치나 설정을 연극에 녹여낸 점도 눈에 띈다.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비중도 높아 대사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특히, 아이스크림 하나로 인물의 변화를 단번에 드러내는 것처럼 작지만 센스가 돋보이는 아이디어도 기억에 남는다.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닌 사장은 몸을 아끼지 않는 개그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다만, 술자리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는 방식은 예술공간 오이의 같은 창작극인 <4통 3반 복층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SS'가 2015년 무대에 처음 올렸고 <4통 3반 복층 사건>은 올해 초연이니 'SS'가 먼저이긴 하다. 시간만 더 있으면 취업할 수 있다는 현세에게 사장이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나, 자책하는 술인을 사장이 위로하는 장면 속 표현은 일상 언어의 동전 양면이랄까, 다소 상투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SS'는 정신 없는 좌충우돌이지만 보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공연 날짜는 11월 10일까지 매주 토·일요일(오후 3시와 7시)마다 선보인다. 9월 23일은 추석 연휴로 쉰다. 관람료는 전석 1만2000원이며 12세 이상부터 관람 가능하다.  

예술공간 오이는 제주에서 가장 활발히 상설 공연하는 극단으로 손꼽을 만하다. 'SS' 소개 자료 뒷면에는 12월까지 진행하는 공연 달력이 그려졌는데 빼곡하게 작품이 실려있다. 4.3 70주년을 기리며 5월 말부터 12월까지 장기 공연 중인 <4통 3반 복층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공연장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도 붙어있어 쾌적하게 연극을 즐길 수 있다.

예술공간 오이는 제주시 연북로 66(에코파인 오피스텔) 지하 1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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