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9) 고성리 옛성의 산물

고성리의 옛이름은 성이 있다고 해서 옛성마을(묵은성마을)이다. 옛 성은 ‘항아리에 죽 달린 가장자리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고려시대 때 몽고와의 항쟁(항몽) 시 축조된 ‘항파두리토성(缸波頭里土城)’을 말한다. 토성은 ‘항바두리’라고도 한다. 중산간지대라고 지칭하는 위치에 있는 항파두리성은 주변에는 거제비, 자귀남귀, 구시물, 옹성물, 장성물이란 다섯 개의 산물인 오생수(五生水)를 식수원으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구시물과 옹성물만 남아 있는데, 현재 산물들은 상귀리에 속하나 귀일촌에 속했던 고성리에서 주로 사용한 물이다.

구시물은 ‘구시(구유, 槽)+물’의 합성어로 산물 아래에 있는 논에 물을 댈 때에 나무구시가 있어서 붙여졌거나, 물(빨래용) 흐르는 곳이 구시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연유한다. 또한 구시물은 샘 모양이 소구시(여물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구시물은 삼별초 항쟁 시 병사와 주민의 식수원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구시는 처음에 나무로 길게 470×265㎝, 높이 70㎝를 파서 만들어 시설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돌로 제작되어 있다. 삼별초 당시 이 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성 밖인데도 외성을 쌓아 관리하였으며, 예전 콜레라가 유행할 때도 이 물을 먹은 사람들은 한사람도 병에 걸린 적이 없다고 알려질 정도로 질이 좋은 산물이다. 

이 산물은 1960년에 시멘트로 물팡 등 일부를 보수하였지만 현재 제주에서 남아 있는 산물 가운데 옛 원형을 잘 보전하여 이용되는 몇 안 되는 산물이다. 한 때는 구시물을 이용하여 이 일대에 논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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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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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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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물 수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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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물 내부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구시물 서쪽 200m 쯤 가면 극락사란 사찰이 있는데, 사찰 경내에 옹성물이란 산물이 있다. 옹성(雍城)은 무너지지 않는 성이란 뜻인데, 성곽 옆에 생수가 솟아나는 지형을 보고 옹성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와전된 발음으로 옹시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다기물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잘못된 표현으로 절에서 차를 다려 먹는 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옹성물은 삼별초가 항파두리성에 웅거할 때 김통정 장군을 위시하여 주로 군관, 장수 등 지도층만 먹던 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반 백성이나 병사, 사녀(시녀)는 구시물을 먹고, 이 산물은 장군이나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전용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식수통과 두 개의 물통을 만들어 놓았는데, 물통이 ‘ㄱ’ 모양으로 제주 전통장롱인 궤(상자)의 열쇠인 쇳대를 연상하게 한다. 식수통은 야채나 빨래하는 생활용수통에서 서측으로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산물은 극락사 건립 전까지도 고성리와 장전리 주민들이 집안에 정성을 드리는 제가 있으면 꼭 이 옹성물을 길어다 음식을 만들만큼 이 샘을 매우 신성시 했다. 산물은 극락사 동남측 경계지점에 보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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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성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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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성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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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성물 생활용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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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성물 식수 내부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극락사 입구에 정원처럼 꾸민 못이 있는데, 옹성물을 흘러들게 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신도들은 사찰에서 만들었다고 하여 극락샘이라 부르는데, 물은 바위 밑에서 용출되어 이 물을 받은 사각 통에서 세상을 정화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불교의 상징인 불보살의 의미하는 연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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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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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샘 암반 밑 용출 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또한 극락사 서측 고성천(갈금이내) 계곡에는 삼별초의 최후 보류인 항파두리성 전투 시 김통정 장군이 성위에서 뛰어내리자 바위에 발자국이 패이면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왔다는 일명 ‘횃뿌리’ 혹은 ‘장수발자국’이라는 전설이 있는 장수물(횃부리, 횃부리물, 장수발자국)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여몽연합군에 쫓긴 김통정 장군은 깔고 앉았던 방석을 바다로 던지고 첫 발은 이 돌에 디뎌 탈출하고 다른 발로 신엄리의 오성돌을 짚어 바다로 몰래 건넜다’고 한다. 바위 발자국은 이 때 생긴 오른발 발자국이며 엄지 발가락 자리에서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물이 솟는 곳을 횃부리라 한다. 장수물은 깊이 20cm, 폭은 가로 40cm, 세로 60cm 정도 움푹 패인 암석의 모양이 오른 발로 엄지발가락 위치에서 물이 솟아난다. 횃부리라고도 하는 이유는 옛날 장군이나 귀족이 신는 신발을 ‘홰’라고 한데서 연유한다. 장수물 옆에 있는 작은 물통은 애기업개(업저지, 어린아이를 업어 주며 돌보는 여자)가 밟은 물로서 ‘아기발자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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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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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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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물(우)과 아기발자국(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학자들은 ‘항’을 항아리로 ‘두리’를 둥근 것으로, ‘바두리’를 둥근 테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항파두리성’이란 ‘항아리의 테두리처럼 둥근 성’이라고 정설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성 밖의 산물들은 항아리를 채우는 물이 되는 것이다. 

풍수지리로 볼 때 물은 땅의 혈맥으로 항파두리성의 산물들은 성을 지탱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조검이 되기에 항바두리를 둘러싸고 솟는 산물들은 성의 생명수로써 항몽을 위한 호국충정의 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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