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76) 동복리 골막 산물

‘곤막’(邊幕)이 변하여 ‘골막’이라고 부르고 한자 표기로는 거금(距今)이라 했던 동복리의 옛이름은 ‘곳막(골막. 곰막)’이다. 의미는 ‘동쪽에 복이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용출하는 산물이 적었기 때문에 물이 귀하여, 우물을 파서 식수를 해결해야 했던 대표적인 곳이다. 현재 이 마을에 남아 있는 바닷가 산물로는 일주동로에서 동복로 방향으로 막 들어서면 도아칫개에 도아치물, 멜막개에 있는 멜막물이 남아 있다. 상수도 없는 시절의 식수였던 동하동 포구 앞바다에 있던 갯물은 매립되어 사라져 버렸다. 

동복리에서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로 두 개의 통물이 있다. 하나는 중골이라 했던 동네에 있는 알통물로 웃통물 아래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깊이 5m정도의 우물로 웃통물 보다 먼저 팠다고 해서 묵은통물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매립되어 버렸다. 

다른 하나는 웃통물로 묵은통물보다 나중에 팠다고 해서 새롭다는 뜻으로 샛통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우물은 깊이가 18m 정도로 비교적 깊은데 1939년 만든 것이다. 그 후 일주도로를 확장하면서 우물터가 파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어 행인들이 길을 가다 추락하는 위험으로 1985년 무렵 우물을 덮어 복개해 방치되어 왔다. 그러나 마을의 역사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013년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여 디자인됐고, 고증에 의해 원형을 최대한 살려 다시 복원하였다. 지금 이 통물은 동복로(옛 일주도로) 길가에 ‘동복리 우물’이란 동판을 우물 벽에 붙이고 마을에서 보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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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개한 웃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2. 복원된 웃통물.JPG
▲ 복원한 웃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제주에서는 마을에 중대사가 있을 때 집회나 공공의 회의를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도갓집(일종의 공회당 혹은 마을회관)을 도아치(도와치)집이라 한다. 이 집 근처 바다의 개라고 해서 도아칫개라 하고 여기서 나는 산물이라고 해서 도아치물이라 한다. 

이 산물은 코지(곶)의 용암바위를 의지하여 돌담을 쌓고 원형과 사각식수통 2개를 갖고 빨래터를 만들어 사용한 물이다.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옛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찾는 사람이 없어 물은 사라지고 해안쓰레기만 밀려와 쌓여 있다. 그래서인지 물통 안에서 솟던 산물은 끊어져 버렸지만 다행히도 물통 밖 남측 경계에서 다시 용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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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아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4. 쓰레기로 채운 식수통.JPG
▲ 쓰레기로 채워진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5. 물통 밖 용출지점.JPG
▲ 물통 밖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도아치물에서 서쪽으로 40미터쯤 떨어진 고기잡이용 어로시설이 있는 멜막개에 멜막물이 있다. 이곳은 서쪽 동네인 서하동으로 예전 개에는 ‘멜막’이 있었다. 멜은 멸치의 제주어이며, 막은 멸치를 보관하던 집이다. 이 물은 동북해녀촌 서측 길을 통해 바다로 막 들어서면 해녀촌 돌담벽에 멸실되어 일부 남은 시멘트 구조물이 보이는데, 과거 산물 터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산물터는 파괴되고 사라졌지만 주변 바위틈에서는 여전히 산물이 솟고 있으며 일부 남은 시멘트로 덧칠한 돌담만이 한 때 귀하게 썼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6. 멜막물.JPG
▲ 멜막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7. 멜막물 용출 모습.JPG
▲ 멜막물 용출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바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이 산물로 진입할 수 있는 산책길을 만들고 정비하여 마을의 삶을 지킨 역사 유적으로 그리고 산물을 탐방하는 바다 쉼터로 복구·복원한다면 또 하나의 마을명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무관심 속에 계속 방치한다면 마을의 삶을 지탱했던 유적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또한 물과 바다 그리고 삶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제주가치이며 생명을 품은 유산인데 말이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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