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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텀블러는 4년 전 친구가 생일날 보내준 상품권으로 샀고 블루투스 자판기는 7년 전쯤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 백화점 내에 있는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샀다. 노형에 있는 안경점에서 산 저 안경테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저 강렬한 빨간색 커버의 탭은 내가 파는 상품의 샘플 콘텐츠가 담긴 영업용 기기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것보다는 쓰던 것, 오래된 것, 익숙한 것이 편해서 좋다. 가족도 오래 될수록 익숙하고 편해지길 바란다.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바람섬 숨, 쉼] 십년 뒤 보는 가족사진, 익숙하고 편안한 추억이길

아이들 돌잔치 이후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찍는 시대에 굳이 사진관을 간 이유는 이벤트에 당첨됐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족사진을 찍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가족사진이 너무 없어서였다. 

각자 찍은 사진들은 있지만 모두 모여 찍은 사진은 귀했다. 애들이 어릴 때는 학교 숙제로 가족사진 가져오기가 있어 억지로라도 모여 찍었지만 청소년, 성인이 되니 일단 모이기가 힘들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여행을 가도 사진 찍기가 힘든 건 마찬가지. 예민한 청소년이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도 가족사진 찍기가 만만치 않았다. 젊은이들이야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반백년 넘은 삶을 살아가는 나는 좀 아쉬웠다. 그래서 이벤트 당첨을 빌미로 가족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애들에게 으름장을 놨고 몇 번의 일정 조절 끝에 시월 끝자락에 겨우 날을 잡았다.

사진을 찍기로 한 날 아침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예약 시간은 오전 10시. 결혼을 다시 생각한다는 취지의 이벤트이므로 드레스를 입으라는 청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옷장에서 단정한 원피스를 골랐다. 늘 하던 대로 간단하게 화장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내 둔한 손으로 매만진 머리가 딱 내 솜씨만큼 나왔기 때문이다. 이르다면 이른 아침 미용실 문을 연 데가 없어 한참을 내려가다 마침 한 곳을 발견하고 머리를 손봤다. 머리까지 정돈했으니 사진 찍을 준비 끝. 남편은 양복을, 여고생은 교복을, 이십대 초반 아들은 패셔너블한 흰 셔츠에 바지를 입었다. 모이기도 힘든데 복장도 가지가지다. 

사진관 2층으로 안내된 우리 가족은 사진사의 말을 경청하며 나름대로 포즈를 잡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활짝 웃으라고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깔깔거리기가 쉬운 일인가, 사진사님이 먼저 ‘으하하하’ 웃으면서 분위기를 유도했지만 굳은 얼굴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그래도 전문가는 역시 달랐다. 사진사님은 꼼꼼하게 팔의 각도와 다리 위치, 무릎을 어느 정도 굽혀야 하는지 까지 알려주면서 계속 ‘하하하’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 호탕하고 울림이 있어 굳은 가족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면서 비로소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족사진을 찍고 부부 사진을 찍었다. 분위기 잡고 서로를 쳐다 보라하니 어쩔 것 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다음은 오누이 사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래로 실제 다정한 오누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난 이제까지 살면서 울 집에서나 옆집에서나 별로본 적이 없다. 오누이도 역시 서로 쳐다보며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어색함만 흐를 뿐 이었다. 그래도 자세를 잡고, 분위기를 연출하고 찍은 사진을 보니 (사진 파일을 바로 보여줌) 익숙한 가족들의 얼굴이 참으로 낯설었다.

세월이 흘러 십년 뒤, 이십년 뒤 저 사진을 보면서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남편은? 아들은? 딸은? 사진을 찍었던 그 날을 생각할까, 훨씬 젊은 얼굴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당시 서로에게 품고 있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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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우리 모두는 서로를 어떻게 추억할까.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말한 것처럼 슬쩍 갖다버리고 싶은 어떤 것? 아니면 흔한 가족드라마의 훈훈한 결말에 나오는 진한 가족애?

나중에 일어날 일이니 지금 뭐라 단정할 일은 아니겠다. 다만 이왕이면 가장 익숙하면서 가장 편하고 가장 서로를 신뢰하는 튼튼한 관계의 기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서 앞으로 가능한 일 년에 한 번씩은 가족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 한 목소리로 내년에는 더 잘 찍을 수 있단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어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 평범한 나날 들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https://blog.naver.com/jejubarams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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