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5) 곽지리 과물과 절쉬엉팡

곽지리는 탐라시대 전기시대의 곽지패총(제주도기념물 제41호) 유적이 발굴된 곳이다. 패총유적은 토양이 좋고 산물이 솟아나 생활이 가능한 곳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 마을은 잣(잔돌로 쌓아 놓은 곳)들이 있어 곽기리(郭岐里)라 하였다가 곽지리(郭支里)로 통용됐다. 마을명의 유래는 곽산이라 불렀던 과오름 산봉오리 서쪽 자락에 설촌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형이 허했기 때문에 높고 긴 성(長城)을 쌓았다고 해서 성곽, 둘레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마을이 형성될 때 하동 동네의 주 식수가 된 산물이 과물이다. 석경개 동쪽에서 솟는 과물은 한라산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1백리를 달려와 곽오름을 배경으로 바닷가에 솟는 달콤한 감수(甘水)다. 감수는 제주어로 단물이다. 과물은 한군데에서 물이 많이 나고 물 나는 곳이 곳곳에 많이 있어 “물이 너무 많이 넘쳐 난다”고 하여 물이 과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과오름과 뜻이 같다. 해안가의 다른 산물처럼 한곳에서 집중적으로 솟아오르지 않고 과물은 여러 곳에서 힘찬 물줄기를 솟아난다. 그래서 남자용과 여자용으로 구분해 사용했다. 

20평(약 66㎡) 정도 크기인 남자 전용의 시원한 물은 몸에 적시며 휴식을 취하거나 소 등 가축들의 식수로 사용했다. 50평(약 165㎡) 정도 크기인 여자 전용은 현무암으로 만든 사각 식수통으로 생명수 역할을 했다. 이 물은 화향수(花香水)라 하여 마을 포제, 새벽 할망당, 중요한 제사 같은 일에 반드시 사용한다. 그래서 감천(甘泉)이라 했는데, 감은 단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신성시한다는 감(神)의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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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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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가뭄에 관계없이 연중 풍부히 솟아나와 중산간 마을주민들도 가뭄 시 이 산물을 기르러 왔을 때에도 조금도 인색하게 굴지 않고 길러가도록 하는 등 풍부한 물 인심을 나눴다. 

산물 입구 비석의 비문에는 “석경은 우물위치의 지명이며 감수는 물맛이 좋아 위치와 맛을 뜻하는 석경감수(石鏡甘水)”라고 적혀 있다. 지금은 해수욕장의 물인 목욕물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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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물 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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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물 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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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물 물놀이 풍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곽지해수욕장 바닷가에 가면 모래를 뚫고 곳곳에서 용출되는 산물을 볼 수 있다. 이런 곳에는 ‘맴돌이’ 현상이 있어, 처음 찾은 사람은 빨려 들어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과물 곁 동측에 돌담을 쌓아 원담으로 만든 곳에도 용출되는 곳이 있어 발을 집어넣고 있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까지 모래 속으로 빠지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곳곳에 솟는 산물들로 인해 기다란 모래벌판을 형성한 해수욕장의 진모살(모래)에는 대합조개 등이 많이 서식한다.

곽지리는 산물과 관련하여 물허벅을 내려놓고 쉬는 곳인 ‘절쉬엉팡’이 마을 안 잣모루동산이 있는 천덕로 길가에 보존되어 있다. 이 물팡은 달리 식수를 구할 수 없었던 윗동네에서 큰물질(질은 길의 제주어)로 해서 바닷가에 있는 과물에 물 길러 가던 상하동 중간에 있는 동산에 있다. 동산이 높고 길어 물허벅을 지고 가다 이 물팡에서 잠시 쉬어 가는 곳이었다. 이 물팡의 돌은 고려 때 ‘곽지사(郭支寺)’라는 절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절에서 가져온 쉬어가는 평편한 돌’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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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쉬엉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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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쉬엉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허벅은 보통 물허벅이라고도 하는데 물을 넣고 운반할 때는 항시 물구덕이라는 대오리(대나무)로 만든 구덕에 넣고 지고 다녔다. 허벅은 소박하고 볼록한 제주 특유의 형태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허벅은 용량이 한말 반(약 30L) 정도 들어가며 이 때 무게는 30kg 정도이다. 이 무게는 군인들이 완전군장 시 배낭의 무게(보통 20kg)보다 10kg이 더 나간다. 

물이 귀한 시절에 제주 여성들이 일상에서 제일 고된 일은 중노동인 물을 길어 나르는 일로 삶의 애환을 길어 날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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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허벅진 여인상과 진모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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