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계층구조안 마련도 안된 상태...부작용 우려

제주도가 모처럼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본인이 보기엔 그렇다. 최근 지역현안과 관련하여 애매모호한 입장표명만을 거듭해오던 제주도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정말 놀라운 결단력과 순발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밖에는...).

아직 주민투표법안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시행시기를 ‘공포 후 6개월 경과’에서 ‘공포후 즉시 시행’으로 수정해 주도록 의견을 정리했다”고 한다(제주일보 8월 18일자 1면 머릿기사 참고).

보도에 따르면 “이는 제주도가 추진 중인 행정계층구조 개편과 관련해 도민사회에서 이해가 상충함에 따라 도민의 선택이 이뤄져도 법에 의거한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효과적인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단다.

사실 행정구역 개편과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쳐 결정함이 마땅하며, 때문에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지는 않은 지금의 상황하에서도 주민투표를 통해 이를 결정한 사례(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 강화군-인천시 편입, 천안시-천안군 편입, 광진구 동경계조정과 명칭변경, 광주 북구청 동통합-분동에 대한 주민투표 등)가 적지 않다.

하지만 주민투표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같은 사실은 지금까지 실시된 주민투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실시된 주민투표 사례의 문제점들 중 가장 큰 문제점이자,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제주도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법에 의거한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 뒷받침이 이뤄진다고 하여 주민투표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실시된 모든 주민투표가 “법에 의거한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은” 동일한 조건속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사례가 있는가 하면, 실패한 사례도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본인이 보기에 주민투표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은 “주민투표대상에 관한 충분한 정보공개와 토의”에 있다고 본다. 제주도가 지적하고 있는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의 시.군 통합은 무려 94년과 95년, 97년 무려 3번에 걸친 주민투표 끝에 성사되었으며, 이는 결국 충분한 정보공개와 토의, 끈질긴 설득의 결과였다.

그런데 제주도는 어떤가?
이번에 주민투표에 부치고자 하는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 문제는 아직 안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10월 1일 연구용역 결과 최종보고서를 통해 구체화된 후 11월까지 도민설명회 등을 걸쳐 연내 도민들의 선택에 의한 최적안 선정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년내 주민투표는 가능한가?(“11월 도민설명회 거쳐 년내 투표 전망”이란 보도가 추측성 보도 인지 제주도의 공식입장인지는 정말 궁금하다)

주민투표관리위원회 구성, 선거인명부 작성 및 확정, 선거운동주체.방법, 비용처리 문제 등 실제 주민투표의 실시와 관련한 소요되는 시간은 별도로 치더라도, 이 기간동안 ‘행정계층구조 개편(안)’을 주민투표에 부칠 만큼 명확화시켜낼 수 있을까?

현행 주민투표법안대로라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주민투표관리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주민투표안을 확정하고 늦어도 주민투표일 전 18일까지 주민투표일과 주민투표안을 동시에 공고하여야 한다.
더욱이 주민투표는 찬.반,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양자택일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여론조사와는 다르다.

중간보고서를 통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자치계층을 도로 단일화하고 시.군을 비자치단체로 전환, 4개 시.군 유지 또는 2개시로 통합하는 방안’이다.
이 중 어느 경우일지라도 지금까지 실시한 시.군통합, 동통합, 경계조정 등에 관한 주민투표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 문제이자,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와 관련한 법적 논쟁의 소지마저 갖고 있는 사안이다(현행 주민투표법(안)상 주민투표의 대상은 1. 당해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전체의 이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공공시설에 관한 사항, 2. 지방자치법 제4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자치구가 아닌 구와 읍.면.동의 명칭과 구역의 변경 또는 폐치.분합에 관한 사항, 3. 지방자치법 제6조의 규정에 의한 사무소의 소재지 변경에 관한 사항, 4. 그 밖에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으로서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사항이다-.

이 시점에서 (년내 실시가 가능하든 그렇치 않든간에) 제주도가 굳이 6개월을 단축시키기 위해 법안수정을 요구한 진정한 의도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도민 7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설문조사 결과 1계층제 전환여부에 대해 51.4%가 찬성했단다. 이 안대로라면 비자치단체로 전락하게 되는 도내 4개 자치단체와 시.군의회의 반발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제주도의 이번 결정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사항을 주민투표에 부쳐 그 채택여부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주민에게 유보한다'는 주민투표법 제정의 근본취지를 이해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결과에 따라서는 졸지에 비자치단체로 전락할 수도 있는 도내 4개 자치단체와 시.군의회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경우 자칫 여론이 지금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감에서 나온 속전속결 전술이요, 도민 다수의 의견을 이유로 향후 예상되는 법적 분쟁을 피해가자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제주도로선 손해볼 게 없다. 4개 시.군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이정도라면 정말 막가자는 거다. 4개 시.군의 입장과 대응책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현성욱님은 제주사회연구소 '미래' 선임연구원입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